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ming-in 모자 동실

by SyaMya

내가 아는 출산은, 땀방울 송송 맺힌 산모의 얼굴 - 분만실에서 들리는 산모의 비영 - '응애' 하는 아기 우는 소리 - 신생아 실 유리창에 달라붙어 웃고 있는 식구들로 마무리되는 Happy endding이다.


서른이 넘도록 누가 출산하는 것을 볼 일도, 누가 출산했다고 해서 바로 병원에 가 본 경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출산에 대한 나의 지식은 매체를 통해 전달받은 상직들에 모습에 그친다.

예정일이 다가와 마지막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더니 병원에서 분만실 올 때 챙겨야 하는 준비물이 적힌 종이 하나를 주었다. 준비물 외에도 아이를 낳고 선택 사항으로 Rooming-in을 할 수도 있다고 적혀있었다. 산모의 상태가 안 좋거나,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아이와 함께 있을 것을 권유했고, 또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경우 입원실에 보호자 1인이 24시간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낳을 일만 머릿속에 가득했는데, 바로 그다음에 아이랑 같이 있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라니, 그렇다면 내 그림 속에 있는 신생아실 창문 너머로 아이를 바라보는 가족들과 happy ending은 어떻게 되는 건가?

모자 동실이라는 방침은 이탈리아에서도 실행된 지 몇 년이 안되었고, 병원에 따라서 여전히 아이들을 신생아 실에 따로 두는 곳이 더 많은 현실이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 제도 차이가 큰 이탈리아의 경우 남부지방의 병원에서는 모자 동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따로 보호하는 신생아실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산모의 빠른 회복, 외부로 부터 올 수 있는 각종 병균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 그리고 아이들의 이른 독립을 준비하려는 차원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신생아실을 반기지 않는 세련된 히피를 닮은 이태리 친구는 신생아실은 사람을 노동력으로 취급하는 산업 사회의 기괴한 발명품이라고 했다. 신생아실을 운영하면 산모는 빠른 시간에 건강을 회복하여 노동력 창출을 하고, 아이는 나자 마자 엄마 품을 떠나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해 보다 신속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재 몫을 하는 존재가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는데...

분명한 것은 세상이 발달하고, 유행이 흐르듯이 그 사이 의학이 발달했고, 의료계에도 새로운 유행의 바람이 일고 있다.

모든 것을 자연의 법칙대로, 포유류에 속한 인간, 포유류 중에서도 독립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그렇듯이 아이를 낳아 품에 품고, 바로 젖을 주는 것이 당연할 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보다 그렇게 해야 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이다. 그 일이 가능하도록 산모와 신생아의 몸에서는 서로를 찾는 호르몬들이 분비되고 (특히 애정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Oxitocin), 신생아와 산모의 부자연스러운 분리는 산모의 회복과 아이의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몰라서 용감해도 너무 용감했던 나는 일단은 모자 동실을 하겠다고 했다. 많이들 그렇게 한다고 하니 나라고 그렇게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아이를 낳아보니 온몸 어디 안 아픈 데가 없고,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Rooming-in에 대한 나의 다짐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분만을 한 엄마들이 비스듬한 자세로 아이를 안고 앉아 있는 걸 보고서야. 아! 했다.

그게 이런 거구나.

얼마 지나서 챙겨 보낸 배냇저고리를 입은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내가 괜찮은지 큰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고 아이와 같이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이가 울면 젖을 주라고 하고 아이를 두고 갔다.

아이가 금세 울었다.

젖을... 주라고 했는데.... 이걸 어떻게...


일단 내 가슴팍에 시아를 안아 들고 살살 토닥이고, 출산 전에 대충 배워둔 대로 젖을 물렸다. 눈도 안 뜨고 젖을 찾는 신기하고 놀라운 생명. 온전히 나를 의지하는 작은 사람과의 동행은 그렇게 치밀한 준비 같은 것도 없이, 치열한 고민도 없이 시작되었다.

몸은 여전히 아팠고, 금방이라도 눈이 감길 것처럼 힘들었지만 '아앙'우는 소리, 떴다 감았다 하는 눈, 조그만 입술, 손가락, 발가락이 나를 붙들었다. 나한테 안겨서도 손발을 움직이며 더듬더듬 나를 찾는 시아에게 '엄마 여기 있어'를 자연스럽게 되뇌었다. 늘 엄마였던 것처럼.

애정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Oxitocin이 경이로운 힘을 발휘하는 하얀 밤이었다.

내 아이가 울고, 겨우 잠이 들면, 옆 침대 아이가 울고, 그 아이가 잠들면 또 다른 아이가 울고, 다 같이 잠들면 옆 입원실 아이가 울고, 그렇게 '모자동실'은 사랑이 넘치고 시끌벅적하고 피곤이 난무했다.


수술을 했거나 몸이 아픈 산모를 제외하고는 모두 모자 동실을 하고, 한 입원실에 3명의 산모가 3명의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밤새 아이 우는 소리, 젖 먹이느라 이리저리 뒤척이는 소리에 '충분한 휴식'은 남의 일이 되어 버렸지만, 산모들은 마치 천년 정도 산모를 해왔던 것처럼 어그적거리며 일어나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았다.

24시간 보호자 동실은 혜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만큼이나 미숙하지만 갈아입힐 새 옷을 찾아주고, 내가 밥 먹을 동안 아이의 곁을 지켜주는 남편도 병원에서부터 육아를 시작했다.


품 안의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육체의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황홀은 경험하지 못했다. 아이는 예뻤고 나는 아팠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만남을 선택했고. 그 첫 만남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아이와 산모를 살뜰하게 돌보아주는 산후조리원의 경험이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모자 동실'이나 낳자마자 육아라는 환경도 의미 있고, 포근했다.

그래서 rooming in을 찬성하냐, 혹은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감히 그러지는 못하겠다. 아이와의 다양한 방식의 만남이 이해받고, 지지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정도의 생각을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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