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할머니 전영애 선생님
한때 나는 단테의 신곡에 깊이 빠져 있었다.
영혼의 여정을 따라 지옥과 연옥, 천국을 지나며,
인간이 걸어야 할 고독하고도 숭고한 길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단테와 함께 지하를 걸었던 시간이 지나고,
내 시선은 독일로 향했다.
괴테의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불안한 내면과 욕망, 순수한 사랑과 그 파국,
존재의 이중성과 고뇌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 무렵, 나는 J를 통해 번역가 전영애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괴테를, 독일 문학을 숨결처럼 전해준 분.
선생님의 번역을 읽으며 괴테의 말들이
마치 모국어처럼 내게 다가오는 놀라운 경험을 했고,
그 문장들 속엔 깊은 사랑과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J는 나에게 괴테하우스에 가자 권했고
파우스트에 한참 빠져있던 나였기에 J에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도착한 괴테하우스.
괴테할머니 전영애 선생님이 지은 괴테하우스에 입성했다.
‘괴테’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곳은 단순히 한 작가의 흔적을 모은 박물관이 아니었다.
마치 시간의 아지랑이 속에 놓인 듯,
그 집 안에는 오래된 고서들의 묵은 냄새가 퍼져 있었고,
수많은 손길이 지나간 방명록은 조용히 시간을 축적하고 있었다.
책장은 말없이 우뚝 서 있었지만,
그 안엔 무언의 대화들이 숨어 있었고,
전영애 선생님의 취향과 삶의 궤적이
조용하고 단단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그러다 나는 한 권의 책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피셔-디스카우.
세계적인 바리톤.
무대 위의 거장이자, 말러와 슈베르트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음악가.
그가 책을 썼다고?
아니, 전영애 선생님이 그 책을 소장하고 계셨다고?
그 순간, 나는 조용한 충격을 받았다.
음악이라는 살아 있는 예술이
책이라는 침묵의 형식으로 남겨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이 집 안에 조용히 꽂혀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괴테하우스는 단순한 문학 수집의 공간이 아니었다.
전영애 선생님이라는 한 사람의 삶과 열정,
그리고 사랑이 응축된 장소였다.
독일 문학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했던 순수한 열망,
그 열망을 위해 견뎌야 했을 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마침내 직접 집을 짓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들었을 때,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돈이 많아서 지은 것도,
명예를 위해 만든 공간도 아니었다.
그저 “전하고 싶어서.”
그 마음 하나로 지어진 집이었다.
책장과 벽, 책갈피 곳곳에
그분의 삶이, 생각이, 마음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괴테하우스를 다녀온 이후,
내 안에 무엇인가 달라졌다.
문학이란 단지 읽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인생을 엿보며,
내 삶에 조용히 덧입히는 일이라는 걸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전영애 선생님.
피셔 디스카우.
괴테, 베르테르, 단테.
그 모두가 책 속에서,
노래 속에서,
그리고 괴테하우스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도 나는 그 기억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끔 책을 펼칠 때, 음악을 들을 때,
나는 그날의 정적을 떠올린다.
그곳에는
아직도 잊지 못할 향기와 시간이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