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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n 27. 2018

부럽고 불편한 15년 이웃. 이탈리아.

                                                                                                                                                                                                                                                                                                                                                                   

종학 파티.

작년 종학 파티때 장소와 메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엄마들 사이에 불꽃 튀는 설전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엄마들과 나름 잘 지냈고, 웃으며 짧은 수다를 떨기도 했으나, 앞으로 있을 종학 파티는 어찌하든 피해보겠노라 다짐했다.

6월 종학을 앞두고 4월부터 종학 파티 준비가 뜨거웠지만 나는 두걸음쯤 물러서서 그저 지켜보았다.

올 해는 담임 선생님 두 분 정년 퇴임을 앞두고 준비하는 종학 파티이기 때문에 특별히 선생님들도 초대 한다고 했다.

지난 2년동안 아이들을 살뜰하게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께 선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드리기로 했다. 선생님들께 어느 정도 비용의 어떤 선물을 드릴지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모두 직접 모이기는 어려우니 이런 문제는 카톡을 대신하는 WhatsApp 상에서 논의 된다.


아이들의 손편지, 아이들의 사진, 선생님의 이니셜이 새겨진 악세서리, 마사지 패키지, 상품권, 인테리어 소품.... 세상에 좋은 건 다 한번씩 이름이 오르고, 좋다고 하는 엄마, 싫다고 하는 엄마들의 의견도 오르고, 거기다 아빠들의 의견까지 더해져 선물 선택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날 밤이 새도록 징.. 징.. 진동음이 울렸고, 결국 알림을 꺼버릴 수 밖에 없을 만큼 토론이 진지했다.


알림을 꺼 놓고 한참만에 열어보니 수백개의 문자 아래 상품권과 꽃다발쪽으로 의견이 모였고 마지막으로 찬반을 확인하는 공지가 있다.

바로 엄지척과 함께 찬성의 메세지를 보냈다.

가만히 뒷짐 지고 있던 외국인 엄마는 모두 피흘리고 난 전장터에서 이긴편 손을 같이 들어주는 얍삽하고 비겁한 노선을 타기에 거침이 없다. 사실 이런 일에 꼭 상품권이어야 하거나, 악세서리여야 한다는 '자기 주장' 같은 건 나에게 없다.

마음을 표시하는 일이니, 모두 함께 마음을 모으는게 중요하니 그냥, 다수가 결정하는대로 따르는 것. 그게 내 지조라기 보다는 나는 그런식의 참여에 익숙하다.

내 의견이라는 걸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고 중간 쯤 섰다가 눈치 보고 그냥 따라 가는 것.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 그게 내가 단체 생활을 하는 보통의 자세이다.

선물 선택을 앞둔 일련의 날선 토론을 지켜보며 선생님들과 마지막 인사는 학교에서 공손히 하는 것으로 하고,  올 해 종학 파티는 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굳혔다. 다행히 시아가 체조 하는 날과 겹쳐 시아가 피곤하다고 엄마들에게 핑계대고, 시아에게는 시아가 피곤할 것 이라고 핑계를 대는 것으로 자기 주장이 강한 엄마들 여럿과 주장을 갖는 것도 귀찮은 나의 만남을 피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태리를 떠난단다. 

시아에게는 마지막 학기이고, 이태리 친구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종학 파티가 될 거란다.

내 비록 자기 주장은 없으나, 경우는 좀 있는 편이고, 모성도 좀 있는 편이니, 인사도 하고, 시아에게도 행복한 이별의 기억을 남겨주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체조 끝나고 가면 피곤 하다고 했잖아?"

"응, 피곤해도 우리 이사가고 선생님도 이제 은퇴하시니까 가서 인사하고 시아도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면 좋을 것 같아서."

"응, 그럼 내가 피곤해도 좀 참아야겠네."

체조 하고 와서 피곤한 적이 없는 시아는 엄마의 얘기때문에 피곤해져야 하는 줄 알게된 모양이다.


선생님들 선물도 정해졌고, 파티 장소도 정해졌으니 이제 더 이상의 안건은 없을 것 같았다.

WhatsApp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파티 이틀전, 대표 엄마의 급한 문자가 도착했다.

담임 선생님 두분께서 보조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을 함께 초대하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선생님들께서는 2년을 함께 수고하신 다른 선생님들을 두고 파티 참석하시는게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선생님들께 미리 말씀은 안드렸지만 퇴임을 앞두신 담임 선생님 두분 식사는 모인 학부형들이 함께 부담하기로 되어 있었다.

