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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an 16. 2022

반가워, 이탈리아

2년 만에 이태리에 다녀왔다. 코로나 사정이 좋아진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간절했다. 햇살, 시끄러운 사람 소리, 색이 고운 야채 같은 모든 것들이 사무쳤다. 가는 날까지 항원 검사를 하며 마음 졸였지만 딱 두 시간 비행을 하고 나니 어느새 이태리다. 


애초에 스키를 타러 가기로 했던 여행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계획을 변경했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실컷 만나고 오기로 작정하고 떠났다. 하지만 만나기로 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코로나 확진이 되면서 이태리에 가서도 그리운 이들과 서로 통화만 하는 기이하고 슬픈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많아진 시간 덕분에 오래 살았던 동네를 하릴없이 거닐고, 이태리 TV를 보고, 이태리 슈퍼에서 장을 보고, 시내 나들이를 다녔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어쩐지 그곳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기분마저 들었다. 살면서는 느리게 변하는 이태리가 무료하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다시 찾은 그곳의 한결같은 풍경은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 살 때도 있었던 커피가 맛있는 BAR, 느끼하지 않은 슈크림이 꽉 찬 브리오쉬를 파는 작은 카페, 두툼한 반죽에 담백한 토마토소스가 일품인 피자 집, 꽃 모양으로 아이스크림을 담아주는 아이스크림 가게, 입안 가득 버터향을 풍기며 부서지듯 녹는 쿠키를 파는 빵집, 한국에 있는 중국집도 울고 갈 만큼 맛있는 짬뽕을 파는 한식당에서 배를 불리고, 추억을 오늘로 만들고, 그리움을 달랬다. 


코로나로 큰 상처를 입은 이태리는 조금 달라지기도 했지만 또 달라지지 않기도 했다. 제아무리 코로나가 대단하다고 해도 수다 본능을 참을 수 없어 마스크를 들썩이며 길거리에 서서 오래 마주 보며 수다를 떨었다. 볼에 쪽쪽 소리를 내는 이태리 특유의 인사를 하기 전에, 마스크를 쓴 서로를 잠시 바라보며 망설이다 키스하는 흉내를 내며 입으로 쪽쪽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에라 모르겠다 결국 볼을 맞대는 이들도 있었다.  정부에서 코로나 감염을 줄이기 위해 지원금까지 주면서 자전거와 킥보드를 권장했다너니,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하지만 준비 없이 자전거와 킥보드 이용자만 늘어 깜빡이 없이 끼어드는 게 일상인 자동차들과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 자전거들과 킥보드가 다 함께 질주하는 도로는 위험하고 혼잡했다. 빵빵 클랙션을 울려가며 창을 내리고 손으로 험한 욕을 하는 운전자들과 그들을 향해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험한 욕으로 화답하는 라이더들의 대화는 달라진 거리의 풍경을 하나도 달라지지 않게 보이게도 해주었다.


우리가 이태리에 있는 동안에도 확진자 수는 매일 충격적으로 늘어갔지만, 방역 패스를 앞세우고 할 건 다 하는 이태리 사람들처럼 마스크를 쓰고, 방역 패스를 손에 꼭 쥐고 한 번도 이태리를 떠난 적 없는 사람들처럼 변하기도 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일상 같은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제아무리 코로나가 대단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그들 다움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이태리를 만나고 돌아왔다. 


딸에게는 고향이고, 우리 부부에게는 치열했고, 아팠지만, 참 빛나던 시절의 기억을 담은 이태리가 안녕하길 바란다. 천연덕스럽고 뻔뻔한 유쾌함으로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이 담에 크면 꼭 다시 돌아가 살겠다는 딸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쯤에는 마스크 안 쓰고 침을 튀어 가며 수다 떨고, 망설임 없이 끌어안고 볼을 비비며 인사하는 이태리를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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