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곡동에 있는 식물 큐레이션 샵 호지
안녕하세요. 공간 브랜딩 디자이너 이다운입니다. 지금은 '호지(hoji)'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고, 제오에이치 (JOH), 제이어드바이저리 (JAD)에서 브랜딩 디렉터로 일했어요. '사운즈 한남', '글래드 호텔', '네스트 호텔', 그리고 최근 오픈한 '가산 퍼블릭'과 같이 공간 브랜딩에 참여했고, '워크앤레스트', '토엔토'와 같은 패션, 라이프스타일 영역의 브랜딩 총괄을 맡기도 했죠. 3년 전 독립해 BCD workroom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고, 가드닝 브랜드 '호지(hoji)'를 론칭하게 됐어요.
브랜드 컨설팅 일을 하다 보면 애정을 갖고 기획한 프로젝트가 생각대로 운영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저 또한 브랜드 컨설팅에서 기획과 디자인을 거쳐 결과물을 완성하기까지의 모든 역할을 맡다 보니, 운영 관리 영역에 직접 관여하기 어려웠는데요. 오랫동안 창작의 역할에 집중하다 보니, 좋은 브랜드의 탄생은 오히려 탄생 이후 '운영'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죠. 어쩌면 브랜드는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이런 깨달음 속에서, '작더라도 하나의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고 관리해 보자'는 다짐으로 호지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됐어요.
사실 처음에는 회사를 그만두고도 컨설팅 일이 계속 들어왔고 익숙한 일을 하다 보니 수입도 안정적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를 그만두고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보고자 했던 초심이 점점 희미해지더라고요. 결국 2년이 지나서야 맡고 있던 프로젝트들을 줄이고, 온전히 저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죠.
오랫동안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해 왔지만, 정작 독립 후 자체 브랜드를 만들면서 제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찾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고, 그때 떠오른 게 바로 식물이었죠. 식물이라면 설령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식물은 제가 이미 공부해 둔 것들이 있기도 했어요. 이전 회사에서 공간 브랜딩을 진행하며 내부 코디네이션의 일환으로 식물을 배치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놓아둔 식물들이 계속 시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식물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식물원에서 교수님들이 체계적으로 짜주신 커리큘럼대로 1년 동안 교육받았고, 국립수목원에서 식물 분류학을 공부했죠.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식물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저는 어떻게 보면 의도된 미학을 하는 사람인데, 식물은 정반대잖아요. 식물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원리가 너무 매력적이었고, 덕분에 지금은 식물 덕후이자 준 전문가가 되었네요. (웃음)
확실히 식물 자체가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호지에 방문하시는 고객분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입구에서부터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오시고, 저도 공간을 연출할 때 항상 식물을 비치했으니까요.
'호지'는 한자로 넓을 '호(浩)'에 땅 '지(地)'자를 써요. 이름 뜻을 농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리면 돈 많이 벌고 싶냐며 농담을 던지시곤 하는데요. (웃음) 넓은 땅을 갖고 싶다는 의미보다, 땅이 가진 힘을 표현하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에요. 땅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힘이 있잖아요. 물과 햇빛만 있으면 잎을 피우고,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주고, 새들도 모이게 하죠. 저는 땅의 이런 신비로운 힘을 브랜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저도 식물이 가진 이야기와 생명의 원리에서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어요. 어떻게 보면 '식물 관찰'과 '가드닝의 즐거움'이 호지의 정체성이기도 하고요. 식물을 '잘 키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브랜드는 많은데, 식물에 담긴 스토리를 다루는 브랜드는 없더라고요. 저의 시선으로 관찰한 식물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면 의미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특정 식물의 이야기를 전하는 '월간 식물'을 기획하게 된 거예요.
이번 달 월간 식물인 ‘바늘잎나무’를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바늘잎나무는 우리가 흔히 아는 소나무 같은 상록 침엽수인데요. 보통 넓은 잎을 가진 식물들은 가을이 되면 낙엽을 떨어뜨리면서 겨울 동안 쉬지만, 바늘잎나무는 잎을 처음부터 얇게 만들어 햇빛을 적게 받고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는 방식을 택했어요. 그래서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1년 내내 푸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예요.
이런 특징 덕분에 바늘잎나무는 예전부터 신성하게 여겨졌대요. 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도 홀로 푸른빛을 내는 나무가 신비롭게 느껴졌던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을 기원하며 나무에 리본을 달거나 촛불을 밝혀 장식했는데, 이런 풍습이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트리로 이어지게 된 거예요.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용하는 나무가 지역마다 다르다는 점인데요. 유럽에서는 주로 가문비나무를 사용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목이나 구상나무 같은 토종 침엽수를 사용해요. 각 나라의 트리가 조금씩 다르게 생긴 이유도 이처럼 사용하는 나무가 다르기 때문이죠.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걸 알고 나면 이번 겨울을 조금 더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첫 번째는 진정성이에요. 모든 식물이 저마다의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식물'인지 먼저 고민해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식물이라도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구나' 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요소가 있는 식물을 고르려고 하는 거죠.
두 번째는 신뢰예요. 호지를 온라인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보니 식물의 퀄리티를 정말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품질이 들쑥날쑥하면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잖아요. 식물 상태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 안정적으로 수급 가능한지 꼼꼼히 확인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는 미학인데요. 제가 매력을 느끼는 형태고, 미적으로 흥미로운 요소가 있는지도 큐레이션 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너무 많죠. 거의 80%는 될 걸요. (웃음) 그럼에도 정말 마음에 드는 식물들은 하나씩만 데려와 오프라인 매장에서 소개하고 있어요. 그래서 식물의 종류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더 많죠.