대표 엄마는 다른 두분 선생님의 참석이 확정된건 아니지만 오실 경우 그 분들 식사 비용도 함께 부담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무척 당연한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만 하고 있는 사이 몇 몇 엄마의 찬성 문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왜 우리가 선생님 식사를 대접해야 하지? 두 분 선생님은 퇴임을 앞두고 계시니까 한번은 해드린다고 하지만, 다른 두 선생님은 같은 경우가 아니지. 난 반대야.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고 생각해."

이 문자 이후, WhatsApp 단체방은 휴대폰이 뜨끈뜨끈 해질만큼 가열되었다.


원칙적으로 선생님 식사를 대접할 이유가 없다. 내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우에 대접을 한다. 다수가 원한다고 따를 수는 없다.

두분은 대접하고 두분은 대접하지 않는건 보기 좋지 않다. 얼마되지 않는 비용 때문에 난처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 대접 받으시는 두분 마저 어색하실 것이다. 개인적으로 대접을 하는 것이 아니니 만큼 행사의 취지에 맞게 다수의 의견을 따르자. 


등등의 얘기들이 오가다 감정이 상한 엄마들은 손가락으로 의견을 내는 것으로는 의미 전달의 어려움을 느낀나머지 다소 격양된 목소리가 담긴 음성 메세지를 보내기도했다.

자정이 넘었고 나는 그만 누워버렸다. 



다음날 아침에 확인해 보니 참석하시는 모든 선생님들 식사 비용을 나누어 지불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있었다. 몇몇 아빠들이 1년의 수고 끝에 즐겁게 뛰어 놀 아이들을 생각해 기분 풀고 즐겁게 모이자고 화해를 유도하는 메세지, 마음을 풀어보려는 어설픈 농담이 담긴 메세지를 올려 두기도 했다.

나는 이번에도 결론에 짧게 찬성 의견을 냈을 뿐이다.


가장 많은 메세지를 남긴 엄마는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그 엄마를 빼고 다른 엄마들도 마음이 다 같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어제의 전투는 이미 잊은 듯 엄마들은 모두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볼 수 없는 우아한 자태로 환하게 웃으며 쪽쪽 서로의 양볼에 입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나도 같이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밤이 늦도록 식당 앞 잔디에서 뛰어 놀았다.

엄마 아빠들은 선생님들과 또 서로 서로 담소를 나누며 전에 없이 화목하고 유쾌했다.

여러가지로 큰 의미가 있는 저녁이었으니 우리도 즐겼다. 

이사를 앞둔 우리를 격려하고 이별을 아쉬워 하는 엄마들과 얘기를 하면서 가끔씩 코끗이 찡하기도 했다.

선생님과 기념 촬영까지 마치고 기분 좋은 시아랑 기분 좋게 밤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몇 일이 지나고. 그 날 일을 다시 떠올렸다.

치열했던 공방의 기억을 부르는 것 만으로도 훅 더운기가 느껴졌다. 

스스로의 의견을 스스로 눌러버리는 일 같은 건 절대 없는 이태리 사람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태리 사람들은 정말 정말 주장이 강한 사람들인 것 같다. 

나는 15년을 그 사람들 속에 혹은 곁에 살면서 그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불편했던건 아무래도 불필요한 소모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도 아니고, 개인의 안녕을 위협하는 일도 아닌데, 사사건건 주장들을 펼치느라 간단히 결정할 일들도 먼 길을 돌아가는 것 같았다. 

주장들을 펼치다 보면, 감정이 격양되기도 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 시키기 위해 상대의 주장을 비난하기도 하며 감정을 모두 쏟아 버리는 태도가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별 거 아닌 일에도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밝히는 자신감이 늘 부러웠다.

사소한 모든 일들 마저도 중요하고 대단하게 여기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부러웠다.

감정을 쏟아 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만나 쪽쪽 입을 맞추는 뻔뻔한 당당함이 부러웠다.


부럽고 불편해 하느라 15년동안 나는 이 사람들을 닮지 못했다.

이제 겨울이 긴 나라에가면 이 부럽고 불편한 사람들을 분명 그리워 할 것이다. 종학 파티 사건을 떠올릴 때 마다 훅 더운기를 느끼며 향수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닮지 못했지만 시아에게는 잔뜩 담겨있는 이 불편하고 부러운 사람들이 그 그곳에 가서도 여전하길 바란다.


여기서는 미처 닮지 못한 사람들을 시아를 보며 추억하고 다시 배워 언젠가 나에게서도 사소한 일에 감정을 쏟는 지중해 사람들의 열정이 비춰진다면. 

하나도 나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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