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검은 그림자
“무슨 말이지?”
마케팅본부장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본부장 “경쟁사라면, 설마 해신인가?”
세하웰니스 사람들이 애증하는 이름. ‘해신’.
철저히 세하그룹 미투전략으로 성장해온 회사.
세하그룹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존재다.
남다름 “아...그게...”
마부장 “네. 맞습니다.”
맞다고 인정까지 해버리는 마부장.
‘노케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은 다름.
그말을 듣고 극도로 흥분하는 본부장.
본부장 “정말이야? 그놈들이 우리 정보를 빼내? 어떻게?”
가슴이 답답해지는 다름. 마부장에게 신신당부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 말을 하지 않아야한다는 압박감을 떨쳐버리고 싶었는지 기어코 입 바깥으로 뱉어버린 마부장.
마부장 “.....”
꿀벙어리가 된 마부장. 대답을 할수 있을 리가 없다. 내용을 모르니까.
남다름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자료를 보면 국내 건강식품 1위브랜드는 저희회사고 2위와의 격차도 꽤 컸습니다. 그런데 최근 자료를 보다보니 점유율 5%내외로 해신그룹이 추격해온 자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시장에서 움직임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요.”
세하웰니스가 점유율이 30%정도였다면 해신은 원래 15%수준이었다. 그런데 최근 조사자료를 보면 25%이상 올라와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그 정도의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데 유독 조사자료에서 해신의 성장률이 돋보이고 있다.
해신이 리서치업체에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매출을 태우고 있는 상황으로 의심된다.
남다름 “그런데 유독 저희가 구독하는 자료들에 해신이름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섣부른 추측일수도 있습니다만, 저희와 비교를 통해 ‘2등전략’을 펼치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본부장 “2등전략이라는게 뭐지?”
남다름 “1등은 세하지만, 확실히 2등은 해신이다. 2등이기에 우린 더 노력한다. 이런 캐치프레이즈가 과거에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세하는 대기업 이미지가 강해서 낼 수 없는 메시지죠.”
다름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본부장.
고개를 심히 끄덕이며 듣는 마부장.
본부장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가장 무서운 질문이다.
현상을 나열하는 게 보고의 끝이 아니다.
꼭 자신만의 생각이 있어야한다.
남다름 “그들이 리서치업체를 매수해서 매출정보를 무리하게 업데이트 하는 것까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용할 수는 있죠.”
본부장 “예를 들면?”
남다름 “리서치 업체들은 정보를 수집하는 게 아니다 수집된 정보를 판매하는 영업조직입니다. 저희는 구독예산을 지불할 여유가 있으니, 리서치 범위를 늘려 업체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고 해신이 오픈하는 정보들을 그들을 통해 취하면 되는 거죠. 중국에 꽌시 같은 거죠. ”
*
‘휴...’
본부장실에 나와 크게 한숨을 쉬는 다름.
웬수같은 마부장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왜 이런 사람을 직속상사로 만났을까.
남다름 “일단 대충 얼버무리긴 했는데...”
아무래도 본부장에게 한말이 걸린다.
완전히 준비된 상태가 아닌 상태에서 한 보고라 마음이 걸리는 다름.
“안녕!”
배나온 안경잡이 아저씨가 인사한다.
병가를 마치고 돌아온 심대리.
“오, 심대리 반가워!”
“몸은 괜찮은거야?”
오랜만에 온 심대리를 반가워하는 사이, 혼자 뒤돌아 서있는 김과장. 심대리의 휠체어사건 이후로 김과장은 징계를 받았다.
징계사유는 ‘직장질서 위반’.
남다름 “심대리님. 안녕하세요.”
심대리 “다름씨. 잘 지냈지?”
눈썹을 까딱거리며 느끼하게 인사하는 심대리.
심대리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돌아와 보고서를 정리하는 다름. 파일을 정리하다가 또 클릭하고야마는 폴더.
‘인테그럴’.
남다름 “왜 자꾸 여기에 손이 가지...”
본인도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동물적 감각이 말해준다. 이 회사가 의문스럽다.
자료를 찾다가 더 깊숙이 알고 싶어진 그녀.
부장님만 열람가능한 결재문에 접속하고야만다.
지난 번 부장님 부재시에 알려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다름. 자료를 다운받아 조심스레 정리한다.
한창 숫자를 정리하고 있는데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고 소리를 지르는 다름.
남다름 “으악!!!!”
심대리와 최대리가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
마우스를 쓰지 않고 엑셀을 만지는 다름이 신기한 그들.
심대리 “우와. 다름씨. 대박이다.”
