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by 착길


여름밤 산책 길에 만난 푸른 잎 위로

지나는 비가 남긴 영롱한 방울들

어느 나무에서 날아왔을까

잠깐 궁금하다 말았다

오직 빛나는 방울만 남았다


간간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새벽 비 내린 아침 아이 등원 길에

여름밤 만났던 그 잎이 다시 손짓한다

모양은 같은데 색이 바뀌었다

여전히 방울들이 영롱하다


돌아와 앉아 지긋이 보는데

방울들이 모여 물방울돋보기가 되었다

여름 밤엔 몰랐던 나뭇잎의 모습을

가을 아침에야 비로소 자세히 본다


어둠 속 빛나는 방울에 감탄했고

밝은 날 작은 방울들에 마음을 빼앗겨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제야 보이는

둥근 하트 모양 나뭇잎의 뒷모습,

누군가의 등줄기처럼 숭고하다


보석보다 귀한 생명들에게

제 몸 던져 등을 내어주는

노쇠한 누군가의 뒷모습 같다

마음돋보기가 생긴 날 비로소

지나온 삶의 줄기가 선명해진다




둥근 하트 모양으로

뜨거운 밤 영롱한 방울을 등에 업고

선선한 아침 물돋보기까지 만들더니

나 어딨는지 찾아보라고

내가 누군지 맞혀보라고 한다


그제야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아, 몇 발 안 가서 같은 모양의 잎이 보인다

곧고 긴 나무 기둥의 줄기에 수많은 하트잎들

바로 너였구나


그 이름도 유명한,

아득하고 아련하면서도 친근한,

계수나무

달밤엔 또렷해진다


여름밤
가을 아침
계수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