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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시민 Nov 30. 2021

다정소감; 김혼비를 좋아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 작가, 김혼비.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웃지 않았던 때가 없었는데

울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을 닦아가며 책장을 넘겼다.

따뜻한 바람이 가슴 안에서 치는 것을 느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많은 다정이라니.

그것은 작가의 다정함에 대한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으며 김혼비처럼 살고 싶다 생각했고,

아무튼, 술을 읽으며 김혼비의 삶이 내 삶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웃었고,

이 책을 읽으며 김혼비의 친구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책은 작가가 살아오며 했던 다정한 생각들,

맞닥뜨린 다정의 순간들,

마음이 버석거려 눈물조차 말라버린 가슴을 다정함이 적셔주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중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충고를 조심했던 작가의 한때가 나오는데

책의 구절이 아주 인상 깊다.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겪어본 타인의 충고는,

나와는 다른 그 사람만의 경험담일 뿐이지만,

그 '다름'이 내가 미처 고민해보지 못한 다른 가능성들에 눈을 돌리게도 한다.

"내가 괜히 건넨 충고가 네 경험을 제한할까봐"

"네가 선택한 경험에서 배우는 게 진짜야"라며 말을 조심하는 이들에게 충고를 부탁할 때 내가 자주 하는 말은

"하지만 사람은 여러 충고 사이에서 최종 선택을 하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도 많이 배워요."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하는 문단이었다.

한국의 꼰대 문화에 질색하며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되뇌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했을 생각.

나의 섣부른 충고가 너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되면 어쩌나.

충고랍시고 건넨 말이 오만이었다면. 방자함의 방증이었다면.



그러나 김혼비의 말처럼 이런 고민을 거듭하며 충고를 망설이는 이는

대게 진짜배기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틀림없다.






내가 울었던 에피소드는 작가의 학생 시절, 그녀를 스쳐갔던 친구 M의 이야기.

M은 성향이 독특하고 고독을 자처하는,

낙엽 뒹구는 것만 봐도 꺄르르 거리는 시절에는 보기 힘든 독고다이 재질이라

작가가 M의 드문 친구 중 한 명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멀어진 작가와 M.

우연히 점심시간이었나, 복도를 지나던 작가의 눈에 멍하니 홀로 창밖을 응시하던 M이 들어왔다.

슬그머니 다가가자 활짝 꽃이 만개한 듯한 얼굴로 작가를 반겼던 M.


시간이 지나 M은 작가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전학을 갔다.




첫 줄을 읽기도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온 어떤 문장에 갑자기 숨이 멎는 듯했다.

거기엔 석 달 전 점심시간에 관해 적혀 있었다.

그날 얼마나 반가웠는지, 또 얼마나 기뻤는지.

올해 들어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다며 M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 후로 어쩐지 점심시간마다 너를 계속 기다리게 됐어.

혹시 또 안 오나 해서."



편지에 남겨진 이 한 문장에 작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그 순간을 읽어내리는 내 눈에서도 같은 것이 흘러내렸다.

애틋하고 아련한 우정. 벚꽃 같은 찰나.

내가 아는 모든 애상적인 것들이 눈 앞을 스쳐지났다.


작가는 후회한다고 했다.

더 잘해줄걸, 더 자주 놀러갈걸, 이 아니라.

가지말걸. 가지 말아서 너에게 기대와 뒤이은 좌절을 주지말걸.

그녀는 죄책감마저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앞으로 김혼비의 책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할 것이다.

그녀가 소설을 낸다면 소설을 읽고,

인문서적을 낸다면 인문학도가 되어보지, 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 작가.

김혼비의 글은 다정소감이 아니더라도 늘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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