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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Nov 03. 2023

자기 파악이 제대로 되면 나름 길이 보인다!

서바이벌 자기 계발 코칭

1. 필자는 기업의 보상 위주 성과과리에서 변화된,  MZ세대 직원들의 1:1 KPC급 코칭과 MZ세대 직원들을 위한 서바이벌 자기 계발 1:1 코칭을 진행하면서, 필자의 과거 무선 통신분야 직장 생활을 복기해 보았다.


2. 93년 8월, 당시 Pager 해외 마케팅 전문 제조업체인 경동원그룹 (주)Everon Mobilecom의 고 김일환 대표께서는 중동고, 성균관대, 삼성전자 수출부장(키폰, 팩스 등) 출신으로 재직 시 미국 AT&T 등 각 주의 통신업자들에겐 Ike Kim으로, 미국 시장 출장 시 암송아지 스테이크 파티 등으로 유명하신 통신 분야 수출 역군으로 알고 있다. 입사 후 친한 선배 직원으로부터 상당히 똑똑한 애가 들어왔다는 칭찬의 후문도 들은 기억이 있다. 당시 Everon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 사원들께서는 이후 텔슨전자(김동연 회장), 팬텍(박병엽 회장)으로 이직하여 해외영업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Everon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번 드린 관계로 이만 줄일 까 한다.


https://youtu.be/oxkm4xw4swA?si=9dDTbTNtYmSPbnMJ


3. 다른 Item의 직장 생활 후, 삼성 물산 통신기기팀 출신의 무역 offer(갑을전자 팩스 등) 업체에서도, 지난번 말씀 드린 대로, 당시 대표님과 인도네시아산 펄프와 종이를 수입하여 당시 전주제지, 무림제지 등과 틈새시장 경쟁을 기획했던 적도 있었고, 필자의 퇴사쯤에는 수의과 대학 학비를 줄 테니 수의사가 되어 Profit을 Share 하자는 고마운 제안까지 받은 바 있다.


4. 이후 생계를 위해, IMF 외환 위기 때 워크아웃 된 지방의 모 제조업체 무역 계열사로 이직했는데 별로 언급할 이야기는 없고 회사정리로 퇴사, 현재 그 업체가 SM그룹으로 M&A 되었다고만 알고 있다.


5. 이후 당시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이 그랬듯이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하다가 99년 2월경 한국경제신문사 주체 취업 박람회에서 만난, 당시 삼성전자 구미 무선사업부 1차 벤더, 탁상용 휴대폰 충전기 전문 제조 업체인 (주)대윤정보통신에 정보통신 업무 경력을 인정받아 대리로 입사했다. 지난번에도 한번 언급했지만, 당시 100만 대 생산 성과인 삼성 미니폴더 CDMA 휴대폰(A100) 모델의 충전기는 각 30 만대씩, 삼성전기, 대윤, 아남의 3개 회사의 납품 구조였다. 필자의 주어진 업무는 다른 휴대폰 제조 업체, LG정보통신, SK텔레텍 등에 충전기 비즈니스 신사업 마케팅이었는데, 당시 필자가 생각했었던 업무는 일반 직장인의 업무 범위를 넘은 새로운 사업체를 하나 더 창업하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의 입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아닌 Plan B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매일 점심을 하네스 전자 사업부터 시작하신 문 회장님과 함께 식사를 하며 당시 삼성동 코엑스 상가 입점 분양 건도 말씀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문 회장님으로부터 특별한 신임을 받은 필자는 외자재 구매 확인 업무에서 사내 소통의 문제로 문 회장님과 이별을 하게 되었으나 후일 (주)맥슨전자 근무 시 재입사를 제안받기까지 했으나 다시 연결을 되지 못했다.


6. 이후 경기 화성 향남의 삼성전자 1차 벤더 모 전자업체로 이직해서 수원 삼성 사업장의 부산 삼성자동차로부터 온 연구원들과 미팅을 했고 매일 재고로 인한 생판회의는 필자에게 많은 의문점을 남겨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7. 이후, 그간 무선통신 분야 경력 인정을 다 받고 대리 3호봉으로 이직한 (주)맥슨전자에서는 (주)세원텔레콤 인수 시에 퇴직을 하게 되었다.

https://namu.wiki/w/%EC%84%B8%EC%9B%90%ED%85%94%EB%A0%88%EC%BD%A4


 세원텔레콤으로 간, 맥슨 시절 친했던,  필자의 바로 밑, 경북 출신의 모 대리는 스페인 비텔콤 한국지사장으로 한 때 잘 나가긴 했으나, 그 후 서울 강남에서 다른 Item으로 대 중국 비즈니스 등의 사업을 진행했었으나, 아마도 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몇 년 전 세상 이별을 하게 되어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361206560205984&mediaCodeNo=257


8. 이후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며 생활하다가 지방으로 이주를 생각하게 되어, 당시 지방 관할 구청 취업 관련 과에서 통신 관련 개인 회사를 소개받게 되었다. 그때 엔지니어들과 어느 강변 작은 업체 등을 방문하곤 했는데 필자의 주어진 업무 파악이 되질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하나로 텔레콤과 같은 유선통신망 업체였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한 ADSL은 역사적 기술로 한국 IT업계에 큰 공헌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퇴직 시에 그 회사 대표님께서 이런 업체 하나 차리면 되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당시 수도권에 24평 아파트를 소유했고, 잡다한 일의 기간 없이, 맥슨 퇴사 이후 바로, 그간 필자가 한 방향으로 업무를 수행 한 IT 통신분야 개인 사업을, 위의 지방 개인 사업체 대표님처럼 구체적으로 구상했다면, 아파트 매매 또는 전세 임대로 주고, 지방에 거주지를 두며, 어느 정도까지의 사업 자금까지도 연결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든다. 이후 이런 유선 통신망과 인터넷 관련 개인 사업을 하는 필자의 고교 친구도 있었다.


https://namu.wiki/w/%ED%95%98%EB%82%98%EB%A1%9C%ED%85%94%EB%A0%88%EC%BD%A4

https://namu.wiki/w/ADSL


9. 결론적으로 요즘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로 과거 필자와 같이 이직을 여러 번 하고,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직원 친구나 선망의 대상으로 두고, 실제 비즈니스 세계에서 필수적인 자신의 역량(업무 수행 능력, 그에 합당한 체력, 직급에 따른 업계 정보력, 기타 가정 상황 등 주변 상황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직원들을, 필요하시다면, 필자의 경우를 통찰력 있게 파악하여,  자신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바이다!


덧붙여 전반적인 글로벌 불확성의 경기 침체 상황이나 얼마든지, 먼저, 위의 자신의 역량부터 배양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삶을 찾는 노력을 한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고 보는 견해이다!

https://v.daum.net/v/20231101114520632?f=m


https://youtu.be/rscXMVBhjJk?si=hOdkdf1KhhEJDo_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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