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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솔 May 22. 2021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1)

서평 1-1

들어가며  

  신자유주의 경향은 오늘날 세계에 지배적인 경제 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 역시 지속되고 있다. 비판은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가 갖는 맹점을 간과할 경우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부분이 주를 이룬다. 

  인간 활동의 동기에 오늘날에는 경제적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상 인간 활동의 동기는 사회적인 것이다. 칼 폴라니는 인간의 경제활동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대명제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활동이 수단이라면 그 동기가 되는 것은 결국 사회적인 것이다. 사회적 지위, 권리, 자산, 유대 그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원시시대도 지금의 시대에도 인간에게 너무도 중요한 ‘사회’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장과 경제에 앞서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에 있어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유용하다. 

  ‘거대한 전환’을 읽으며, 이 책이 왜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 널리 읽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폴라니는 현대 주류 경제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시장경제에 대한 미신에 가까운 맹신은 문화인류학적으로도, 세계사적으로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폴라니의 생각이다. 


. 주요 내용 발췌

 

제1장 백 년 평화 


p.94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이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 없으며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 있다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따라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어떤 보호 조치이든 취하는 족족 시장의 자기 조정 기능을 망가뜨리고 산업의 일시적 자동을 혼란에 빠트렸기에 사회는 또 다른 방향에서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바로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시장 체제의 발전 과정은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가게 되었고결국에는 자신을 기초로 삼는 사회 조직마저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p.95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역사상의 두드러진 사건들을  그 사건들이 보여주는 흐름을 인간 사회의 제도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p.96

현재 인류가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 위기를 낳은 여러 제도의 기원을 통해 규명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p.98

“평화의 보전은 세력균형의 작동이었다.”


p.102

“세력 균형 체계라는 것 자체로 본래 전쟁을 예방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p.108

“오트 피낭 스는 평화의 도구로서 그 모습이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중략) 이를 움직이는 동기는 오로지 이득이었다.”


p.122

“평화의 기초는 경제 조직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그 19세기 경제 조직이 지극히 인위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인위적 성격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은 역사가들에게 극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2장 보수적인 1920년대혁명적인 1930년대 


p.151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차이점은 명백하다. 전자는 여전히 19세기 유형에 충실한 것으로서, 단순히 세력 균형 체계가 작동을 멈추는 바람에 터져 나오게 된 강대국들 간의 갈등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후자는 이미 전 지구적인 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대격변의 한 부분인 것이다. ”

 

제3장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p.163

인간들을 통째로 갈아서 무차별의 떼거리로 만들어버린 그 사탄의 맷돌(satanic mill)’은 무엇이었는가?”

 

p.165

경제적 자유주의는 산업혁명의 역사를 그릇되게 이해한다사회적인 사건들을 경제라는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우겨대기 때문이다.”

 

p.172

인간 역사의 모든 사회가 시장경제였다는 식의 가정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우리에게는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전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우리가 너무 쉽게 망각하고 있는 사실이지만시장경제라는 제도 구조는 우리 시대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으며 심지어 우리 시대에서조차 오로지 부분으로만 나타났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전체 경제가 시장경제 체제라는 가정이 무너진다면 장기적’ 시간 지평에서는 결국 시장이 균형을 스스로 달성하게 된다는 식의 사고의 틀로 아무 의미를 가질 수 없다그렇다면 어떤 변화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가 해로운 것인 이상그 반대의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그 최종적인 결과 또한 해로운 것이었다고 판단함이 온당할 것이다

(중략그런데 자기 조정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 먼저 증명되지 않는 한시장경제의 여러 법칙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결코 안 된다.”

 

제4장 사회와 경제 체제의 다양성  


p.182

“스미스의 공리는 그의 사후에 펼쳐진 미래 시대에는 대단히 잘 들어맞지만 아득한 과거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맞지 않는다.”


p.183

“미래의 대안이 어떤 것이 있을까를 가늠하는 작업을 해나가려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습벽을 고스란히 물려받으려는 인간의 타고난 천성을 극복해야만 한다.”


p.185

최근 역사적인류학적 연구에서 나온 두드러진 발견은 인간의 경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관계에 깊숙이 잠겨 있다는 것이다인간은 물질적 재화의 소유라는 개인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그가 행동하여 지키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사회적 권리사회적 자산이다인간이 물질적 재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목적들에 도움이 되는 만큼으로 한정된다

(중략) 개인에게 정작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유대를 유지하는 것이다

(중략) 사회적 의무란 모두 상호성(reciprocity)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그것을 제대로 지키면 개인적 수지타산이라는 차원에서 따져보아도 최선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


p. 186

인간이 갖는 여러 열망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오로지 비경제적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다.” 

 

제5장 시장 패턴의 진화 

 

p. 209-210

상호성의 원리는 대칭성을 패턴으로 삼는 사회 조직의 도움으로 작동하며, 재분배의 원래는 일정한 정도의 집중화를 통해서 작동이 원활하게 되며, 가정 경제의 원리는 자급자족 공동체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호성ㆍ재분배ㆍ가정 경제 등의 원리가 어떤 사회를 지배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회 내에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물물교환의 원리 또한 다른 원리가 우세한 사회 내에서도 종속적으로 위치를 차지하면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물물교환의 원리가 세 가지 다른 원리들과 엄격하게 일치하지 않는 점들도 있다. 

