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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변 Oct 26. 2016

온라인 명예훼손 1: 피해자인 경우

SNS 상 사실적시 및 허위사실적시명예훼손, 모욕의 피해자를 위하여

사이버 공간에서의 다툼은 늘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특히 익명 가입과 탈회가 쉬운 SNS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SNS를 통한 명예훼손과 모욕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고소니 신고니 하는 말이 툭하면 튀어나오고, 이렇게 하면 고소를 피할 수 있다거나 이렇게 하면 고소가 된다거나 하는 말들도 매우 많습니다. 그중에는 올바르고 유용한 정보가 많이 있습니다만, 저도 매우 많은 문의전화를 받고 상담을 하는 입장이라 피해자와 피의자(가해자) 각각을 위하여 글을 하나씩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글은 포털 사이트가 아니라, 익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트위터와 같은 SNS 및 인터넷 게시판 사용자를 위한 것입니다.



1. 피해사실을 잘 보이게 저장하세요. PDF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는 모든 범죄 피해에서 당연한 것입니다만, 글의 삭제가 쉬운 온라인 상 피해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피해가 발생하면 그 자료를 정확하게, 가능한 다양한 형태로 저장하세요. 꼭 PDF일 필요는 없고, 그림파일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전체 URL은 있는 편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트위터라면, 트위터 화면을 굳이 PDF 로 전체 저장할 필요는 없지만, 가해 트위터의 개별 링크를 따 놓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를 종이 위에 출력하는 경우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PDF 출력을 하면 전체 URL 추적이 쉬운 장점이 있으나 글 본문이 잘 보이지 않아 안 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바일 화면을 스크린샷으로 저장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대체로 글자가 크고 분명하게 나오고 광고 등이 함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보입니다. 대신 이 경우 URL 이 보이지 않지요. 형사절차는 전자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A4지 위에 출력하면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하고, 어떤 형태로 제출하게 될지 저장하는 시점에는 아직 알 수 없으니, 변호사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 형태로 저장해 두세요. PDF, JPG, PNG 등 파일 포맷에 따라 쓸 수 있고 없고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1) 제3자가 나중에 보아도 맥락이 분명히 보일 것 (2)크고 선명할 것 두 가지를 염두에 두세요.



2. 신고와 고소 중 한 가지를 선택하세요.

온라인 상에서 신고와 고소 두 용어가 종종 함께 쓰이고, 온라인 명예훼손 및 모욕 (이하 '온라인 명훼 등'이라 합니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형사절차에서 신고와 고소는 이후 진행되는 내용이 다릅니다. 여러가지 차이가 있지만 장단점을 아주 거칠게 말하면, 신고는 빨리 진행될 수 있고 고소는 피해자의 통제권이 더 큽니다. 악플 등을 발견했을 때 증거와 정황이 명확하고 최대한 신속히 대응하고 싶으면 일단 신고를 하여 삭제 전에  입건될 수 있게 노력하는 편이 낫습니다. 특정인에게 장기간 시달리고 있거나 피해의 범위가 방대하면 '형제'사건번호가 부여되고 형사사법포털 킥스에서 사건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으며, 추후 항고 등을 할 수 있는 고소가 낫습니다.


3. 형사절차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아무리 단순한 형사사건이라도 3~4개월은 걸립니다. 많은 형사사건이 6개월 이상 걸립니다. 법적 절차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적어도 보름, 길게는 월 단위로 호흡하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내가 피해자라면 한두 달 뒤에도 이 문제로 계속 고통스러울지, 내가 이 피해를 몇 달 동안 상기하고 공적 절차를 진행하고 싶은지를 매우 깊이 생각하고 차분히 진행하기를 권합니다.


