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2

상처를 감싸는 연약한 천

by SYKim

거짓말은 언제나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진실을 고쳐 말한다. 이때의 거짓말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손바닥으로 가려주는 동작처럼, 누군가의 상처 앞에서 본능적으로 내미는 손길이다. 그렇게 태어난 말이 바로 ‘선의의 거짓말’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그림을 그려서 엄마에게 내민다. 서투른 선, 삐뚤어진 색깔, 어설픈 구도가 가득한 종이 위에, 엄마는 미소 지으며 말한다.
“정말 잘 그렸구나. 아주 멋진 그림이야.”
엄마의 그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아이를 키운다.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가치가 있음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은 곧 성장의 토대가 된다. 진실은 아이의 손을 멈추게 하지만, 거짓은 그 손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병상에 누운 친구에게 “곧 나을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그 말은 진실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 ‘곧 나을 거야’라는 거짓은 몸보다 먼저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선의의 거짓말은 이처럼 진실을 대신하는 힘을 지닌다. 그것은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현실을 견디는 힘을 주는 말이다.


문학 속에서도 선의의 거짓말은 종종 인물들의 숨은 온기를 드러낸다. 체호프의 단편 속 인물들은 서로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기 위해 진실을 감춘다. 에쿠니 가오리의 인물들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괜찮다’고, ‘넌 잘하고 있다’고 속삭인다. 그 말들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눈시울이 젖는다. 왜냐하면 그 거짓이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상처를 덮는 천과 같다. 그것은 상처를 없애주는 힘은 없지만, 날카로운 바람이 스며들지 않게 막아준다. 진실이 곧바로 들이닥쳤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순간, 그 얇은 천은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준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희망’이라 부른다.


그러나 선의의 거짓말도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지나친 거짓은 상대를 더 깊은 착각 속에 가둔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진실을 끝내 피하게 만든다. 위로가 되어야 할 말이 오히려 무너짐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선의의 거짓말은 언제나 섬세해야 한다. 그것은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균형이다. 너무 많으면 독이 되고, 너무 적으면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선의의 거짓말을 믿고 싶어 한다. ‘괜찮다’는 말이 완전히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거짓말을 붙잡고 버틴다. 사랑하는 이가 건네는 ‘넌 잘하고 있어’라는 말이 사실은 절반의 위장임을 알아도, 그 말이 주는 온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보다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살아갈 힘’이다.


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이 만들어낸 가장 따뜻한 기술이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우리는 모두 상처 입고 살아간다. 그때 서로를 감싸기 위해 내놓는 작은 거짓들이, 삶을 견디게 만든다. 그 말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훨씬 더 차갑고 잔혹했을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그래서 ‘거짓’이면서 동시에 ‘진실’이다. 그 말 속에는 상대를 향한 진심이 담겨 있다. 진실을 감추지만, 사랑은 드러낸다. 언어가 이렇게 모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말은 때로 상처를 주지만, 거짓으로도 치유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순간에 선의의 거짓말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것이 완전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어깨를 잠시 붙들어주는 손길이 되어줄 테니. 삶은 결국 그런 작은 순간들로 이어져 있다.

거짓으로 시작했지만, 마음속에 남는 것은 진실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지탱한다. 그것은 상처 위에 놓인 연약한 천이지만, 그 천이 없다면 우리는 금세 쓰러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