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랑 수필은… 다른 거 아냐?”
그렇게 내가 물었을 때, 그는 별생각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잠시 차 안에 침묵이 머물렀고, 창가 너머 나뭇잎 그림자가 흔들렸다.
“글쎄. 그냥 같은 거 아닐까?
수필을 영어로 쓰면 에세이, 그런 거지.”
그의 말은 가벼웠지만, 그 안에 담긴 결론은 의외로 단단했다.
나는 마음속 어딘가가 순간적으로 쓸렸다.
그건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수필은, 내가 생각하기에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문장이고,
시간에 젖은 기억의 편린들이고,
말보다 침묵에 가까운 고백이다.
피천득의 『서영이와 난영이』 같은 글.
짧지만 오래 여운을 남기고,
글이 품고 있는 내용이 향기가 되는 — 그런 글.
반면 에세이는 조금 다르다.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선,
자기 생각을 다듬고 조율하는 언어,
어딘가 이성의 빛이 감도는 글.
마음보다는 머리에서 출발한 문장들.
나는 그 둘이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형식이 다르고, 결이 다르잖아.”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필은 조금 더 물처럼 흐르고,
에세이는 그 흐름을 분석하려는 쪽에 가깝다고 나는 느껴.”
그는 얼굴을 구겼다.
“수필을 영어로 에세이라고 불러
그리고 난 문학 장르를 영문학으로 배웠고 그래서 같은 거라 이해하고 있어 ”
그 말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감정의 잔결 하나까지 끌어안는 수필과,
사유의 구조를 세우는 에세이를
서로 다른 무늬의 섬유처럼 여겼다.
논쟁은 길지 않았지만, 오래 남았다.
그건 아마, 우리가 글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마주 보았다.
꼭 닮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엇갈리지도 않은 채.
나는 수필과 에세이는 다른 것으로
그는 수필과 에세이는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건,
하나의 사과를 쪼개 먹는 방식의 차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쓴다.
나의 방식으로. 나의 이름으로.
그가 그것을 어떻게 부르든—
그건 어쩌면 나보다 그에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