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스토리 (2017)
*<고스트 스토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스무 살이 되고 살던 동네를 떠나와 외지에서 살아온 것이 벌써 7년이 되었다. 집과 고향에 크게 대단한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씩 남들만큼 추억을 떠올리는 정도다.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향수에 젖어 감상적인 상태가 된다거나, 고향에 가지 못해 안달이 나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온 동네에 가서 익숙한 장소들을 지날 때면 묘한 느낌이 든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거나, 관련된 사람들, 사건들이 떠오르곤 한다. 장소를 지나면 장소에 얽힌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장소에 추억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지. 장소를 지날 때마다 그곳에 아로새겨진 무언가가 내게 추억을 환기하도록 머릿속에 환상을 투사하는 것은 아닐지.
<고스트 스토리>는 마치 절절한 러브스토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 영화는 러브스토리가 맞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와 영화를 보는 중간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르다. 이 영화의 내용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지 못해 유령이 되어서도 망부석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C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처럼 보인다. 영화 내내 집터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흰 침대보를 덮은 유령은 C의 시신으로부터 깨어났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유령의 정체가 C라고 생각하는 것도 물론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유령을 단지 C라고 단정 짓기에는 어딘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연인 M을 떠나지 못하는 C의 유령이라면 왜 이 집에 남아있어야 하는가? 이 유령이 C라면 M이 집을 떠날 때 함께 이 집을 떠나는 쪽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동에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병원에서 집까지 유령은 직접 걸어서 돌아왔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바로 흰 천을 뒤집어쓴 유령의 형체다. '이 유령이 누구입니다'라고 명백하게 밝힐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천을 뒤집어 씌울 필요도 없다. 이 유령의 정체가 C라고 단언하고 싶었다면 배우 케이시 애플렉의 모습으로 유령이 등장하면 된다. CG로 반투명 처리를 해도 되고. 그런데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유령은 누구인가? 영화가 진행되고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영화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던 순간으로 돌아온다. C와 M이 어두운 밤 중에 갑자기 들린 피아노 소리에 잠이 깼던 밤. 말 그대로 귀신이라도 다녀갔던 것 같았던 밤. 그 밤으로 영화는 되돌아온다. 그리고 그날 밤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를 밝힘으로써 유령의 정체에 관해 말하려 한다. 두 사람은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고, 그 말은 들은 유령은 털썩 주저앉으며 피아노를 내리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유령의 정체는 다름 아닌 집의 사념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떠나기로 결정한 연인의 결심에 크게 상심한 집의 사념. 영화는 아예 처음부터 집의 존재를 공고히 세워 놓았다. 이를테면 M이 이사를 가기 위해 커다란 짐을 밖으로 내놓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한참 동안 M의 모습을 응시하고, M이 집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그 자리에 머물러 집을 비춘다. <고스트 스토리>는 1.33:1의 화면비로 촬영되었다. 보통 가로 폭이 넓은 화면은 배경과 풍경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가로 폭이 좁은 화면은 인물들로 화면을 채우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한다. <고스트 스토리>는 가로 폭이 좁은 화면으로 집을 한참 동안 응시한다. 마치 그 집이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응시한다. 그러니 유령의 정체가 집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미 복선이 깔려있었을지도 모른다.
C는 M에게 묻는다. "이 집이 왜 좋아?" C는 대답한다. "추억?(History?)" 한발 더 나아가서, 유령의 정체는 단순히 집의 사념이 아니라 집에 새겨진 추억일지도 모른다. 집안 곳곳에 아로새겨진 추억과 시간들. 그 추억과 시간들을 다시 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기에, 유령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흔적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내쫓으며 심술을 부리고,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말에 화를 내는 것이다. 유령의 존재를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전혀 가까워지지도 않는 M이 딱 한번 유령을 거의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는 장면이 있다. C가 만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그 순간을 회상할 때다. 추억을 회상할 때 비로소 유령과 가까워진다. 집에 남겨진 흔적들이 추억을 불러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이나 추억 같은 것들은 단지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크린 위에 유령의 모습으로 실재하는 유령처럼 실체를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봐주길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숏을 자주 전환하기보다 한참 동안 지속하기를 선택하는 이 영화에서 그 어느 장면보다 길게 느껴지는 장면이 하나 있다. C를 잃은 M이 슬픔을 삼키듯 한참 동안 파이를 파먹는 장면이다. 영화는 파이를 먹다가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는 M의 모습으로 덜컥 이행하지 않는다. 파이를 집어 들고 주저앉아서, 한입 두입 꾹꾹 눌러 담듯 파이를 삼키고, 삼키고, 또 삼키다가 결국 눈물을 보이는 M의 모습을 한순간도 빠짐없이, 하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한참을 응시한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집에 어떤 시간과 감정이 아로새겨지는 장면이다. 한참 동안 파이와 슬픔을 집어삼키는 M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과 공기가 밀려온다. 그것들이 그 장소에 담겨 새겨지고, 하나의 유령이 된다. 역설적이고 슬프게도, M은 바로 그 주방에 새겨진 기억 때문에 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온 세상을 잃은 것만 같은 커다란 슬픔이 그 주방 바닥에 있다. 평생 비탄에 빠져 살 수는 없으니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거기에 그 슬픔의 유령을 남겨둔 채로.
M이 떠나며 틈새에 끼워둔 쪽지를 겨우 파내 읽은 유령은 쪽지를 펴는 순간 사라진다. 아마도 거기엔 이런 말이 적혀있었을 것이다. "당신을 잊기 위해 당신을 여기에 남겨두고 떠납니다. 그렇기에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스트 스토리>는 여전히 사랑이야기다. 자신에게 새겨진 추억과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쓰다듬어줄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추억에 관한 이야기.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누군가를 고대하고 있는 유령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