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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Sep 08. 2018

이제는 그리운 이탈리아니

학창 시절 러시아에서 프랑스인 E를 처음 보던 날 미소가 너무 눈부셔서 그녀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었다.

그녀의 미소로 어두침침한 강의실이 다 환해지는 것만 같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그렇게 강한 미소를 선물 받은 건 난생처음이었다.

그때, 지중해의 태양은 E의 미소를 닮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E는 그렇게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미소로 인사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좀처럼 미소 짓는 일이 없다. 하지만 E의 환한 미소는 딱딱한 러시아 사람들의 보드라운 속 마음을 끌어올리는 마법의 주문 같았다. E와 대화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얼굴에도 의례 옅은 미소가 덮였다.

그 미소가 참 부러웠다.

몇 년 후에 E 덕에 프랑스에서 잠시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E처럼 모두 그렇게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의 미소 덕에 어딜 가나 환하고 밝은 기분이었다. 

대화를 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도 물론 불쾌한 사람, 유쾌한 사람, 미운 사람, 예쁜 사람이 있겠지만, 어쨌든 그 사람들의 미소는 참 좋았다. 

두 달 정도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프랑스어보다 미소를 배우고 싶었다. 

미소 짓는 사람들에게 나도 미소 지으며 인사사고, 눈이 마주치면 질세라 먼저 미소를 보내는 연습도 했다.

타인에게 미소를 짓는다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습관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절실히 느꼈다.

미소를 지으면서, 이게 과한가, 부족한가, 이때쯤 그만 웃으면 될까? 좀 더 웃어야 할까? 내가 먼저 눈을 피해야 할까? 같은 생각을 하느라 얼굴 근육보다 뇌 근육이 더 긴장했다.

E 보다는 조금 작고, 조금 덜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쯤 다시 돌아왔고, 아무도 웃지 않는 나라에서 작은 미소를 간직하며 살기로 다짐했었다. 

그렇게 미소 짓지 않는 나라에서 혼자 미소를 지으며 평생을 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미소 짓지 않는 나라를 두고 이태리로 떠났다.

이태리에 와보니 사람들이 웃기만 하는 게 아니라 큰 소리로 인사도 하고, 인사를 하면 안부를 묻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회색 하늘 어딘가에 어색하게 동동 떠 있는 것 같던 내 미소는 이태리 사람들에게는 무표정에 가까웠는지, 내가 아무리 얼굴 근육을 긴장해 최강도의 미소를 보내도 내 '너는 인사 안 하니?' 하는 질책이 담긴 미소로 다시 다시 눈을 마주쳤다.

미소 짓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았는데, 막상 미소가 넘치고 파이팅이 넘치는 나라에 오니 그 많은 미소와 인사가 다소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 오늘은, 저 사람이랑은 인사하기 싫은데...' 


시아와 함께 한 다음부터는 인사 주고받을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이태리 사람들은 아이를 보면 안 그래도 얼굴을 가득 채우는 미소를 얼굴 너머 세상으로 다 번지게 펼쳐놓아 버린다. 지하철을 타도, 길을 걸어도, 상점에 들어가도, 병원에 가도 다 웃는다.

어딜 가나 우렁찬 처음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의 Ciao는 나를 기운 나게 하기도 하기도 했지만 지치게 하기도 하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 환한 나라에 익숙해지고, Ciao를 적당히 피해가기도 하고 적당히 즐기기도 하면서 오래전 내가 얼마나 미소를 선망했는지 아득히 잊고 살았다. 

미소는 언제나 공기처럼 당연했고, 나는 더 이상 그 미소 때문에 눈부셔하지 않았고, 그 미소를 닮고 싶다는 소망도 품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웃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왔다.

언어, 시스템, 주거 한경, 시아의 학업 같은 실질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어 가고 있거나, 해결의 방향이 조금씩 보이고 있는데, 여전히 나는 이곳과 제대로 마음을 열고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왜 그럴까?... 

나이 말고,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미소.

그 미소 때문이다.


눈이 마주쳐도 미소를 보내주지 않는 사람들. 나도 모르게 닮아버린 이태리 사람들 같은 내 미소에 당황하는 사람들.

어쩌다 겨우 웃어주어도 말로 인사를 하지는 않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에게 안부 같은 건 절대 안 물어보는 사람들.


15년 늘 받아오던 그 미소가 내 속에 콕 박혀 버렸었나 보다.

사실은 미소 짓는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아도, 사실은 나하고 절대 친하게 지낼 일 없는 사람인 걸 알아도, 그래서 참 불필요하다고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던 미소들 마저도 나는 지금 그리운 것이다. 

돌아서면 잊어버릴 안부를 주고받았던 일, 건성으로 들었던 여름휴가 얘기, 알고 싶지도 않았던 길 건너 모르는 아줌마네 남편 이야기 같은 것들도 그냥 다 그리운 것이다.

어수선한 복장을 하고 동네 슈퍼에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말을 걸어올 것 같아 괜히 빠른 걸음을 걸었던 그 날들까지 그리움이 되어 버렸다. 


나는 절대 웃지 않는 러시아 사람들을 사랑했고, 사랑한다.

첫 만남에 미소 지어 주지 않아도 오래 깊이 마음을 줄 줄 아는 사람들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어떨까?

이 사람들의 어떤 모습이 내 속에 또 꼭 박혀버리게 될까?


아직은....

익숙한 모든 것들이 그립다.

더 많은 세상을 만난 다는 건 그리움을 쌓아가는 것인가 보다.


아무에게나 미소를 선사하지 않는 덴마크에서 나는 다시 회색 하늘에 동동 뜬 것 같은 조금 작고 덜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탈리아니. 아마 내가 당신들을 사랑했고, 사랑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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