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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에세이] 섬세함과 예민함의 차이


밤새 바람이 분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래층 현관 등이 갑자기 켜졌어.

현관문 제대로 잠겄니?


내려가 보니 모든 문은 잠겨있다.

바람이 너무 세다 보니 

센서등이 반응한 것이리라.


잠이 깨버렸다.

낮잠 때문일까.

오후의 진한 커피 때문일까.

좀처럼 다시 잠을 이룰 수 없다.


갑자기 화가 난다.

엄마는 왜 이렇게 예민한 걸까.

결국 나의 단잠을 이렇게 깨우고 말다니.

엄마의 말 이전에는 귀에 전혀 거슬리지 않던

바람소리가 

나도 갑자기 걱정되고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산사태가 나면 어쩌지.

비가 이리도 많이 오면

여긴 산이라 고립될 텐데.

우리 차가 경차인데 괜찮으려나.

창문은 확인했던가.


한 번 시작된 걱정은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예민함과 섬세함의 차이가 뭘까

하는 생각에 멈춘다.


엄마는 감각이 뛰어났다.

요리도 잘하시는 편이고,

옷 입는 센스도 좋으시다.

비싼 옷, 싼 옷의 미스매치도 잘하고,

색깔의 조화도 잘 보는 편이다.


동생과 나의 감각은 아버지의 무딘 감각의 유전자와

더해져 희석되긴 했지만 분명 아직 우리에게

남아서 도움이 되고 있다.


글을 쓰는데도, 코칭을 할 때도, 진료를 할 때도

섬세한 감각은 여러 각도로 도움이 된다.

코칭을 할 때 고객의 비언어적 표현을 느끼고,

그에 대해 직관이 생기는 경우

고객의 "인식 awareness"를 일깨우는 부분이 있다.


사람마다 코치로서의 역량이 다 다르다고 할 때,

나는 그 부분에는 약간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료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수면치료를 할 때 잘 나타나는데,

아이들은 깨기 전이나 또는 문제가 생기려고 할 때

반드시 이전에 작은 움직임이나 변화가 나타난다.

그것을 인지하고 나의 속도를 늦추거나

미리 반응을 해주면, 훨씬 더 수월하게 진료를

할 수가 있다.


엄마의 섬세함은 재능이다.

주변 환경의 변화를 잘 느끼는 것.

재능이지만,

섬세함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예민함으로 치부당한 것은

강점으로 발전하지 못한 부분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그 재능에 투자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 피드백만

받게 되면, 그 재능은 강점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엄마는 아마도 예술이나 디자이너 쪽을 했으면

그 섬세한 감각이 빛을 발했을 텐데.

무디고 무딘 남자와 살며,

그 섬세함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만 받다 보니,

예민함으로만 국한되어 남아버린 것이 아닐까.


늘 난 우울의 시작이 엄마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 한번 나는 엄마의 섬세함에 대해,

그리고 그 감각을 물려준 것에 대해

엄마에게 인정을 건넨 적이 있었던가.


엄마가 바람소리를 예민하게 느꼈기에

다시 한번 단속을 할 수 있었고,

내 아이가 밤새 깨지 않고

편안하게 밤을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엄마의 불평불만이 듣기 싫었다.

엄마의 그 예민함이 싫었다.

그래서 늘 나도 볼멘소리를 내었다.

엄마는 왜 그래? 좋게 좀 말할 수 없어?

그냥 넘어가면 되잖아. 엄마 때문에 깼잖아.

엄마 때문에!


예민한 아이는 그 예민함을 

인정만 해줘도 좋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예민함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나 순간들에 구체적인 칭찬을 해주면

자신감이 올라가면서 긴장도가 오히려 떨어진다.



아이만 칭찬을 먹고 자라는 것은 아니다.

어른도 칭찬을 받고 성장한다.

어쩌면 나는 너무도 엄마에게는 

인색했던 것이 아닐까.


잠 안 오는 밤의 뜻밖의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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