(중략)그런데 시장 패턴이라는 것은 잠재적으로 오로지 그것에 따라오는 고유한 동기, 즉 물물교환과 교역이라는 동기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모종의 특별한 제도를 따로 창출할 수 있으니, 그 특별한 제도가 바로 시장이다.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이것이 바로 경제 체제를 시장이 통제할 경우 전체 사회 조직을 압도해버릴 만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이다. 이것은 사회가 시장에 딸린 부수물로서 운영되게 된다는 엄청난 사태를 뜻한다. 경제가 여러 사회관계 안에서 묻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여러 사회관계가 경제 체제 안에 묻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사회의 존속에서 경제적 요인이 절대적 중요성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경제 체제가 사회 조직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제도들-특정한 동기들로 작동하면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는-로 조직되고 나면, 사회는 그 경제 체제가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서 작동하도록 존중하는 방식으로 다시 틀을 갖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는 오직 시장 사회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는 낯익은 주장에 담긴 의미이다. 

 여기에서 실로 결정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고립되어 따로따로 존재하던 여러 시장을 뭉쳐 하나의 단일한 시장경제로 만들고 또 규제를 받는 시장을 뭉쳐서 자기 조정 시장으로 만들어낸 과정이다. 

 

제6장 자기 조정 시장 그리고 허구 상품: 노동토지화폐 

 

p. 243

결정적인 핵심은 다음과 같다. 노동ㆍ토지ㆍ화폐는 산업의 필수 요소이며, 이것들도 시장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사실 이 시장들이야말로 경제 체제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그러나 토지ㆍ노동ㆍ화폐는 분명 상품이 아니다. 매매되는 것들은 모두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가정은 이 세 가지에 관한 한 결코 적용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상품에 대한 경험적 정의를 따르며, 이 세 가지는 상품이 될 수 없다. 노동이란 이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인간 활동은 인간의 생명과 함께 붙어 있는 것이며,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에서 생산된 것이다. 게다가 그 활동은 생명의 다른 영역과 분리할 수 없으며, 비축할 수도 사람 자신과 분리하여 동원할 수도 없다. 그리고 토지란 단지 자연의 다른 이름일 뿐인데, 자연은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의 화폐는 그저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며, 구매력이란 은행업이나 국가 금융의 메커니즘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 어떤 것도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ㆍ토지ㆍ화폐를 상품으로 묘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구이다. 

 

마치며  


  칼 폴라니의 ‘ 거대한 전환’은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만큼이나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다양한 해석과, 견해들이 피력되는 고전이다. 책의 분량이나, 내용 모두 읽어내기가 수월하지는 않기 때문에, 더욱 논의가 활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전환’을 읽으며 얕은 지식을 한탄하면서도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주요하게 사용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는 개념이 계속 떠올랐다. 정상과학은 과학자 공동체가 세계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가정에 입각한 것으로 과거에 있었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뜻하는 것이다. 정상과학은 근본적으로 새로움을 억제하는 특성을 가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과학을 전복시키는 비정상적인(extraordinary) 탐구가 시작되고 이를 통해 전문 분야에 변동이 생기는 비정상적인 에피소드들이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라는 것이다. 즉, 정상과학이 이룬 일군의 성취가 패러다임이라면, 과학혁명을 거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연속적으로 이행될 수 있다. 이는 성숙한 과학의 통상적인 발달 양상이지만, 그러한 패러다임의 변화, 전환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일반적이다. 

  칼 폴라니의 이처럼 위대한 ‘거대한 전환’ 역작, 역시 그가 살던 시대에는 제대로 받아들여지지도, 충분히 논의되지도 못했던 것도 이러한 패러다임의 속성(?)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혁명의 구조’의 서론에서 토마스 쿤은 이렇게 포문을 연다. 

“ 만일 역사가 일화나 연대기 이상의 것들로 채워진 보고(寶庫)라고 간주된다면, 역사는 우리가 지금 홀려 있는 과학의 이미지에 대해서 결정적인 변형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 한 줄의 문장은 참으로 오랫동안 곱씹을 만하다. 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의 이미지, 그리고 과학적(科學的)이라는 것이 실상 미신에 불과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결국 현대 사회가 시장 경제에 대해서, 자유주의적 시장에 대해서 가진 이미지 역시 이 문장으로 수렴된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시장은 단지 상호성, 재문 배, 가정 경제와 같이 하나의 원리로 존재했던 물물교환을 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했다. 그러나 19세기를 거치며 시장은 신화가 되었다. 칼 폴라니는  기술이 고도로 진보된 사회는 그 내부에 전체주의의 맹아를 품고 있다”라고 했다.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제1장~제6장까지의 내용에서 칼 폴라니의 생각을 다 이해할 수도 읽어낼 수도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노동ㆍ토지ㆍ화폐에 대한 맹목적으로 가지고 있던 환상은 깨졌다. 


  코로나 19로 인해 세계 정치, 경제, 사회에 큰 변화가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고, 가상화폐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열기 또한 높다.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주택정책에도 불구하고 주택 가격은 10억 클럽을 넘어 20억 클럽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끝없이 치솟고 핀셋 규제를 피해 풍선효과는 지속되고 있다. 인간의 노동력은 매년 최저임금의 꼬리표를 달고, 수치화된다. 폴라니 말하면서도 현실은 여전히 시장판이다. 폴라니가 말하는 상호성, 재문 배, 가정 경제가 어떠한 제도 없이도 가능했던 역사는 잊힌 지 오래고, 우리는 오히려 그 장구한 역사를 무색하게 하는 대안 경제‘라는 아이러니한 이름으로 다시 상호성, 재분배를 소환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폴라니를 통해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은 시장의 대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세상의 인간성의 회복이다.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코로나 19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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