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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l 11. 2018

다시 비운다...

15년치 살림을 정리한다.

둘이 산 7년, 셋이 산 8년 동안 짐이 많아졌다.

이사를 결정하고 막연히 트럭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럽내 국가들 사이의 트럭 이사를 전문으로 하는 운송회사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 보았다. 

짐이 어느 정도 될 지 대충 어림 잡아 견적을 받았다. 거리가 멀고, 중간에 다른 나라들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충분히 납득할만 했지만, 비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안되겠다.


그렇다면 짐을 줄여 우리 차를 타고 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3일 정도 천천히 쉬어가며 처음 가보는 독일 시골 구경을 하면서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8년씩이나 타던 차를 가지고 들어가는게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집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주차장에 대해 문의하다가 우연히 덴마크의 무시 무시한 자동차 세금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덴마크는 차 값의 85%~150%에 해당하는 자동차 세금을 내야하는 나라라고 한다. 아무리 타던 차라고 해도 덴마크에 들어가서 덴마크 번호판을 달게 되면 덴마크 시세에 맞게 자동차의 가치를 결정하고 세금을 지정해 준다는 것이다.

8년이나 닳도록 타던 차를 다시 사야 하는 놀라운 상황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안되겠다.

시아와 나이가 꼭 같은 정든 차는 중고차 가게에 넘기기로 했다.


결국 비행기를 타고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짐 값을 좀 더 물더라도 짐을 최대한 많이 가져가 보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떠나는 7월 말은 성수기라 티켓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오래 기거할 숙소를 구하지 못하고 임시 숙소를 구해 떠나기 때문에 가서도 두번 혹은 세번은 이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짐을 줄이기로 작정했다.

셋이 이민가방 하나씩을 들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가방에 옷 한 벌 신발 한 컬레 담는 마음이 신중하다.

셋이 앉아서 오래된 물건들의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한다.

셋이 앉아 오래된 물건에 남은 우리의 흔적들을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많은 물건일 수록 흔적만 우리가 갖고 물건들은 버리기로 결정한다.

매일 저녁 조금씩 가방을 채우고, 훨씬 많이 버린다.


15년 전에 러시아를 떠나 이태리로 올때도 그랬다.

10년 세월을 이민 가방 하나씩에 담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로 이사를 했다.

15년 이태리에 살면서 그때를 회상할 때 마다, 그저 용감하기만 했던 서로를 떠올리며 웃었다. 앞으로 다시는 그저 용기만 가지고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 처럼 젊은 한때의 무모함은 오랜 이야깃 거리가되었다. 


그런데 15년을 더 살아 이제는 젊지도 않은 우리는 그 때처럼 똑 같이 버리고, 버리며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다시 그 자리이다.

세월만큼 많이 변했고, 세월 만큼 많이 쌓아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그 자리이다.

좋은 건 가지지 못했지만 이것도 저것도 없으면 안될 것같이 소중하고 필요한 것들이었는데, 이민 가방 앞에서는 일 순간 없어도 아무 문제 없는 것들로 변한다.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우리가 갖은 것 중에 우리가 직접 구입한 물건이 참 없다.

모두 얻었고 받은 것 들이다.

우리것처럼 끼고 마음 주고 사용했던 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먼저 누군가의 것이었다.

참 많은 사랑이 우리의 이태리 생활을 채우고 있었다. 물건들을 꺼내 들때 마다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만 우리가 간직하고 물건들은 버린다.


얻어서 사용 했지만 아직은 쓸만한, 누군가에게 유용할 물건들은 새 주인을 찾아준다.

셋이 둘러 앉아 어떤 물건이 누구에게 필요할 지 오래 의논한다.

비록 헌 것 들이지만, 그 안에 우리 마음을 꼭 꼭 채운다.


아직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여덟살 시아는 많은 장난감과 타던 자전거, 언니들한테 물려 받은 책을 나누어 주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낙심했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덴마크에 가면 더 좋은 장난감과 더 재밌는 책이 있을 것이고, 자전거는 물론 원래 있던 것 보다 더 튼튼한 것을 사주겠다고 우리도 모르는 이야기들로 상실을 매꾸어 주려고 했지만 시아의 마음이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트럭 이사가 어려운 이유, 차를 타고 가지 못하는 이유, 비행기는 짐에 제한이 있다는 것등을 설명하고 시아가 들어가고도 남은 이민 가방을 하나 건내주었다.

그 안에 엄마 아빠가 하듯이 시아가 꼭 필요 한 것들을 채워 넣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나는 먼저 동생들 주고 갈 걸 빼 놀래. 그 다음에 가지고 갈 걸 찾아서 가방에 담을게. 그렇게 해도 되지?"

"응, 그럼."

한장 한장 책장을 넘겨보고, 작아진 옷 가지 들을 다시 펼쳐보고, 장난감들을 한번 씩 꼭 쥐었다가 쇼핑백 안에 담는다. 며칠 새 시아 방이 쇼핑백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제 것들과 이별을 하면서 조금 마음이 풀린 것 같다.

"무거운 건 가지고 가지 말자. 이건 너무 크네. 이것도 누구 줘야 겠다. 나는 괜찮아. 거기 가면 다른 장난감으로 놀 수도 있고, 한글 학교 가면 새로운 책 빌릴 수 있겠지."


원래 비울 생각은 아니었다. 절대 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비우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런데, 비워야 하는 상황을 만나고 나니 다시 비워진다. 마음을 비우느라 한참 끙끙대고 고민했는데, 상황에 밀려 마음을 비우고 나니 짐을 비우는 것은 훨씬 쉽다.

15년 전 그 때처럼 비워지고 나니 더 가볍게 살 지 못한게 오히려 아쉽다. 비울 것도 없이 가볍게 살았더라면, 마음에 물건 대신 추억과 사람만 채우고 살았더라면 떠나는게 더 수월했을 텐데...

15년전 갓 결혼해 새색시였던 나는 비우는 내내  다시 채워질 날들을 꿈꿨다.

15년 씩이나 나이를 더 먹고도 여전히 이민 가방 하나를 소유했지만 그 날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는 늘 더 비워 질 것을 꿈꾼다는 것이다.

새 터전에서는 언제나 더 가벼울 수 있으면 좋겠다. 억지로 비워지기 전에 스스로 가벼우면 좋겠다.

트럭 이사를 생각하고, 자동차 이사를 생각했을 때 보다 이민 가방 하나를 앞에둔 마음이 훨씬 편하다. 짐이 가벼워 지니 세월에 녹아버렸던 용감하기만 한 내가 간혹 보이는 듯도 하다.


이민 가방 하나씩을 지고 처음 가는 나라. 모르는 말을 하는 나라에 둘이 왔다가 셋이 되어 다시 처음 가는 나라. 모르는 말을 하는 나라에 이민 가방 하나씩을 짊어 지고 가게 되었으니. 후회 할 것도 많이 두려워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두고 가는 살림 대신 용기를 잔뜩 싸들고 가면, 또 감사할 수 있을 것이고,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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