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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Dec 12. 2018

Merry black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조금씩 길어진 밤은 이제 하루의 주인이 되어버렸다.

깜깜할 때 학교에 가는 시아는 깜깜해져야 돌아온다.

늘 같은 시간을 학교에 있지만, 훨씬 오래 있다 오는 것 같다.


알고도 있었고, 이 보다 더 깜깜한 러시아에서도 살아봤지만 어두운 오후는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다.


밤처럼 어두운 오후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거린 지가 한참이다.

11월 초 핼러윈이 끝나자마자, 상점들은 바삐 크리스마스 장식을 걸었고, 코펜하겐의 가로수들도 반짝이는 조명을 둘렀다.

건물의 꼭대기, 건물의 아래층, 건물의 기둥도 조명을 가득 달고 어두운 도시를 밝힌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코펜하겐 사람들의 거실에도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의 색색깔 조명이 밝다. 가정집 발코니도  마당 있는 집 울타리도 발광을 한다.


이태리에서라면 지금쯤 만들었을 크리스마스트리를 우리도 부지런히 11월에 만들어 세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두운 도시가 발광의 분투를 하는 대세를 따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아주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오후가 밤이 되기 시작할 때, 마음이 조급해졌다. 트리를 세우고 조명을 달고, 시아가 학교에서 만들어 오는 장식을 달았다. 마음이 조금 환해지는 것 같았다.


11월부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도 이런 게 아닐까?

4시가 넘어 깜깜해지면 캐럴을 틀어 놓고 트리 조명을 켜고 길 건너 쇼핑센터의 크리스마스 조명을 내다본다.

기독교가 국교라는 덴마크는 미신의 잔치라고 교회의 비난을 받는 핼러윈도 기다리고,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도 기다린다.

북유럽을 생각해서라도 예수님이 오신 날이 12월 25일로 정해진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를 한층 더 로맨틱하게 만들어 주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코펜하겐에도 있다. 있기만 한가. 많다. 관광 명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모두 마켓이 열려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부스에는 평상시에는 절대 사지 않을 것 같은 불필요하지만 예쁜 물건들이 가득하다. 소시지를 구워 수제 맥주와 함께 파는 부스도 있고, 따뜻하게 끓인 와인을 파는 곳도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고, 비가 오는 날에도 사람들은 길에서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시고 소시지를 먹는다.

비옷 안으로 비가 스밀 것처럼 빗방울이 켜져도 주저하는 사람들이 없다.

먹던 걸 먹고, 가던 길을 가고, 하던 얘기를 계속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이웃들끼리 모여 핼러윈 파티를 했던 덴마크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조명을 밝히자마자 크리스마스 파티를 시작했다.

"저 아저씨 술취. 그치? 술취. 저 아줌마도 술취. 그런 것 같은데. 여기는 왜 이렇게 술 취 사람이 많아."

"술취 가 아니고, 술 취한 사람, 저 아저씨는 술 취했어? 이렇게 물어보는 거야."

크리스마스 파티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거리에는 확실히 기분 좋게 취한 사람들이 늘었다.

저녁에 시내에 나가면, 자정 넘은 신촌에서  만날 수 있을 법한 기쁨과 슬픔이 증폭된 상태의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도 크리스마스 파티에 다녀왔다.

황가수 직장에서 계획된 크리스마스 파티만 해도 몇 번인지 모른다. 직원 아이들을 위한 파티, 어른들을 위한 파티, 다 같이 하는 파티, 파트별로 하는 파티...

교민들과 덴마크인들이 함께하는 파티도 있고, 아파트 주민들 크리스마스 파티도 있다.

시아 스케이트 학원에서 하는 파티도 있고, 교회에서 하는 파티도 있다.


교민 파티에서는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산타 협회 회원이라는 덴마크 할아버지의 지휘에 맞추어 덴마크 캐럴을 부르고, 아이들은 달콤한 선물을 받았다.

극장 파티에는 아이들과 함께 트리 장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트리를 꾸미고, 산타로 분하신 성악가와 함께 덴마크 캐럴을 불렀다. 푸드트럭 앞에 줄을 서 따끈한 핫 초코와 통통한 팬케이크 Æbleskiver와 향긋한 뱅쇼  Gløgg를 즐겼다.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해주었고, 전문 Clown 연기자를 초청해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어 넘어갈 만큼 재미있는 쇼를 선사했다.



크리스마스 조명도 좋고, 파티도 좋은데, 뭐랄까? 낯설고 생경한, 물 항아리에 동동 뜬 기름을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무표정과 무뚝뚝을 장착하고 비와 어두움을 가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토록 진심을 다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파티를 열어 손을 잡고 트리 주위를 돌며 길게는 6절까지 있는 전통 캐럴을 몇 곡씩이나 부른다.

 비 오고 어두운 겨울이라는 비극을 웃음으로 희화하는, 어둡고 긴 겨울에도 우리는 '정상이다'라고 외치는 블랙 코미디 같은...

파티가 끝나고 다시 무뚝뚝과 무표정을 장착하고 뒷정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허무개그인 것도 같은...

그래서 나쁘다는 게 아니다.

허무개그도 좋아하고 블랙코미디는 더 좋아한다.

다만, 나랑 같이 웃는 사람이 없다. 이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파티에서 까탈을 장착한 단 한 명의 이방인 관객을 하느라 웃을 수가 없다. 같이 웃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웃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새 나도 반쯤의 미소를 머금고 따라 부를 수 없는 긴 캐럴을 웅얼 흥얼거리다, 스스로의 무표정을 가다듬고 뒷정리를 돕는다.  show time~

"덴마크는 크리스마스를 진짜 좋아하나 봐. 학교에서도 맨날 크리스마스 만들기 해. 내일은 교회에 가서 크리스마스 노래 부른대. 크리스마스는 덴마크가 이탈리아보다 예쁜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우리도 부슬부슬 뿌리는 비에 젖고, 어둠에 스며, 블랙코미디와 허무개그의 주인공이 되버리는 걸까? 

 이 겨울을 살면, 블랙코미디에 당당히 웃게 될 것인가? 블랙코미디를 연기하게 될 것인가?


이미 한 달 넘게 우리는 Merry 컴컴한 Christmas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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