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2
‘사피엔스’를 읽기 시작한 건... 어쩌면 지난해부터였다. 아이들과 들린 교보문고에 전시되어 있는 책으로 1부 인지혁명을 읽고 난 후 기회가 되면 꼭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이 가진 무게감(?) 때문인지 구매도, 대여도 쉽지 않았다.
처음 접한 후 1년 반은 족히 넘긴 이번 주... 나는 드디어 ‘사피엔스’를 완독(玩讀) 했다. 사피엔스를 읽었다는 것보다, 책 한 권을 완독했다는 것이 의미 있을 만큼 최근 나의 독서 스타일은 난독(亂讀)이다. 잡히는 대로 읽고,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책들을 보며, 어느 날은 모두 다 읽은 것 같은 착각을, 어느 날은 아무것도 읽은 것이 없다는 자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피엔스를 읽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왠지 이 산을 넘어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래야 내 지독히 나쁜 독서 습관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드디어 나는 산을 넘었다.
사피엔스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인지혁명, 2부 농업혁명, 3부 인류의 통합 4부 과학혁명이다.
1부 인지혁명에서는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생겨나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하는 과정들에 대해서 풀어내고 있다. 태초에 인류는 지금 인류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과는 비교되지 않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식의 나무,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대홍수와 같은 성경의 에피소드(?)와 같은 제목으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진화와 확장, 이동 등을 설명한다. 그리고 사피엔스가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2천 년도 지나지 않아 거대 동물들을 포함한 지구 상의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하게 되었는데 그 가장 큰 원인이 사피엔스에게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2부 농업혁명에서는 사피엔스가 거주 영역을 확장하고, 유랑하며 수렵 채집하던 방식에서 특정한 지역에서 몇몇 동식물 등을 조작하고, 경작하는 농업으로 이행되는 과정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나는 이때부터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에 완전하게 설득됐다. 누군가는 허술하다고 하는 그의 논리가, 누군가에게는 상당한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그의 과학적 상상력에 나는 빠져들었다.(누군가 사피엔스를 읽기 시작하면서 초반에 흥미를 많이 느끼지 못한다면 최소한 농업혁명까지 진도를 빼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이 책을 읽을 힘이 생긴다.) 하라리는 사피엔스가 농업혁명을 통해 특정한 동식물에 집착하고 이를 재배, 경작 하기 시작하면서 지구 상의 어떤 동식물보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최고의 우위를 점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3부 인류의 통합에서는 사피엔스가 농업혁명을 통해 가용할 자원들을 축적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면서 ‘질서’와 ‘문화’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인류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다소) 자유로워지면서 제국을 출현시키고,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면서, 돈과 종교와 같은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주식회사, 종교, 국가 이런 것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피엔스가 필요에 의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질서’라는 것이다. 인류가 서로 연대하고, 교류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며 자본주의, 종교가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류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라리는 그 신뢰 역시도 인간의 상상력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4부 과학혁명에서는 과학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충격적일 만큼 사피엔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하라리에 의하면 과학은 결국 자본, 제국과 같은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권력자들에 의해서 발전할 수 있었으며, 그 발전의 결과가 개별 사피엔스, 그리고 인류 전체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과 없는 의심을 드러낸다.
저자는 과학혁명의 마지막은 생명공학의 혁명에 다다르며, 이는 결국 길가메시 프로젝트에 이른다고 얘기한다.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프로젝트가 결국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나타나는 신인류가 영생을 통해 큰 행복을 누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던진다.
사피엔스를 처음 접한 이후(완독 후가 아니라) 유발 하라리라는 저자에게 깊은 관심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유대인에 대해 관심과 호감이 높은 편이다. 유대인의 하브루타를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이 안타까운 적도 있었을 만큼
유발 하라리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소개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예루살렘 대학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게이로 산다는 것은’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뜨면서 그의 성적 지향도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성적 지향조차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설득당했기 때문 아닐까?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확실히 그에게 설득되었다. 그래서 사피엔스 후속작인 ‘호모데우스’도 읽고 싶고, 9월에 출간된다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가제)’도 읽고 싶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가 이 책을 쓰는데 계기가 되었다는 그 유명한 ‘총, 균, 쇠’도 다시 도전(?)하고 싶어졌다. (그 책은 사피엔스 전에 두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1장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욕심내지 않고 한 권씩 천천히 가볼 생각이다.
그리고 바란다. 인간 역사에 대해 대담한 질문들을 통해 일상의 작은 문제들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2018. 0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