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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Nov 07. 2018

국민성이 츤데레?...

어제는 하늘이 종일 어두웠다. 아침을 기다렸는데, 저녁이다. 아침이 저녁이 되도록 하늘이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골난 하늘.

까만 하늘을 짜증스럽게 노려보며 여기가 북유럽인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이제는 긴 겨울, 긴 밤을 마주하고 저 아래 나라로 이사 간 태양을 그리워해야겠지.


그랬는데, 오늘 아침은 안개 자욱한 하늘 저 끝에 뽀얀 빛 한 움큼이 달렸다.

시아 학교 갈 때쯤 되니 안개는 발아래로 내려오고 하늘이 환하다. 이제 안 오는 줄만 알았던 태양이 뻔뻔하고 반갑게 하늘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어제 나를 두고 가버린 태양이 미워서 흥, 하려고 했는데 그 빛이 얼마나 따뜻하고 푸근한지 내 얼굴도 개어버린다.

어제는 하늘이랑 똑 같이 까맣던 나무랑 들풀들이 다시 단숨을 막 피워 기어코 내 입에서 여기가 좋다.. 하게 만든다.


하늘이 츤데레..


고작 일주일에 두 번 어학원에 가고, 시아 스케이트 데리고 가서 엄마들이랑 눈인사만 하고, 학교 선생님이랑 메시지를 주고받는 정도의 사회생활을 하는 나는 덴마크 사람들이 어떤지 하나도 모르겠다.


모두 행복하다는 이 나라 사람들의 행복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는 뭔가 은밀한 것인가 보다.

크게 웃고, 크게 얘기하고, 큰 제스처를 쓰는 이태리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 일에 참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해도 존중해도 이렇게 존중할 수가 없다. 궁금증이란 게 아주 없는 사람들 같은 표정을 하고, 참 짧게 인사를 할 뿐이다.


시아 스케이트 선생님들도 잘 지도해 주실 뿐이다.

스케이트장 탈의실에서 만나는 엄마들도 매주 두 번씩 보는데 먼저 질문이라는 걸 하는 법이 없다.

남편 직장의 동료들도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친절하다고 했다.

아파트 이웃들도 그렇다. 3달이 지나서야 겨우 인사를 텄다.

시아 학교 선생님의 메시지는 온통 용건만 간단하다.


이 사람들을 알 수 있을까? 알게 되는 날이 올까?


해외에 산다는 집주인이 주민 파티를 하는데 주최하는 곳으로부터 우리 가족을 초대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전해주었다.

주민 파티? 어디서?

아파트마다 지하에 혹은 1층에 파티를 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다고 한다.

주민 파티를 하기도 하고, 필요할 때는 입주자들이 빌려서 사용해도 되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런 게 있구나.

타인의 사생활은 1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파티...

도대체 그 별도의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파티의 분위기는 어떤지가 궁금해 참석하기로 했다.

각자 음식을 하나씩 준비하고, 본인이 마실 음료나 술은 각자 들고 와야 한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힘주어 김밥을 말아 맥주 한 캔씩과 음료수를 들고 아파트 지하로 내려갔다.

긴 테이블이 4개나 있고, 의자도 충분히 있고 식기 세척기에 취사 가능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부엌도 있는 정말 파티가 가능한 공간이 있었다.

매일 비옷이나 스키점퍼 같이 생긴 외투를 입고 자전거 헬멧을 손에 들고 있던 사람들이 예쁜 원피스도 입고, 잘 다린 바지도 입고 왔다.

다들 돌아가며 악수를 하고 소개도 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이것 저것 조금씩 맛보면서 무심한 듯 아닌 듯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을 한다.

대답을 마치기가 무섭게 우리가 대답한 만큼 자신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준다.

유일한 어린이 참석자 시아에게 덴마크어로 간단한 질문을 건네기도 했다.

김밥이 맛있고 신기하다고 담백하게 칭찬을 하기도 했다.

피곤해하는 시아 때문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더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워하거나, 다음에 또 보자는 얘기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처음 악수를 할 때보다는 훨씬 편안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날 이후 아파트 입구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이제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개를 데리고 나온 이웃들은 시아에게 개를 만져도 좋다고 먼저 다가오기도 한다.