최대리 “방금 그거 어떻게 한거야?”
남다름 “아..이거 Ctrl+D쓴건데...”
심대리 “그게 뭐야? 그런데 왜 F1키는 없어?”
남다름 “엑셀쓰다보면 F1키는 필요가 없어요.”
엑셀을 주로 쓰던 전략부시절부터 다름은 키보드에 F1키를 없애버렸다. 엑셀을 하다보면 ESC와 F2를 많이 쓰는데 중간에 있는 F1은 거치적 거리니.
바보아저씨들이 슬금슬금 다름의 자리로 몰려들던 찰나, 누군가 다름을 부른다.
“남다름. 내방으로 들어와.”
*
세하웰니스에서 가장 뷰가 좋다는 이곳.
자신도 언젠가 이런 곳에서 근무하면 좋을 것 같다 생각하는 다름.
마케팅본부장이 창밖을 보며 서있다.
본부장 “앉아라.”
남다름 “네...”
다름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는 본부장.
여직원과 가까이 앉는 걸 기본적으로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성추행이라니, 상상하기 어렵다.
본부장 “일은 할만한가?”
남다름 “아.네. 덕분에...”
본부장 “답답하지 않나?”
남다름 “네?”
본부장 “그 부서 말이야.”
답답한 건 맞다. 그런데 별수 있나.
남다름 “괜찮습니다. 배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부장 “그래. 내가 뭘 하나 시킬려고 하는데.”
남다름 “무슨...”
본부장 “저번에 말했던 여성타깃 제품말이야. 자꾸 머리에 맴돌아서 말이지.”
다름은 부서보고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본부장에게 ‘실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다 토해듯 뱉어버린 말들.
본부장 “제품개발 한번 해봐.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남다름 “아 네.. 그런데 제품개발실이 따로 있는데.”
본부장 “컨셉개발까지만 해보라는거야. 단, 비밀로 해야해.”
남다름 “비밀이요?”
본부장 “응. 아무래도 자꾸 회사정보가 새어나가서 불안하니까.”
남다름 “아..네...”
다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사의 자산을 탐내는 기운이 느껴진다.
차경우를 오해할때보다 더 강한 기운이.
본부장 “필요하면 해외출장도 다녀와. 지원은 팍팍 해줄테니.”
남다름 “출장이요?”
그 말과 함께 떠오르는 한 사람.
이마에 선홍빛 실선을 그리고 있던 어린 아들.
본부장 “왜? 싫은가?”
남다름 “아... 아닙니다. 해보겠습니다.”
본부장 “그래. 나가봐. 마부장 들어오라고해.”
타의로 비밀프로젝트를 맡게 된 다름.
어깨가 무거워진다.
*
자리로 돌아온 다름.
컴퓨터를 보는데 뭔가 허전하다.
모니터에 보여야할 어떤 자료도 보이지 않는다.
‘설마... 열지 말아야하는 자료를 열어버렸나?’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검은 그림자.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보고 스윽 사라진다.
*
‘탁탁탁탁’
계단을 성급하게 올라가는 다름.
자료를 복구하기 위해 IT부서로 뛰어가고 있다.
해커에게 해킹당한 거라면 IT도움을 받아야한다.
그때 누구와 세게 부딪치는 다름.
“아아아악!”
“으악!”
계단에 꼬구라진 두사람.
몸을 일으켜세워보니 한아름이 쓰러져있다.
남다름 “어머! 아름아 괜찮아?”
한아름 “아...언니...응응...”
남다름 “야! 너 피나는거 같아?!!”
한아름 “어디어디?”
남다름 “눈밑에 이거 피난거 아냐?”
한아름의 눈밑에 퍼런 멍이 들어있다.
한아름 “아.. 언니 이거 어제 집에가다가 어디 부딪친거야. 지금 다친거 아니야.”
남다름 “뭐야? 이쁜 얼굴이...”
자신의 얼굴인 것 마냥 속상한 다름.
아름의 얼굴을 보니 눈가 말고도 군데군데 상처가 보인다.
남다름 “너 정말 괜찮은거야?”
한아름 “괜찮다니까. 그런데 어디가던 길이야?”
남다름 “나 IT부서에. 너는 어디가?”
한아름 “나는... 방금 감사실 갔다왔어.”
아름의 말에 다름도 무언가가 생각났다.
‘맞다. 아름이 성추행 당했었다 그랬지.’
남다름 “맞다. 나도 너한테 물어보려 그랬는데.”
한아름 “응. 언니 글쎄 내가...”
다름에게 귓속말을 하는 아름.
한아름 “내가 성추행을 당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