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by SyaMya

아이.

아이는 있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결혼을 했지만 좀처럼 어른이 되지 못했던 우리 부부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이 해결되는 언젠가 아이를 낳기로 했다. 언젠가라고 잠정적인 합의를 하긴 했지만 그 언젠가가 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고, 아이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사는 진중하지 못한 우리의 부부 생활이 그대로 좋았기 때문에 아이를 마다한 건 아니다. 살아낼수록 삶도 나도 믿을 수 없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불안한 상태로 외줄을 타듯 우리 둘을 건사하는 법을 겨우 익혀내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라니. 그건 언젠가 고래의 등을 쓰다듬어 보겠다는 것과 비슷한 공허한 꿈같은 것이었다.

러시아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이태리에 와서 7년을 아슬아슬 살았다.

노래하는 남편은 예술과 직업이 만나는 교차점을 찾아내느라 이태리 전국을 유랑했고, 누군가가 되보려고 한껏 부풀었던 나는 생활이라는 바늘에 콕 찔려 바람이 싹 빠진 직장인이 되었다. 철이 들지 않았지만 제법 치열할 줄 알게 되었다. 치열하여도 불안한 일상이 당연해지던 이민자 부부 7년 차 여름에 우리는 어떠한 비장함도 치밀함도 없이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불안이 해결되는 언젠가는 오지 않았고, 어쩌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결혼을 하기로 했을 때처럼, 이태리로 오기로 했을 때처럼,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을 뿐이다.

우리는 귤을 사느냐 사과를 사느냐 보다 더 빠르고 신속하고 단호하게 그런 중차대한 결정들을 해왔다.

깊이 생각하면 답이 없는 일을 대하는 우리식의 무모한 해결 방법이다.

그리고 그 여름.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기다렸던 것이 분명한 작은 사람이 찾아왔다.

아직은 태양의 위세가 당당한 여름의 끝에 작은 사람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단호하게 만남을 결정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작은 사람은 7년 내내 귤 사과 사는 것보다 쉽게 내려질 우리의 결정을 기다리며 준비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7년 동안의 불안은 '껌'이었다고 느낄 만큼의 불안이 엄습했지만, 무모한 우리는 또 행복했다.

작은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노래하는 남편은 예술과 직업이 만나는 교차점을 잡아보기도 했고 놓치기도 했다. 작은 사람이 왔지만 우리 생의 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제 셋이서 외줄을 타야겠구나 직감했지만 자꾸만 행복해서 내 인생 전체에 늘 흐르던 배경 음악 같은 불안이 흐트러졌다.

작은 사람이 오기 일주일 전 면허를 딴 노래하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깜깜한 밤에 작은 사람을 만나러 병원에 갈 때. 나는 어쩐지 다 잘될 것만 같았다.

아이 엄마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죽다 살아나는 산통 전설을 하나 획득하고 드디어 작은 사람을 만났다.

까만 머리. 붉은 빗이 도는 살갗, 성냥개비처럼 작은 손가락, 그리고 재채기.

벗은 내 가슴 위에 따끈한 사람이 올려졌을 때 세상이 다 지워지고 나도 지워지고 작은 당신만 가득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나이를 먹어버린 이방인 부모에게 완벽한 작은 사람이 찾아왔다.

작은 사람 당신을 만나고 우리는 어느 때보다 치열하리라 다짐하며 비로소 비장했다.

네 작은 손을 잡고, 다 잘될 거야 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철은 없었지만 세상은 좀 아는 줄 알았는데 셋이 되자 내가 알던 세상은 리셋되고 업데이트되어 전혀 다른 곳이 되어 버렸다. 셋이 만난 낯선 세상에서 설상가상으로 낯선 나를 만났고, 낯선 노래하는 남편을 만났다. 작은 사람에게 나는 견고하고 든든한 보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작은 사람처럼 나도 작아지고 약해졌다.

작은 사람이 나를 의지할수록, 내가 나를 의지 할 수 없어 한 없이 불안했다. 작은 사람을 알고 싶은 나는, 막상 스스로를 너무 몰라서 서글펐다.

나도 모르는 나와 스스로를 모르는 노래하는 남편은 서로를 몰라가며 서로에게 미안하지만 기적 같은 작은 사람과의 동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