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에 부합하는 언어라는 벽 앞에서
재판을 앞둔 의뢰인이 직접 만나 자료도 전하고 말씀도 하고 싶다고 하셔서 김포 쪽으로 의뢰인을 뵈러 갔다. 나도 서면 초안을 파일보다는 종이로 보여드리고 싶었고. 다들 일하느라 참 힘들다. 삶을 뒤흔드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일하다가 잠깐 눈치를 봐 가며' 변호사를 만난다.
의뢰인은 내가 출력해 간 의견서를 천천히 읽고, 우셨다.
나는 법원을 신뢰하는 사람이나, 마음을 어떻게든 글로 현출해야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의 한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주 생각한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 얼굴에, 내 몸에, 내 손짓에, 내 행동 하나하나에 내 마음이 있지만 그것을 '내 글'로 쓸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법적 절차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것을 위해 전문가가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전문가에게 닿기 위해서도 여전히 그 규칙에 부합하는 언어를 어느 정도는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전에는 어떤 심의에 위원으로 들어갔었다. 당사자는 위원들 앞에 앉아 가슴을 치며, 젖은 티슈를 손에 움켜쥔 채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이 고통을, 이 마음을, 하는 말을 한 글자 한 글자 토해내듯 몇 번이나 했다. 그 말을 모두 속기하고 모두 녹음했지만, 그 기록이 어떻게 그 순간과 같을 것인가. 그 몸부림을, 그 절박함을, 그 말이 다 되지 못한 채 종이 위에 흔적만을 남기는 감정과 사건들을,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