프랑스 소설처럼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로제에게 설명할 수 없으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 자신이 그가 몹시 싫어하는 악착스럽고 독점욕 강한 여자가 된 것 같다는 말을 그녀는 그에게 할 수 없으리라. -11p


그는 그날 하루 종일, 혼란스러운 눈빛의 그녀를 현관 앞에 놓아 둔 채 떠나온 그 전날 밤 이후 자신이 줄곧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경이 쓰였다. 폴은 망설였다. 로제가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므로, 아마도 지금이 그와 그런 이야기를 할 좋은 기회이리라. 하지만 지금 그녀는 기분이 좋았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 지쳐 보였다…….

-33p



​사랑, 그 난해하고 모호한 감정(뒤표지)은 행복과 날카롭게 배반적이다. 행복은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안정감이 한 스푼은 들어가야 하는데 사랑은 그렇지 않다. 사랑 역시 지속되기 위해서 패턴과 루틴에 의한 안정감이 필요하겠지만 사랑이 발견되는 순간은 대체로 혼란스럽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강이 그려낸 세 사람(화자가 메지의 내면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의 마음은 사랑이면서 사랑이 아니고, 사랑이 아니지만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니다. 원래 사랑이 그런 거라고 하기엔 겉보기에 멀쩡한 사랑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사랑이 증발한 육아공동체에서 성장해 이행대상-부모형제의 대체적 관계-을 거쳐 독립적이되 독립적이지 않은 유사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해체했다. 사회적으로 승인된 연애-약혼의 전 단계-가 흥미롭지 않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디서 이미 목격한 방식을 흉내내는 건 나에게는 사랑이 아니다.




사강의 소설은 소셜미디어 시대의 팬데믹을 거쳐 전세계의 거의 모든 이슈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어 세대차이조차 반전되는 다이나믹한 시대에 읽기엔 답답한 구석이 있지만 고전적인 고전에서 표현되는 인물의 심리나 지나치게 구체적인 배경묘사(역시 당시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신 자유롭게 주요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 내적 갈등과 고독, 망설임과 귀차니즘까지 한 겹씩 벗겨낸다. 동시대 소설만큼 몰입되면서도 작품의 집필과 발표 시기를 생각하면 놀라울만큼 오래된 작품, 이런 작품들을 현대적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


젠더화된 오픈 릴레이션십(개방적 연애)은 십여 년 전만 해도 보편적인 동시에 희귀했다. 표면에서는 여성들이 모노가미(일부일처제)를 수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자기가 그렇게 보이는 것조차 모르는 여성들에게 잠시 묵념한다.) 이성애 관계의 연인(배우자)의 암묵적 신뢰를 활용해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관계를 유지하거나 지나치게 정직해서 관계를 파탄내는 새드엔딩으로 양분된다. (이 주제는 픽션에 계속) 또한 (이성애자이면서) 쿨한 여자란 연인을 연인이라고 부르지 않음으로써(심지어 최애가 자신이 최애인 걸 모르게 하는 방식으로) 그의 자유와 함께 자신의 자유를 수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시몽의 ‘주인되지 못함’과 화해하지 못하는 폴을 바라보는 2025년의 시점은 그녀가 빨리 마흔이 되어 혼자 사는 특권을 각성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동시대 여성들은 오히려 소녀 시절부터 조숙한 고민을 해야할지 모른다. <어느 날 월터 형제들과 살게 됐다>의 에린(시즌 1 기준)처럼, 자유를 즐기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고독을 감수하면서.




”장난꾸러기 시몽(그녀는 그를 언제나 이렇게 불렀다.), 당신의 편지는 너무 슬프더군요. 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에요. 사실 난 당신이 없어서 쓸쓸해요.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상 잘 모르겠어요. 시몽(그녀는 그의 이름을 한 번 더 쓴 다음 정말이지 근사한 이 두 마디를 덧붙였다), 빨리 돌아와요.“ -81p



타인을 사랑할 여유가 있을 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인과 나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지만 가능한 모든 성취를 하면서 동시에 ‘그러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최소 45년은 필요하다. (내 기준)


그 훈련을 하기 전에 타인을 사랑하려는 시도는 조금 무모한 것 같다. 물론 이 무모한 사람들 덕분에 인류는 번성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