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건 큰 행운이기도 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부모님이나 믿을 수 있는 친지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참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이가 10개월 되던 3월에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이 끝났다. 좋던 싫던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보모를 찾아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모를 찾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새로운 동네로 이사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믿고 맡길 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몬테소리의 나라인 이탈리아의 어린이 집을 믿어 보기로 했다.
시립 어린이집은 9월부터 입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복직하던 3월에는 일단 사립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2월말 어느 오후에 아이를 안고 상담을 받기 위해 사립 유치원을 찾았다.
시설은 생각보다 좋았고, 장난감이나 책 등 나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는데, 얼굴도 제대로 안 보고 시간 별로 가격을 죽 읊는 원장 선생님, 한 해 전에 다른 동양 아이가 있었다고 하면서, 막상 그 아이 이름도 잘 기억 못하는 선생님…
좋은 사립 어린이집에 대한 경험담도 많다. 어쩌면 우리가 찾아갔던 그 곳도 참 좋은 곳일 수 있다. 어린 아이를 맡겨야 하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우리 눈에 안 좋은 것만 보였을 수도 있다. 어린이집을 나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던 기억이 선하다. 아직 쌀쌀한 밀라노의 2월에 행여 춥지 않을까 아이를 꼭 안고 눈물을 훔치는 나를 보던 남편의 얼굴도 어둡다. 돌아보니 어린이집이 무슨 감옥도 아니고, 몹쓸 시설도 아니고, 이탈리아에서는 영/유아기에 어린이집 다니는게 참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아이를 큰 곤경에라도 빠뜨리는 양,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는 9월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대부분의 경우 늦은 오후에 나가는 남편이 오전에 아이를 돌보고, 모유 수유 기간 근무 시간 단축 신청을 통해 내가 두 시간 일찍 퇴근해 남편과 교대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퇴근하기 전에 남편이 일찍 나가봐야 하는 날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우리에게 맞는 해답을 얻지 못해 불안으로 마음이 바싹 바싹 타들어갈때, 먼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육아 선배 언니가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어린이 집을 다녀와 아이에게 미안해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어찌하지 못하여 하루 하루 불안해 마음 태우는 내 마음을 먼저 알아봤다.
"우리집이 좀 멀어서 너희가 불편하겠지만, 내가 봐줄게. 둘 다 시간이 안되는 날은 우리집에 데리고 와."
언니는 육아의 신이다. 곶감보다 더 묘한 매력이 있어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고, 천사 같은 미소를 발산하게 하는 기술자다. 그런 언니가 시아를 돌봐준다면, 시아는 행복할 것이 분명하다.
염치없지만,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언니의 가족보다 따뜻한 손을 잡아버렸다.
나는 뭐든 알아서 해결해 보려고 하는 편이다. 도움을 청하고 받는 일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지금껏 뭐든 나 혼자 해결해가며 살아냈노라 하는 얘기가 아니고 그만큼 나의 인간 관계가 어긋나 있었음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다. 도움을 청하고 받는 다는 것은 상대를 내 인생으로 초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짧은 생을 사는 동안 그렇게 나를 드러내고 내 인생에 타인을 초대하면 행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프기도 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결국 매사에 부정적인 면을 전적으로 ‘숭배’하는 나의 성향에 따라 안 아프기 위해 덜 행복한 인생을 살기로 했던 것 같다.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해결되는 일이 있을때는, 우선 혼자 해보다 해보다 안되면 포기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는 참 오래동안 공들여 만들어 놓은 벽을 단숨에 부수어 버렸다. 아이의 손을 잡고 타인의 삶으로 직진했고, 아이와 함께 타인을 우리의 삶 속으로 초대했다.
아이가 허문 벽을 넘어 나온 나는 단숨에 뻔뻔함을 입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이모는 이모들이 되었고, 경우와 사정에 따라 두서너명의 이모들이 동원되어 시아를 돌봐주었다. 도움은 따뜻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언제든지 돌보겠다고 나서 주었던 언니가 해 주었던 이야기이다.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면 돼. 나도 많이 받았으니까 이렇게 줄 수 있는거야. 나에 대해 부담 가지지 말고 언젠가 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타인을 통해 받는 댓가 없는 사랑의 경험은 나와 아이를 씩씩하고 용감하게 해주었다.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행운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