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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n 04. 2021

허술하지만 든든한
신뢰 사회 덴마크

코펜하겐 근교 주택가를 산책하던 중에 쓰던 물건들을 진열해 둔 매대를 발견했다. 덴마크 사람들이 집에서 쓰는 물건이 궁금해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는데, 좀처럼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더러는 값이 나가는 물건이 있는 주인 없는 매대가 불안하여 나라도 지켜봐야 하나 걱정하던 차에 간편 결제 번호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적힌 대로 결제를 하고 가져가면 된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신선한 달걀 판매 중’ 이라는 안내 문구를 따라 농가의 양계장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닭들이 자유를 만끽하고도 남을 것 같은 커다란 양계장 한쪽으로 작은 상점 같은 건물이 보였다. 열린 상점 문으로 들어가 보니 속이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냉장고 안에 알이 실한 달걀이 나란히 줄지어 담겨 있었다. 신선한 달걀을 한 번 먹어볼 생각에 한참을 서서 주인을 기다렸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달걀을 포기하고 돌아 나오려는데, 냉장고 뒤편에 붙은 결제 안내가 보였다. 역시 달걀을 가져가고 적힌 번호로 결제하라는 안내였다. 덴마크 국내 여행을 하며 에어비엔비를 이용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예약을 완료하자 문자 메시지로 열쇠를 넣어 둔 우체통 자물쇠의 비밀번호가 도착했다. 혹시 주인이 체크인을 도와주지 못할 경우에 참고하라는 정보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체크인 당시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즐거운 휴가를 보내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었을 뿐이다. 체크 아웃을 하는 날에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아, 우체통에 열쇠를 도로 넣어두고 나왔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덴마크의 많은 사람들은, 중고 물건들을 그냥 가져가 버리면, 달걀 몇 알을 슬쩍 하면, 괴상한 여행객들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거나 세간을 들고가 버리면 어쩌지? 와 같은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신뢰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조사에 따르면 2020년 덴마크 국민의 서로에 대한 신뢰도는 70%에 이르며,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 역시 70%를 웃도는 결과를 보였다. 덴마크인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공공문화, 유연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 간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개인이나 공공기관이 상대를 고의로 속일 리는 없으며, 실무자들은 의당히 맡은 업무를 최선을 다해 처리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아이가 다니는 스케이트 학원에서 엄마들의 부탁으로 시간표를 만들었던 일이 있다. 전체 스케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간표를 만들어 운영을 돕는 엄마에게 확인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알아서 잘 만들었으리라 믿으니, 인쇄 할 수 있도록 최종 본을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믿음의 대가로 같은 표를 수십 번 다시 검토하고 인쇄 미리 보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믿는 다는 말을 들은 이상 이상 한치의 오류도 없는 표를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 신뢰 받는 덴마크의 실무자가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가늠하게 하는 경험이었다.

물론 덴마크의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믿을만하고 전문성이 있는 건 아니다. 은행에 새로운 카드 발급을 요청한 적이 있다. 처음엔 계좌 정보에 표시된 카드 번호와 다른 번호의 카드가 도착했다. 카드의 종류도 내가 신청한 것과 달랐다. 잘못 도착한 카드를 취소하고, 새로운 카드를 받았지만, 이번에도 내가 신청한 종류의 카드는 아니었다. 다시 한번 취소 하고 새 카드를 받았는데, 카드가 계좌 정보에서 확인이 되지 않아, 몇 차례 다시 메일을 보내고, 한 달여의 시간이 걸려 결국 문제가 해결되었다. 은행 담당의 약속을 믿고 계좌 내역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카드 문제가 스스로 해결이 되었을까? 전혀 그럴 리가 없다. 잘못된 카드와 계좌정보로 인해 더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 분명하다. 체류허가증에 이민국 담당자가 실수를 하여 엉뚱한 이름을 적어 넣거나, 구비서류를 제대로 확인도 않고 서류 부족으로 발급 보류 처리를 해버려 체류에 문제가 생겨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덴마크 집주인으로부터 어처구니 없이 월세 보증금을 떼이는 세입자의 경험담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처럼 신뢰 사회라고 자부하는 덴마크에도 못 미더운 담당자들, 마음씨 곱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를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눈치이다. 서로 믿는 덴마크 사람들이 답답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부러운 날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은행 업무를 처리하느라 분통이 터지고, 체류 허가증 갱신할 때 마다 조마조마하더라도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 덴마크의 선택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성공을 거두길 응원한다. 


작은책 6월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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