저는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식물을 좋아해요. 꽃이 피고, 잎이 지고, 다시 돋아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식물들을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1년 내내 푸른 잎을 유지하는 열대식물보다는 길이나 숲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는 나무나 식물들이 더 끌리더라고요. '미선나무'나 '히어리'처럼 이름도, 존재도 특별히 주목받지 못하는 식물들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재밌어요. 이럴 때 보면 저는 식물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관찰'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웃음)
평일에는 다양한 업무로 꽤 바쁘게 지내요. 주로 기획이나 디자인, 온라인 스토어 운영에 시간을 쏟고 있고, 식물, 토분을 고르러 농장이나 시장에 가기도 해요. 오픈 전날엔 매장을 정리하고 분갈이와 같이 식물 컨디션을 관리하기도 하고요. 컨설팅 업무도 매일 하고 있어, 사실상 주 7일 일한다고 보시면 돼요. (웃음)
저도 제가 이렇게 잘할 줄 몰랐어요. (웃음) 만약 식물이 아니라 다른 걸 판매하라고 했다면 아마 못했을 거예요. 처음부터 '이걸 팔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교류하다 보니 고객분들께서 호응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저희 매장에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이 특별하게 느껴져요. 이전 없었던 가게에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도 신기하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 중엔 우재라는 친구가 있어요. 초등학생인데, 자기가 모은 용돈으로 벌레잡이 식물을 사러 오는 친구예요. 식물과 곤충에 대한 지식이 어마어마해서 저랑 하루 종일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인데요. 그 친구가 오면 저도 자연스럽게 곤충 박사가 된 기분이에요. (웃음)
또 한 번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이라는 주제로 월간 식물을 기획했을 때였어요. 엄마와 함께 온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상추 5개를 사면서 심는 방법과 키우는 법을 배워 가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기특하던지, 이 공간을 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호지를 운영하며 정말 감사한 건 고객 연령층이 정말 다양하다는 거예요. 젊고 세련된 친구들뿐만 아니라 아줌마, 아저씨, 아이들, 심지어 할머니까지 오시거든요. 저는 회사에서 컨설팅 일을 할 때부터 늘 성별, 나이, 세대에 차별 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아이도 어색하지 않게 식물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꿈꿨죠. 그런 의미에서 호지가 단순히 세련된 브랜드가 아니라, 누구나 와서 식물에 대해 배우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지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해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연의 순환 원리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경험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상추를 키울 때 특정 영양분을 흙 속에 넣어주면 상추는 그 영양분을 흡수하고 자라나요. 그리고 제가 그 상추를 먹으면 영양분은 다시 제 몸속으로 들어오고요. 동물도 비슷해요. 사료 속 영양분이 동물의 몸으로 들어가고, 우리가 그 동물을 섭취하면서 결국 같은 영양분이 우리의 몸에도 들어오는 거죠.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영양분은 결국 땅과 자연에서 온 거예요. 이 과정을 이해하면 우리가 환경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자연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키우고 있는 식물을 일상생활에 활용할 때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허브를 요리에 사용하거나, 구상나무와 같은 침엽수잎을 난로 위에 올려 향을 내는데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삶이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죠.
우연성인 것 같아요. 식물은 제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잖아요. 원하는 방향대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전혀 다른 형태로 크기도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모습을 만들어주기도 하죠. 그런 점이 참 신기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물론, 누군가에겐 이런 우연성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에겐 그 자연스러움이 식물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연스럽다는 단어가 생긴 것 같고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그래서 구매하시는 분들께 정말 구매하실 건지 꼭 한 번 더 물어보고 잘 키워달라고 부탁드려요. 얼마 전에는 제가 1년 동안 키운 '사랑초'가 판매된 적 있었는데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식물이었는데,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사랑초를 보고 한눈에 반해 구매해 가신 분이 계셨죠. 정말 감사하게도 가까운 곳에 사시는 분이라 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전해 듣곤 해요.
운영 1년 만에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컨설팅 일을 할 땐 '이렇게 하면 될 텐데 왜 못할까?'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 브랜드를 운영하고 나서야 어려운 이유가 있음을 깨달았죠. (웃음) 앞으로도 호지를 진정성 있게 운영하다 보면 브랜드 컨설턴트와 디자이너로서도 좋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많은 분들이 부담 없이 가드닝을 시작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처음 호지를 기획했을 때도 완벽하고 멋진 식물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 식물 좀 재밌네. 한번 키워볼까?” 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곳이 되는 거였거든요. 거기에 내가 원하는 화분을 골라 매칭해 보고, 직접 분갈이도 해보면서 다양한 식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싶었던 거죠. 앞으로의 호지는 각자만의 특별한 식물을 찾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다양한 자체 제작 상품도 개발하고 있어요. 식물 키울 때 필요한 도구, 화분, 플랜트 스톨 등 직접 디자인하고 있죠. 앞으로 식물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제품들을 선보이면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기도 해요.
매장 방문하시는 고객 분들 중에서 '키우기 쉬운 식물'이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죽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질문이겠죠? (웃음) 하지만 저는 식물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죽으면 어때요. 식물은 우리보다 더 위대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요. 그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마음에 꽂힌 식물이 있다면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키워보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