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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에세이]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휴직을 했다. 그런데 좀 우울하다. 당황스럽다. 일을 할 때는 “휴직만”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직”을 “휴”하든, “직”을 “행”하듯 인생은 지속될 뿐이다. 의과대학, 치과대학에는 다른 대학에는 없는 꿈같은 시간이 있다. 바로 예과생 시절이다. 왜 의대를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는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으면 예과생의 실상을 알려주라고 말한다. 다른 친구들은 학점과 스펙 쌓기에 하루 한 시간이 아쉬운 그 시간에 예과생은 공식적으로 자유롭게 맘껏 놀 2년을 부여받는다. 무려 2년이다. 2년간의 학점은 F만 받지 않으면 본과생이 되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본과가 있는 지옥불 같은 연건으로 끌려가는 순간 내 인생은 끝날 것처럼 그렇게 놀았다. 나중에는 내가 놀고 싶어서 노는 건지 놀기 위해 노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놀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놀았다. 


본과생이 되었다. 인생은 끝나지 않았고 본과 생활에 지옥불은 없었다. 기억은 이상하게 남아있다. 원 없이 놀았던 예과 생활은 회색빛으로 명확하지 않고, 지긋한 시험을 본 뒤, 맥주의 목 넘김은 아직도 그 상쾌함이 남아있다. 해부실습 시간을 기억만 해내도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 사람에게는 뇌의 기억보다 감각이 오래 남는가 보다.


여행도 그렇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더니 그리도 여행을 꿈꾼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음 여행을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비행공포증이 매우 심한 사람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하느님, 부처님, 신령님 온갖 신들은 다 찾고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이 비행기가 폭발하거나 추락하는 수백만 가지의 상상을 한다. 그렇게 지쳐서 무엇을 여행했는지도 모른 채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비슷한 생각을 반복한다. 


그럼 나는 대체 왜 여행을 하는가. 왜 또 여행 계획을 짜고 있는가. 그 기대감이 좋아서이다. 낯선 곳으로 향한다는 것,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 순간순간 마주하는 나의 욕망. 하지만 아직 현실에 닿지 않았기에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자유.


그렇다. 여행은 가서 보다 가기 전이 행복하다. 어쩌면 나는 휴직 상태인 지금보다 휴직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던 지난달이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예과 생활은 그리도 처절하게 놀기에 목숨 걸었던 이유가 선악과를 먼저 따먹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 이상 나의 대학생활은 기대감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기대감이다. 



휘핑크림을 얹은 바닐라라테를 좋아한다. 그 위에 초코 드리즐까지 뿌리면 더 베스트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온몸에 당이 돌면서 행복 회로가 반짝인다. 그래. 인생이 바로 이거지. 뭐 있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3,4모금 더하다 보면 처음과 같은 황홀경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거의 커피가 바닥을 드러내면, 속도 니글거리고 입맛도 달아 내가 다시 이걸 또 먹나 봐라 하고 생각한다. 참 간사하다. 행복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만큼도 유지되기가 어렵다. 


인생은 스냅샷처럼 살지 말고 동영상처럼 살라고 한다. 한 장의 바디 프로필이 중요한 게 아니라 평생의 건강한 몸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스냅샷처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2년의 처절한 놀이보다 시험 뒤 상쾌한 맥주 한 잔의 행복감을 아직 기억하는 것처럼 행복은 찰나다. 그 찰나를 얼마나 자주 습관적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자주, 많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비행기를 타고 가서 휘핑크림을 잔뜩 얹은 바닐라라테를 마시는 꿈을 꾼다. 그 끝이 설사 무엇인지 알지라도 말이다. 휴직의 끝은 별 게 없을 것이다. 인생은 그저 흐를 뿐이다. “찰나의 행복”을 찾는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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