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엄마의 생신

by 계속봄봄

시엄마의 76번째 생신이다.

20여 년 둘째 며느리로 지내며 딱히 생신상이라고 차려드린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매년 생신즈음 주말에 어머니 좋아하시는 돼지갈비 사드리고 용돈 조금 드리고.. 그렇게 생신을 보내곤 했으니까.


올해는 생신 전 주 주말 이틀 동안 남편 스케줄이 있었고... 사실 이건 핑계고 깜박하고 주말을 보내버렸다.


12년 전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혼자 살고 계시는 어머니는 요즘이 가장 맘 편하시다고 종종 이야기하시곤 했다.

15평 남짓한 국민임대에 사시지만 도심에 위치하고 깨끗하며 바로 앞에 강이 흐르고 경로당에 또래 친구분들도 많아 심심하지도 않고 혼자 쓰시기에 넉넉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다행스럽게도 본인은 그리 생각하시는 것 같다.) 생활비가 생기니 걱정 없이 하루하루 보내신다고 만족해하신다.


그런 어머니께 매일매일 가장 즐거운 곳은 단지 내 경로당이다. 생활체육센터에서 수시로 나와서 어르신들 상대로 운동도 시켜주고 또래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니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가끔 얼굴 빼꼼 비추는 자식보다 훨씬 좋아하시는 듯하다. 그렇게 매일 경로당을 가시는 어머니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자식 자랑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살가운 딸도 하나 없고 목석같은 아들만 둘이다.


경로당 이야기 하실 때마다 우리 어머니 어깨도 으쓱하게 한번 해드려야 하는데 생각하곤 했는데 그때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생신 때 이사간지 3년 만에 코로나로 폐쇄됐던 경로당이 다시 문 열었다.

그리고 첫 생신이니 이번기회에 챙겨드려야겠다 싶어서 전화드렸다.


"어머니~내일 경로당에 떡 좀 해갈게요~~"

"오메~~ 아니다~돈 들어간데~~ 내버려두어라~큰애도 안 한데~~"

"형님이랑 무슨 상관이에요~전 제가 하는 건데요~얼마나 하면 돼요?"

"5되는 해야 될 건데~~ 떡만 하면 부족할 건데.. "

"수박도 2~3 덩이 사서 갈게요~"

"그래 그래~알았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고맙다고 한다.


다음날

팥 듬뿍 들어간 팥떡 다섯 되에 수박. 막걸리을 사들고 경로당으로 향했다.

최대한 곱게 화장하고 최대한 어려 보이는 옷을 입고~




신랑이 퇴근길에 어머니께 들렸다가 나를 픽업하러 왔다. 먹고 싶은 거 다~~ 사준단다.

어머님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으셨더란다. 아직도 구름 위에 계신 거 같더란다. 너무 좋으셨나 보다.


죄송하다. 정말 별거 아닌데.. 약간의 시간과 돈. 그리고 서두름이면 충분한 건데 그걸 못 해 드렸구나 싶은 마음에 죄송했다.


가끔 아주 가끔 서운하신 말씀을 하실 때도 있지만 난 우리 어머니가 같은 여자로서 짠.. 하다.


지난한 세월을 살아오시고 이제 좀 편안하다 싶을 때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혼자 늙어가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가끔 뵐 때마다 말벗을 해드리려고 열심히 맞장구쳐드린다.


예전 광고에 나왔던 문구처럼.. 보일러는 못 놔드리더라도 이번주말 좋아하시는 돼지갈비 라도 사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