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운전 면허증을 지갑에 넣은 지 6개월, 투표할 때와 건강 검진할 때 따끈따끈한 면허증으로 신분을 밝혔다. 마스크 속에선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들이 모르는 나만의 뿌듯함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립된 채 무기력한 사람이 돌파구를 찾았다고 하면 이해할까. 아이들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마음은 이미 자유로웠다. 코로나가 심하게 유행하고 있어도 작년 이맘때보다는 덜 답답하니까.
처음엔 운전을 해서 즐겨 찾던 곳들을 얼떨결에 다녀왔다. 한강을 건너고 바닷가의 노을도 보고 드라이브 스루로 햄버거도 주문했다. 모두 나만의 강사님과 함께라서 가능했다. 도심의 고속도로에서 돌발행동을 해도 손잡이 꼭 붙든 채 담담하게 주의를 주고 꼬불꼬불 국도에서는 잘한다고 격려해주던 나의 강사님. 그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그의 차 언어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 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날은 더워지고 코로나는 기승이고 다시 바깥 활동에 제약이 커지고 있다. 도보와 자전거로 아이들을 픽업하다가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 내가 아픈데 아이까지 아플 때, 이렇게 수월하게 병원에 다녀올 수 있다니. 운전할 수 있음에 눈물 나게 감사했던 순간이다. 걷기 힘들 게 아파도 운전은 할 수 있으니까. 그동안 참 어렵게 살았다.
차와 친해지기도 전에 운전에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속에 불이 나서 화가 가득할 때 운전대를 잡으면 도로가 무섭지 않았다. 다른 차들에 신경 쓸 마음이 없어서 그런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서슴없이 달리고 있었다. 운전을 거듭할수록 도로가 보이고 차와 사람과 오토바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멈춤 신호에 좋아하는 음악도 켜고 끄면서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왕초보였을 땐 나만 생각하면서 달렸는데 여유가 생겼는지 다른 차를 보내주고 사람을 먼저 건너게 해 주고 오토바이는 볼 때마다 주의했다. 그리고 잘못 들어선 좁은 길에서도 거침없이 나아갔다. 바로 그때, 찌이-익 정차된 트럭의 모서리에 차를 긁어 버렸다.
차가 막히는 편도 1차로, 앞에 트럭이 길을 막고 있을 땐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되었다. 반대편 차선에서 공간을 주기에 이때다 하고 나가려다 갑자기 달려오는 오토바이에 놀라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어 버렸다. 오른쪽을 주의하지 않고 움직이다가 오토바이를 보고 크게 동요했던 나는 그야말로 왕왕왕 초보였다. 아주 천천히 움직였는데도 트럭 왼쪽 뒤 모서리는 손톱만큼 한, 내 차의 오른쪽 뒤는 긴, 상처가 난 뒤에야 막힌 도로를 빠져나왔다.
사고처리는 초보답지 않게 (근처 안전한 곳에 정차한 후 비상등을 켠 뒤 아이를 진정시키고) 처음 치고는 매끄럽게 해결했다지만(촌각을 다투는 땀 뻘뻘 택배기사님이라 일단 그가 원하는 대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내 차가 일그러진 건 어쩌지 못했다. 피해 보상을 마친 후에 밀려오는 서늘함. 내 차에게도 미안했다. 차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굴리다 그렇게 됐기에 많이 미안했다. 좁은 길을 막고 있던 트럭이 야속했지만 내 잘못인 건 확실하니까.
6개월도 안 되어 초심을 잃고 마음이 부은 나에게 남편이 초보운전을 더 크게 써 붙이고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딱딱하게 말한다. 내가 초보임을 잊고서 나를 방임했다고 혼자 안타까워한다. 차와 한 몸이 되지 못한 채 여러모로 피해를 끼치고 나서야, 아직 더 배우고 준비하고 조심해야 할 때라고 스스로 낸 상처를 보며 실감한다. 며칠 뒤 상가 주차장 좁은 입구에서 왼쪽 면도 쭈---욱 긁는 대담함에 스스로도 놀랐다. 양쪽을 균형 있게 상처 낸 뒤에야 초심으로 돌아왔다.
길은 늘 새롭기에 배워야 할 게 많다. 좁은 길에서는 천천히, 좌우를 잘 살피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땐, 기다리다가 확신이 들 때 나아가야 한다고 마음 깊이 새긴다. 서슴없이 달리기엔 아직 많이 이르다고.
동승자인 아들은 많이 놀라고 실망했는지 다시는 엄마 차에 안 탄다고 울부짖다가 집에 돌아와 내릴 땐 자기 용돈으로 보상하라고 툭 말한다.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고 집에 올 때까지 딸은 곤히 자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래도 상처는 남아서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제는 섣불리, 서슴없이 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 뒤로 주차된 다른 차들의 옆구리만 보인다.
'아, 저 차도 그랬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네.'
잔뜩 겁을 먹었다가 잠자는 용기를 깨운다. 무서운 치과치료를 앞둔 아이에겐 마음속에 기다리는 용기가 많으니 꺼내면 된다고 장담했다. 이젠 내 안의 용기를 꺼낼 차례다.
미안해,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