매일 만나도 인사만 주고받는 다던 황가수의 동료는 중고 자전거를 알아보는 황가수에게 아주 짧게 '내가 도와줄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질문을 하고 다음날 3개 정도의 중고 자전거를 찾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고, 그중에 한 가지를 결정하자, 쉬는 날 같이 자전거를 사러 가주겠다고 했다. 쉬는 날 만나 자전거를 사는데 덴마크인이고 사이클 동호회도 운영한다는 극장 동료는 중고 자전거를 눈으로 해부하듯 살피더니 흠을 찾아 어느 정도 가격 흥정도 해주고, 문제 있는 곳을 직접 손봐주고, 바퀴 상태가 좋지 않다며 집에 남는 바퀴가 있다면서 고가의 바퀴를 가지고 와 직접 교체도 해주었다. 그 이후에도 가끔씩 자전거 상태를 체크해주는가 하면, 자전거 주행 거리를 측정하고 계시하는 동호회 앱을 추천하고, 황가수의 이동 거리가 계시될 때마다 엄지 손가락을 눌러 칭찬을 해준다.

매일 조금씩 아이들 얘기, 부인 얘기, 사는 동네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딱 얘기해 준 만큼만 황가수의 사정을 묻는다고 한다.


지도만 잘해주시는 키 크고 늘씬한 스케이트 선생님이 턴을 배우는 시아에게 박수를 보내주셨다.

시아는 기분이 좋았는지 폴짝 뛰어 선생님 품에 안겼다.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시는 것 같았지만 시아를 꼭 안아 한번 크게 돌아 주셨다.

영어도 덴마크어도 서툰 시아에게 선생님이 스케이트로 얼음을 갈아 가루를 만들어 눈처럼 뿌려주셨다.

시아도 열심히 눈을 만들어 선생님 얼굴에 뿌린다.

얼굴에... 그건 싫어하실 것 같은데...

크게 웃한번 안아주셨고, 다시 지도만 잘해주신다.


늘 짧은 인사만 하는 엄마들이랑 같이 아이들 스케이트를 신겨주고 있었다. 끈을 단단히 매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스케이트는 시아가 타는데 끈 묶어주는 내가 더 녹초가 된다.

짧은 인사만 하던 엄마가 나더러 아이 옆에 앉아서 아이 다리를 들어 내 다리 위에 올려놓고 신발끈을 묶어주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허리도 안 아프고 훨씬 쉽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짧게 웃어준다.


스케이트 학원에서 할로윈 파티를 한다고 한다. 시아는 할로윈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빠져야 할까 고민했는데,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마음이 할로윈 무서워하는 마음을 이겼는지 시아가 참석하겠다고 한다.

케이크이나 쿠기 같은 간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 오라고 했다.

데니쉬 페스추리의 본 고장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건 무모할 것 같아, 견과류를 많이 넣고 LA 찹쌀 파이를 만들었다.

시아는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했다.

화장이나 분장은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스케이트장에서 보니 다행히 다른 아이들도 대충 흉내만 내고 와서 시아도 크게 무서워하지 않고 신나게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다.

파티답게 교습 대신 규칙 없는 질주와 술래잡기가 허락되었다.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고 빨간 피를 닮은 토마토 수프를 먹고 케이크와 쿠기도 먹었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각자 제가 먹을 것을 스스로 덜어다 먹고 다 먹은 그릇은 정리해 식기 세척기에 넣는다.

다 같이 있으나 다들 알아서. 아무도 그런 걸 불편해하지는 않는 것 같다.

화기 애매하고도 다소 건조한 파티가 끝나자 모두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고 부엌을 정리하고 할로윈 장식을 정리했다.

파티 때 보다 훨씬 더 '함께' 화목하게 복닥거리며 정리 정돈을 마친 사람들은 서로서로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시아랑 오페라 구경을 가느라 학교 조퇴를 하는 날 늘 용건만 간단히 전달해 주시는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시아는 잘하고 있다고 하셨고, 시아가 아주 성격이 좋다고 하셨다.

그 칭찬마저 용건처럼 들리게 하는 묘한 능력을 구사하셨다.



감정이 넘치는 법이 없다.

차갑지만, 무심한 법도 없다.

함께 하는 시간에도 개인적이지만 공동체에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는 법은 없다.


살면 알아질까?

날씨를 닮아 국민성이 츤데레인가?

츤데레라는 말이 없었다면 이 모르고 모를 사람들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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