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ultorio Familiare
이름도 생소한 가정상담소, 가정상담소라면 해결하기 어려운 가정 문제를 들고 나와 상담하거나 법적 도움을 의뢰하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가정상담소는 의료 기관이다. 지역 보건소에 (ASL) 속해있는 기관으로 주로 임신, 출산, 육아 등의 문제에 대해 정신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 경험 있는 조산사들의 무료 진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각 상담소마다, 해당 지역의 예산에 따라 활동 영역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예산이 좀 되는 지역 상담소에서는 보험이 없는 임산부들이 찾아올 경우 무상으로 필요한 검사들을 해주기도 하고, 자폐 등의 장애가 있는 영유아를 위한 무료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 밖에도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 미혼모, 가정 폭력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응급 처치를 해주기도 하는 곳이다.
내가 상담소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아이는 그냥 낳고, 그냥 키우는 건 줄 알았는데, 모유 수유부터, 아이의 울음, 아이의 몸에 있다가 없어지는 조그만 빨간 반점 등등, 생각도 못했던 일련의 사건들 (어떤 아이에게나 있는 그냥 그런 일이었으나 당시엔 그보다 큰일이 없었다)을 겪으면서, 아직 나하나 건사하면서 살아가기도 버거운 철부지가 100% 나에게 의존하고 있는 한 작은 인간을 앞에 두고 갖게 되는 혼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래선 안 되겠구나, 몸조리를 도와주시러 바다를 건너오신 친정 엄마도 곧 서울로 돌아가시는데, 우리 셋이는 어렵겠구나’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시에서 보낸 ‘조산사 언니'가 가정 방문을 나왔다. 사실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아가씨였는데 시아를 안고, 이리저리 살피기도 하고, 간단한 내진을 통해 내 상태도 진단해주고, 모유 수유와 배꼽 소독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도 해주는데 모든 것이 너무 능숙한 ‘달인’의 냄새가 풀풀 났다. 이런 분들은 어디 계신 건가 싶어서 물었더니, 가정상담소에서 일한다고 하면서 각 지역마다 상담소가 있으니 문의해보라고 했다. 초보 엄마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상담소도 있으니 알아보고 참석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도 해주었다. 보건소에 연락해서 전화번호를 받아 연락해 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애기 엄마들이 모이는 시간이 있으니 와보란다. 모임의 성격을 파악 못하고, 친정 엄마에 남편까지 대동하고 갔는데, 남편과 엄마는 문전 박대를 당하고 아이와 나만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갓 태어난 아이부터 백일 정도 될 법한 아이들을 품에 안은 엄마들이 바닥에 죽 둘러앉아 있었다. 너도 나도 젖을 먹이느라, 기저귀를 가느라, 우는 아이 달래느라 정신이 없으면서도 말하기 좋아하는 이태리 사람들 답게 끊임없이 입을 움직였다. ‘우리 애는 밤에 안 자고, 어제는 모유를 조금밖에 안 먹고, 모유가 부족한 것 같아 분유를 줄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고, 남편이 기저귀 가는 것이 못 미덥고,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다가, 갑자기 너무 우울하기도 하고, 애기랑 둘이 있으면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등등 고민도 가지 각색이다. 처음 보는 엄마들 앞에서 내 얘기를 하기도 뭐하고 해서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가만히 듣는데, 그렇게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엄마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들 그렇구나. 원래 그런 거구나. 많은 사람들이 해내는 일이긴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구나. 이렇게 어려워해도 되는구나. 괜찮아. 그렇게 어려우면 울고 도움도 구하면서 하면 돼. 할 수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에 연세가 있어 보이시는 조산사 두 분과 아동 정신과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쏟아지는 엄마들의 질문에 차근차근 답해주셨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듣고 나니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더 예뻐 보이고, 비로소 엄마의 대열에 들어선 내가 조금 기특했다. 덤으로 우리 시아 몸에 난 빨간 반점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권위자의 말씀까지 듣고 나니 세상 걱정이 다 사라졌다. 그렇게 시아가 3개월이 될 때까지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면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 새로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기도 하고, 괜히 힘들고 어려운 마음에 앞이 깜깜할 때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징징대기도 하고, 그럴 때는 친구 엄마들의 위로도 받고, 선생님들의 ‘괜찮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잘할 수 있다 ‘ 소리를 듣고 새 힘을 얻기도 했다.
우리가 참가했던 프로그램은 아이가 3개월 될 때까지만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3개월이 되던 날 엄마들의 볼 뽀뽀 인사를 받고, 초보 엄마 모임을 졸업했다.
깔끔한 시설,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 그 모임이 없었더라면 참 힘들었을 것이다. 괜찮다는 말을 들으러 매 주일 아이를 안고 기저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이가 앙앙 울어도 아무도 힐끗 돌아보지 않고, 아이 우는 소리에 대화가 끊겨도 누구도 개의치 않는 그 시간이 참 편했다.
가정상담소에서의 3개월은 7년 이태리에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먼저 똑똑 이태리 사람들에게 노크를 한 놀라운 경험이기도 하다. 엄마는 절실하고, 그 절실함은 당당하고 뻔뻔한 에너지를 만든다. 내 손가락을 꼭 잡은 아이의 분홍색 손가락에 이끌려 찾아간 가정상담소는 아이와 같이 만난 참 푸근한 이태리였다.
2년쯤 지나 가정상담소의 시간을 함께한 엄마를 우연히 마주쳤다. 씩씩한 두 살 아들을 숨 가쁘게 따라가고 있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가며 크게 인사를 했다. 내 곁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궁금해하는 시아와 나를 번갈아보며 그녀도 크게 인사를 했다. 아이들 챙기느라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짧은 순간 우리는 애썼다. 괜찮다, 잘했다 라고 덕담을 나누고 서로를 꼭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