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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l 30. 2018

이별도 처음처럼

안녕 이탈리아


이별에 능숙해 지는 것이 가능할까?


무수한 이별을 하며 살았다. 떠나고 떠나보내기를 수 없이 했다.

무수한 이별을 하는 동안, 이별의 근육 같은건 생기지 않았다. 늘 처음 헤어지는 사람처럼 마음을 베었다.

이번에는 혼자 집을 나서던 때와도 다르고, 둘이 러시아를 떠나던 때와도 다르다. 우리는 셋이다. 더더욱 단단하고 완전한 셋이 되어 떠난다.

스스로도 실체를 가늠할 수 없었던 꿈을 따라 한국을 떠날때와도 다르고, 황가수의 꿈에 내 꿈을 녺여 러시아를 떠날때와도 다르다. 황가수의 새로운 일 터가 있는 곳으로 떠난다. 떠남 보다는 이사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그렇게 다른 이별이니 이번에야말로 조금은 의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의연하기로 작정하고, 부러 아직 어린 시아를 집중해 걱정했다.

친구들과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나름 최선을 다해 배려했다.

시아 친구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고, 밤중에 만나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한 밤의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수영장과 놀이터에서 머리가 무거워 질 만큼 많이 놀도록 두었고, 친구들과 화상 통화를 미리 연습하기도 했다.

시아는 가끔 울적하기도 했고, 눈물을 조금 흘리기도 했지만, 여덟살의 유쾌한 에너지로 금새 다시 기운을 차렸다.


버리거나 두고가는 짐을 정리하느라 나는 잠시 이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15년 살림을 정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누군가 싹 들어 다 버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려 없으면 고민도 안 할 텐데, 물건을 하나씩 들고 가져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느라 매일 저녁 씨름을 했다.


떠나지 않을 사람처럼 일상을 유지하며, 매일 이별을 미루었다.

마지막까지 매일 출근을 하고, 수영장에 가서 지치도록 놀고, 파스타를 만들어 저녁을 먹고, 시아를 재우고 짐을 정리했다.

짐을 정리하지만 않았다면 몇 년 동안 매일 똑 같은 나의 일과와 다를게 없다. 아무데도 가지 않을 사람처럼 태연하게 같은 날들을 반복했고,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 처럼 사람들을 대했다.


이번에는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이별의 잔 근육이 자란는 것 같아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아파트 할머니들 중에 제일 젊고 제일 세련된 할머니 한 분이 우리집 벨을 누르셨다.

처음 있는 일이다.

무척 더운날 파스타를 삶고 있느라 옷 차림이 부적절해 고개만 내밀고 인사를 했다.

"잠깐 이걸 좀 전해 주려고... 시아를 불러 줄 수 있을까?"

제 이름 부르는 소리에 금새 달려나온 시아 손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건내주셨다. 시아를 한번 안아주시고는 급하게 눈물을 닦으시며 등을 돌리고 인사를 하셨다.


아마, 그 날 부터.

의연하기로 했던 작정이 조금씩 무너졌던 것 같다.


받기만 좋아하는 나는 이태리에서도 무수한 사랑을 받기만 했다. 내일, 다음에 갚으려고 했는데, 그만 내일도 다음도 놓쳐 버렸다.

잠시 살아 보러 온 이태리에서 어느새 평생을 살 것 처럼 느긋했다. 내일이 없을 것 처럼 사랑하지 못한게 다시 한이 되었다.


이웃 엄마가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고 해서 집 앞으로 나가보았다.

퇴근하고 아이들 저녁 먹이고, 다 재우고 나왔다는 그녀는 나를 안고 1분정도 울었다.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자를 반복하고 돌아서는 이웃 엄마 뒷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힘들여 외면했던 이별들이 단숨에 쏟아져 나와 버렸다.


마치 영원을 함께 공유하기라도 할 것 처럼 내 곁에 자리가 당연했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수시로 떠올라 목소리 듣는 것도 얼굴 보는 것도 어려웠다.

영원할 것 처럼 사랑을 받지 말걸 그랬나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을 한번도 떠올리지 않는 일상들을 거뜬히 살아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사무치게 그리울 것이고, 함께 만들었던 대수롭지 않은 생활의 조각들을 꿈 속의 한때 처럼 아련하고 쓸쓸하게 추억하게 될 것이다. 분명히 이별 뒤 우리는 그렇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잘 아는데, 이별은 늘 그런데, 아무리 알아도 이별 다음 까지 가는 길이 하나도 쉬워지지 않는다.



이태리에서 이렇게 많은 인연을 만들 줄 몰랐다. 나와는 전혀 다른 과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평생을 같이 한 사람처럼 마음을 나누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별을 앞두고 떠오르는 얼굴들은 하나 같이 고맙다. 이태리 이웃들에게, 15년을 꼬박 함께 지낸 교회 식구들에게, 살뜰하게 서로를 챙기는 직장 동료들에게 늘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고, 위로를 받았다. 

나이가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고, 인종도 제 각각인 이 수 많은 인연들은 하나도 남겨 두거나 버릴 수가 없다.

며칠을 꼬박 울더라도 다 담고 떠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던 날.

어찌하던 환하게 웃어 보이려는 심산이었으나, 시아 단짝 친구들이 예배당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우는 바람에 나도 그만 훌쩍...

내 앞에 서서 친구들을 바라보던 시아가 삐쭉거리던 입을 앙 다물고 이내 웃는다.

"엄마, .. 언니랑, .. 좀 봐. 진짜 많이 울어. 그치?"

웃는 시아도 눈이 발갛다.


예배가 다 끝나고 친구들이랑 따로 만나 조금 울었다는 시아를 꼭 안고 물었다.

"시아야. 아까는 왜 안울었어? 울어도 되는거야. 많이 슬플때는 안 참아도 괜찮아."

"아니.... 그냥.... 내가 울면... 다들 너무 많이 울 것 같아서... 그리고, 울면, 그냥 계속 울 것 같아서... 그래서 참았지."


아... 여덟살이 이별을 안다. 여덟살이 떠나는 마음과 보내는 마음을 알아버렸다.


"괜찮아. 다들 울어도 괜찮고 시아가 많이 울어도 괜찮아."


둘이 조금 더 울고, 아직은 새로운 인연에 대한 희망으로 슬픔을 덮지 않기로 했다.  

 

결국 이별하는 동안에는 발간 눈으로 이별을 보는 수 밖에 없다.

세번째 이별을 견디며 이별의 기술을 터득하는 대신 다시는 어떤 이별 앞에서도 능숙해지려고 하지 말기로 다짐했다.

아마추어처럼 남김 없이 슬프게 이별하자.  사랑했던 것 처럼 이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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