SNS 등에서는 글의 회전 속도와 전파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그래서 위 3번과 달리 몇 시간, 며칠 단위로 마음이 바뀌고 조급해지고 심적 동요가 클 수 있습니다. 진정하시고, 온라인 상에서의 심한 공격이나 충격에 잘 대응하기 어렵다면 주변인들에게 증거수집 등에 도움을 청하고, 피해자 본인은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에 내방하시면서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하는 편이 안정적이고 정확한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4. 준비된 후에 수사기관에 가세요.

피해자가 느끼는 큰 정신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온라인 명훼 등은 그 자체로는 범죄 중 중범죄가 아닙니다. 즉, 수사기관에 신고 혹은 고소를 하였을 때 내 사건이 그다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고소를 하기로 큰 결심을 하고 경찰서에 갔지만, "이런 건 고소 거리도 아니다"는 말을 듣고 돌려보내지거나, 고소하려고 갔는데 단순한 신고로 처리되어 순식간에 내사종결로 끝날 위험도 있습니다(이런 점이 걱정이 될 경우 반드시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온라인 명훼는 오프라인에서의 다른 범죄와 연관되지 않는 한 즉각적인 신변보호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가해자를 구속수사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의 피해의 중대성, 가해행위의 위법성 등을 잘 정리하고 준비한 다음에 수사기관을 방문해야 합니다. 경찰서에 가서 '말로 설명을 열심히 해서' 내 피해를 어필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안타깝지만, 피해자가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내 피해가 어떤 점에서 중한 피해인지를 잘 정리하세요.



5. 가해자를 찾아내세요.

온라인 상의 누군가가 완전한 익명이기는 매우 힘듭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 대한 정보를 흘립니다. 트위터, 익명 게시판 등의 정보만으로 오프라인에서의 가해자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IP를 알면 가해자를 찾을 수 있다는 둥 말을 하지만(또 실제로 수사기관은 마음만 먹으면 가해자를 찾아낼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수많은 범죄 중 온라인 명훼 등은 수사에서 우선순위가 높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피해자가 되었다면 가해자가 오프라인에서, 현실에서 누구인지를 찾아 보세요. 가해자에 대해 알면 사건의 진행이 매우 쉽습니다.


온라인 명훼의 많은 가해자들이 온라인 상 정보가 아니라 오프라인의 정보를 통해 노출되고 처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지인의 지인의 지인을 통해 알려진 전화번호, 자신이 자발적으로 쓴 글에 드러난 연령, 학교, 지역, 계좌번호 등이요. 내가 피해자라면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저장하고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자를 실제로 찾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6. 대안적 해결을 고려하세요.

온라인 명훼 등의 가해자가 구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벌금 몇 백 만원 선이 최대한의 처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형사범죄기록, 소위 전과가 남는 것은 가해자에게 큰 타격을 주는 일입니다. 가해자가 이후 다른 범죄를 저지를 때 더 중한 벌을 받는 양형자료가 될 수도 있고, 직장생활이나 학교생활 등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경찰 내부 자료인 회보서에 남는 수사 및 범죄경력조회 내역은 평생 삭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온라인 명훼만으로 가해자를 '콩밥 먹게' 하거나 피해자가 '치킨을 수백 마리' 뜯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피해자라면 수사기관에 의존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분쟁조정절차, 민사소송 등 여러 대안적 대응 방안을 고민해 보고,  전문가와 상의해 보세요.


7. 보호받으려면, 피해자도 노출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세요.

온라인 명훼, 모욕 등은 그 대상이 특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가해자를 찾아내는 것 만큼이나 피해자인 내가 드러나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 닉네임 등으로 이러한 특정성이 만족되는지에 대하여 수사기관과 법원은 아직 매우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의 나(가장 전형적인 예는 본명이지요)"를 향하지 않은 욕설 등은 피해자가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온라인 상의 나"라는 자아감과 일치하지 않지만, 법적 절차에서는 오프라인의 누구, 라고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야 법적 절차 진행이 가능한 것이 원칙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오프라인에서 아무도 몰랐으면 하지만 온라인에서 나한테 욕한 사람은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는 것은 이루어지기 힘든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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