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나무꾼

by SyaMya

생후 16개월에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을 적응 기간으로 본다고 하는데, 우리는 두 달이 넘도록 적응 중이었다.

첫 주는 아이와 함께 등원을 하고 어린이집에서 같이 두 시간씩, 4시간씩 시간을 늘려가며 함께 있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반가워하고 교회에서 언니들을 만나도 신이 나서 손뼉을 치고 엉덩이를 흔들어대던 아이는 어쩐지 어린이집 앞에만 가면 내 손을 꼭 잡고 내 뒤에 숨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주에는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엄마들은 원장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엄마들은 아장아장 겨우 걷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불안했고 미안했다. 말 하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은 표정을 한 엄마들이 귀를 세워 제 아이 소리가 안 나는지 집중을 하고 앉았다.

원장 선생님께서 휴지통을 꺼내오셨다.

"차 한잔씩 마시면서 울어요. 미안하고, 속상하고, 불안하잖아요. 울어도 괜찮아요. 아이들에게도 분리이지만, 여러분들에게도 분리가 시작되는 날이잖아요. 분리는 어른들에게도 서운하고 슬픈 일이잖아요. 괜찮아요."

"흑 흑...."

교회의 회심 집회도 아니고, 소녀 시절 수학여행 고백의 밤도 아니지만, 우리는 다 같이 울었다.

그리고 웃었다.

그렇게 엄마들이 울고 웃는 동안 심하게 엄마를 찾는 아이들은 가끔씩 엄마를 만나러 나와 한참을 안겨있다 다시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이 분리의 끝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더 불안할 거예요. 우리는 알잖아요. 아이를 두고 갔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와서 아이를 다시 만난다는 걸. 하지만 아이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모를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아이가 힘들 때는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거죠. 엄마는 어디 멀리 떠나 버리는 게 아니라, 잠시 헤어졌다 다시, 또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이틀쯤 지나자 엄마를 찾아 나오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우리 아이는 매일 나왔다. 다른 아이들의 엄마는 2주를 다 채우지 않고 아이들을 종일 맡겼지만 나는 며칠을 더 원장실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선생님께서 아이를 위해 조금 더 시간을 주자고 하셨다.


2주를 다 채웠다.

3주 차에는 나도 복직을 해야 했다.

주말에 아이를 안고 수십 번도 넘게 설명했다.

"엄마는 아침에 회사에 갈 거야. 네가 태어나기 전에도 다니던 곳인데, 네가 태어나고 함께 있으려고 잠시 쉬었어.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해.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엄마는 일을 하고, 우리 다시 만나는 거야. 매일 오후에 엄마가 올 거야. 그리고 꼭 안아줄게. 뽀뽀도 해줄게."

그건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엄마도 아이만큼이나 불안한 게 아닐까요? 아이를 두고 직장에 나가는 게 아직도 미안한가요? 엄마의 불안이 아이에게 전달될 수도 있어요. 아이와 엄마는 언어가 없었을 때부터 서로를 만났잖아요. 아이는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마음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엄마가 불안하다. 왜 그럴까? 나도 불안하다. 아이는 그렇게 불안을 닮고 있을지도 몰라요. 미안할 일이 아니라는 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죠? 어린이집은 어때요?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 괜찮을 거예요. 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원장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는 나에게 자꾸만 자꾸만 설명을 했다.

아침 일찍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갔다.

오래만의 출근에 대한 긴장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아이를 두고 나오는 내 뒷모습이 미리 두려울 뿐이었다.

안았던 아이를 내려놓기 전에 선생님께서 아이를 얼른 받아 안으신다.

아이는 울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자동차 장난감을 건네주시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며 나에게 인사를 하셨다.

나는 우는 아이와 천천히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두고 첫 출근을 한 날 모유 수유 끊은 지 이미 한참이었는데, 사무실에서 젖이 돌아 난처했다는 어떤 엄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내일은 조금 나아지겠지.

다 괜찮아질 거야.


꼬박 3개월 동안 우리는 힘들게 힘들게 적응을 했다.

나는 자주 회사에서 조퇴를 했고, 속상한 마음이 위에 걸려서 두어 번 경련을 겪었다. 그 사이 아이는 웃으면서 선생님께 달려가기도 하고, 어린이 집에서 친구들과 나란히 누워 낮잠도 자고, 기저귀 가는 시간에는 선생님께 순순히 엉덩이를 내주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낮에도 자주 엄마랑 아빠를 찾으며 울었다.

결국 어린이 집에서 우리 아이 적응 대책을 마련하기에 이르렀고, 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하셔서 한 가지 대안을 마련해 주셨다. “2중 언어 동화책 만들기” 선생님들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다. 이제 19개월 된 아이가 말을 하면 얼마나 하고 알아들으면 얼마나 알아듣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신다. 태어나서 19개월 동안 엄마의 언어를 듣고 그 대부분을 이해하고 그에 익숙했는데, 갑자기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모자라 다들 처음 듣는 말을 하니 더 힘들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아이는 나서 6개월 때쯤 서울 다녀온 거 빼고 계속 이태리에 있었지만, 집에서 엄마 아빠만 보고, 밖에 나가도 기껏 Ciao 하고 인사 한마디 듣는 것 빼고는 이태리 말을 들을 기회가 많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태리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적힌 동화책을 만들어서 어린이 집에서는 이태리어로, 집에서는 한국말로 매일 반복해서 읽어 주자고 하신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선생님도 엄마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다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하셨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을 키워주고 싶다고 하셨다.


쉽고, 짧은 우리나라 전래 동화 하나를 골라 이태리 말로 번역했다. 호랑이띠인 아이를 생각해서 호랑이가 착하게 나오는 호랑이와 나무꾼이라는 전래 동화를 골랐다.

선생님들께서 번역한 내용을 이태리 상황에 맞게 내용을 수정해 주셨다. 내용에 맞는 인형과 소품도 준비해 주셨고 동화책과 소품들을 예쁜 분홍색 가방에 담아주셨다.

이렇게 해서 아이의 동화 가방이 생겼고, 아이는 매일 동화 가방을 들고 어린이 집에 다녔다.

집에서는 호랑이와 나무꾼 인형을 가지고 역할극도 하고, 아이는 나무꾼과 할머니를 호랑이 등에 태워 세상 구경을 시켜주기도 했다. 매일 읽었다.

어린이집에서 동화 가방은 다른 아이들도 함께 읽고 노는 놀잇거리가 되었다. 선생님이 책을 읽어 주시기도 하고, 집에서 처럼 아이들과 인형을 들고 놀이를 하기도 했다.

동화 가방을 들고 다닌 이후에도 아이는 한동안 아침마다 엄마 안 떨어지려고 울었지만, 그래도 매일 조금씩 좋아졌다. 동화 가방이 아닌 '시간'이라는 명약의 효염일지도 모르겠지만 동화 가방과 그 가방을 만들기까지 아이에게 쏟아 주셨던 선생님들의 사랑의 효염이라고 믿는다.

어린이집 한쪽 벽에, 한국동화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이 나와 선생님들이 함께 만든 책을 읽으면서 노는 사진들이 여러 장 걸려있었다. 별건 아니지만, 어린이집 다니는 유일한 아시안으로 우리를 통해 우리나라를 알리는 것 같아 뿌듯했던 나만 아는 자긍심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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