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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Aug 23. 2018

코펜하겐에는 다른 내가 있다.

나라는 사람은.

새 나라에 와서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났다.

스스로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고,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했고, 적응력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고, 사회적이기보다는 혼자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펜하겐에서의 첫 3주 동안 나의 사고는 유연하지 못했으며, 호기심보다는 선입견을 쌓기에 부지런했고, 적응을 거부했고,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부재가 힘들었다.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건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었지 나는 아니었다.

환경이 변했고, 나도 통째로 달라졌다.

달라진 세상도, 달라진 나도 그저 불편하다.


여기서. 잘 살아 낼 수 있을까?

여기가. 내 집 같이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참 좋은 새 집에 들어와서도 이틀 잠을 설쳤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 예민함은 10년 전쯤 어쩌면 그보다 전에 없어져 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었나 보다.

이제는 큰 걱정을 덜었고,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체류에 필요한 서류 신청도 무사히 마쳤는데 뭐가 문제일까?

이유 없이 마음이 번잡하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궁금증, 새로운 언어에 대한 호기심도 도통 발동하지 않는다. 


설렘도 기대도 없는 나를 발견했다.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곳, 해변에 알록달록한 집이 늘어선 곳, 마치 건축 전시회의 모형들을 모아둔 것처럼 특별한 모양의 신식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 자전거 도로가 차도만큼 넓은 곳에 왔는데, 왜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을까?

스칸디나비아 언어가 흘러나와도 귀가 번뜩 뜨이지도 않는다.


모르는 모든 것이 불편할 뿐이다.


이태리에 처음 갔을 때, 러시아에 처음 갔을 때랑은 아주 다른 내가 있다. 

넘치던 호기심과 투지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분명, 러시아를 갈 때 보다, 이태리를 갈 때 보다 좋은 조건과 환경인데, 나는 설렘 대신 번잡스러움과 불안을 품고 있다.

설레고 싶고, 궁금하고 싶은데, 그러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게 마음이 아닌가 보다.


어디서든 이방인이고, 나그네인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고, 언제든 자리를 털고 떠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태리가 내 집 같았나 보다. 이태리를 죽도록 사랑하고 찬양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그곳에 잔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나 보다.

그곳에서는 황가수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시작했기 때문일까?

시아의 엄마가 되어 살았기 때문일까?

일을 하며 어딘가에 속했기 때문일까?

내 인생에 느리지만 깊이 스며든 사람들 때문일까?


이태리에서 우리는 안정이라는 말을 할 만큼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치열하지 않았던 날이 없고 서러운 날들도 더러 있었다.

이태리 사람들이 답답하기도 했고, 미운적도 있다. 억울한 일을 격기도 했다. 

이태리의 사회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서 그 불안한 일상에 잔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 남의 나라이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살아도 문제없이 살아질 만큼 살았던 것이다.


얼마큼 살면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이 나라에 마음을 심을 수 있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몸뿐이 아니라 마음도 딱딱하게 하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한계를 가늠하게 되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코펜하겐에 와서 알았다. 

나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아직 통성명도 제대로 안 한 코펜하겐이 괜히 어여쁘지 않은 건, 내 마음이 딱딱해 그렇고, 다시 잘 해내기엔 부족한 게 많은 나의 한계를 조금은 알아서 그렇기도 하다.



북유럽 스타일의 깔끔한 아파트에서 초록이 무성한 전망을 마주하고 있어도 시큰둥한 걸 보니 내 불안은 집 문제에만 묶여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마흔 넘은 마음이 새로워 싫다고 투정을 하는 모양이다. 


마흔이 넘었지만, 나는 이제 Ø, Å 와 같은 모음을 가진 나라에 왔으니, 궁금해해야 한다. 

혼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일을 고대하고, 새로운 나라에서도 체조를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하고, 새로운 나라의 모든 사탕을 먹어 보고 싶은 여덟 살이 흘리는 호기심을 좀 주워 담아야겠다.

호기심 대신 편안함으로 모든 새로움에 익숙해지는 황가수가 떨어뜨린 느긋함을 좀 슬쩍해봐야겠다.


황가수처럼 허허 한번 웃고 마흔이 넘은 나에게 호기심이 찾아 올 날을 느긋하게 기다리며 여덟 살의 호기심을 기웃거리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알고 싶어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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