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까진 장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당시에 살던 동네 교육수준이 썩 좋지도 않았고, 그런 동네에서 나는 벼락치기 만으로 언제나 공부를 잘한다 소리 들을 정도의 성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중학교 생활은 초등학교에서 1시간 정도 더 늘어난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삶에 큰 단절이 생겼단 느낌이 안 들었다. 그저 똑같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눈앞에 두게 되자 점차 무서운 현실이 물길을 찾는 나무 뿌리처럼 머릿속을 옭아매기 시작한다. 전문계고 하나 밖에 없는 우리 동네에서, 일반적인 인문계로를 진학한다는 건 공부 잘 하는 녀석들이 득실거리는 '시내'로 나가야 한다는 걸 뜻했다. '시내'에 대한 괴담은 우리 동네 학원가에 퍼져 있었다. 이 후진 동네에 사는 가난한 학생들이 시내의 그 녀석들, 사교육으로 예습을 철저히 해둔 그 녀석들과 경쟁한다는 건 너무 막막한 일이었다.
어느 날 엄마는 『10대에 꿈꾸고 20대에 준비하여 30대에 영향력을 발하는 인생이 되라』는 긴 제목의 책을 사왔다. 저자는 원 베네딕트 선교사라는 사람이다. 청소년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는데, 이름이든 이력이든 참으로 특이한 분이다(이름이 저렇지만 순혈 한국인이다).
나도 그렇고, 누나도 그렇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원 베네딕트의 글은 놀라운 흡인력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 무언가 일깨워준 것 같다. 꿈을 꾸고 준비하라는 가르침은 삶을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 것이 아니라, 명확한 목표점을 정하고 그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하라고 강권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원 선교사의 책은 일종의 '비전'을 심어주는 성공담론 저서이며, 자기계발서다. 2000년대 중반은 성공담론과 자기계발서 열풍의 시대였고 시중에 찾아보면 비슷한 유형의 책들이 다수 있었다. 예컨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같은 부류들.
물론 세속적인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독교 서적이었으니까 말이다. 원 베네딕트는 사실 개신교 저술가로서도 아주 이질적인 유형의 저술가는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형적인 한국 개신교 설교자의 면모와 닮아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며 종교적 열심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게다가 이미 성공담론과 종교적 메시지가 융합된 책들도 미국에서 수입되어 들어오고 있었다. 예컨대 『내 인생을 바꾼 긍정의 힘』 같은 부류가 있다. 그저 종교의 외피를 쓴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심지어 좀 더 나간 경우는 『재벌 하나님, 나의 아버지』 같은 제목을 달고 출간되기 까지 했다.
국내에서도 일종의 '자기계발 신학'이라 불릴 법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듣자하니 서울에 큰 교회를 세운 유명한 '청소년, 청년 사역' 전문 목사님이 바로 이런 유형의 설교로 성공했다는 것 같다. 물론 그 사람을 성추문으로 몰락하고 말았지만.
당대의 여타 자기계발 강사들은 "성공해서 그 영광을 만끽하라"고 가르친다. 기독교의 외피가 덧씌워진 경우엔 하나님이 그 성공의 물주가 되어준다. 하나님이 주는 축복을 저 불신자들이 보는 앞에서 마음껏 즐기시라! 뉴스앤조이의 '하나님나라 영광으로 포장한 욕망(2016.11.03)'이라는 기사를 보면, 이런 유형의 담론이 한국교회 성장 과정에서 생긴 신앙 담론과 제도가 만들어 낸 현상이라는 비판이 보인다. 본래 성경에서 그런 말을 하고 있지 않는데, 개신교에서 유독 성장과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이나 영광과 결부짓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나 역시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인지하고 있었다. 솔직히 조엘 오스틴 목사의 책을 읽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내 안에서 그 무언가 가슴 벅찬 열정 같은 게 침식되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만일 원 베네딕트 역시 그런 식의 가치관을 설파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런 말과 글에 그다지 감동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 베네딕트의 이야기엔 당대의 성공 담론과 명확하게 갈라지는 지점이 있다. 원 베네딕트에게 성공이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론 그 성공을 바탕으로 실현할 수 있는 사명, 비전이 진짜 목적인 것이다. 성공의 공은 하나님에게 돌리고, 성공 이후부터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바로 이 사명감이야 말로 진짜로 내가 노력하고 도전하고 시련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다. 성공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원 베네딕트는 무슨 분야에서든 자신을 갈고 닦아 최고가 되어라고 강권한다. 하지만 그에겐 직업에 귀천이 없다. 거대교회를 세운 '큰 목사'를 예찬하던 당대의 교계 분위기와도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입장이다. 당장 영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직업, 예컨대 백댄서가 되더라도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백댄서가 되라고 권하는 식이다. 그리고 또 어떤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그 자리에 있게 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며,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누나와 나는 정신이 느슨해 질 때면 원 선교사의 구절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상 앞으로 가서 앉았다. 엄마는 우리가 원 베네덱트 선교사의 말과 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여름방학에 포항 한동대학교에서 개최되는 원 선교사의 수련회에 등록하였다. 그 분을 책으로만 보지 말고 직접적인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설교 공간에서 직접 마주한 원 선교사는 무엇보다 '실천가'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사람으로서 직접 보고 들은 숱한 사례를 들려줄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소재가 되는 사람들의 안타까웠던 과거 처지와 그 이후의 놀라운 성공은 세속적 자기계발서의 주인공들이 거쳐온 인생행로와 그리 다르지도 않을지 모른다. 달라지는 지점은 역시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이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뇌하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그 비전을 실현할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이다.
종교적 열망의 우위를 꾸준히 강조한다는 게 세속적 성공담론이 가진 씁쓸한 귀결을 상당수 소거해준다. 성공해서, 부자가 되어서 떵떵거리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원 베네딕트 선교사는 세속의 성공 강사들이라면 할 법한 것들, 예컨대 얼마나 좋은 차와 명품 옷을 가질 수 있는 지를 이야기하며 청중을 유혹하는 짓들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공 이후에도 노력해야 하고, 고난을 받아들이고 내려놓아야 함을 강조했다.
무종교인이 된 지금도 원 베네딕트 선교사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공부나 일이 지칠 때마다 원 베니딕트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보곤 하는데, 그럴 때면 뭔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수련회를 다녀온 바로 그 다음 해, 고등학교 1학년 때 부터도 그랬다. 사실 고등학교 입학 후 1학년 1학기엔 '시내' 학생들과 경쟁한다는 두려움에 잠깐 공부를 놓았던 적이 있다. 성적은 수직으로 하락했고 비관과 무기력에 잠겼다. 삶에 어떤 방향성도 보이지 않을 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원 베네딕트 선교사의 말과 글을 다시금 회고했다. 중학생 때 갔던 그 수련회의 기억을 반추했다. 그의 말과 글은 정신을 다잡는 힘을 준다. 가슴 속에 진취적인 도전정신이 회복되고, 잔뜩 들뜨는 마음으로 변하게 해준다.
덕분에 완전히 포기했던 고등학교 공부를 뒤늦게나마 다시 시도했고 어느 정도는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어쨌든 국립대에 진학해서 부모님 등골 브레이커가 되는 상황은 막아줬다. 거기까지 가선 철학 전공을 선택 해버리는 바람에 취업길이 막혀 꽤나 고생했지만, 30대가 된 지금까지 "나도 공부로 무언가 성취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만들어주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