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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Aug 18. 2024

인정받는 기쁨

이래서 열심히 사는 구먼


가족에게 인정받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난 뭔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너처럼 열심히 사는 애가 어딨냐. 회사 일 열심히 하고 사람들 만나고 해외출장 다니고 아이 케어하고 살림도 하고. 하지만 한 명은 안다. 인간 시드니가 정말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것을. 호기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손은 대는데 하다가 말아버리고, 어렵게 시작한 것도 마무리를 짓지 않는 끈기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명은 정확히 안다. 바로 남편. 


"와이프는 끈기가 없어."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는 놀랐다. 30 넘게 내 몸뚱이를 끌어안고 살면서 나라는 인간이 어설프다는 생각은 했지만 끈기가 없다는 생각은 안해봤다. 그의 말을 듣고 천천히 나란 인간을 돌아봤다. 어머 세상에. 나 진짜 끈기가 없구나. 책방 낸다고 임장 다니다가 접고, 학원 낸다고 했다가 접고, 살 뺀다고 했다가 안 빼고 등등. 나중에는 고맙기까지 했다. 모호하고 애매한 나의 특성을 언어로 정의해서 깨달음을 줬으니까.


결혼 11년 차에 아직도 사랑을 퍼주며 자상하지만, 성과적(?)으로 냉혹한 평가를 내놓는 남편이 요즘 나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와이프는 대단해. 정말 대단해. 아니 맨날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이제와서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게 어이없지만 그래도 인정받는 기쁨을 느낀다. 현재의 결과만 보며 인정받는 표면적인 인정과 남편의 인정은 완전히 다르다. 나라는 인간과 만 10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달여낸 뭉근한 인정이랄까. 나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그의 인정에는 깊이가 있고 진정성이 있다.   


책을 내고 오늘이 딱 한달이 되는 날이다. (글을 쓰고 있는 건 8월17일, 책을 낸건 7월17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진 않았지만 많은 축하를 받았다. 몇몇은 대단하다고 괜히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서 추앙해주기도 했다. 그럴 말을 들을 때 무감했다. 축하의 메시지는 감사하지만, 실제 나라는 인간은 내가 만든 루틴대로 살아가기 바쁜 그런 인간이니까. 그저 출간 축하자리를 위해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시간을 보낸 것 만으로 즐거웠다. 딱 그정도 였는데.


또 뭉근하고 진한 성취감을 느꼈다. 


지방에 살고 계신 친정부모님이 놀러오셨다. 우리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악수를 하며 '남작가님!'이라고 부른다. 어디 숨고 싶지만 그래도 내 책을 100권 이상 사주신 아버지기에 진하게 안아드렸다. 아버지 뒤로는 어머니가 보였다. 사랑하는 우리엄마. 오랜만에 만난 엄마를 꼭 안았다. 엄마는 자신을 감은 내 팔을 풀어버리며 말했다.

"나 진짜 단숨에 읽었다. 너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냐."


그 말 이후로 부모님에게 받았던 상처나 아픔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다. 평범한 가정이지만 가족 구성원이 많은 집이기에 서로 간 소소한 상처들이 많았고, 그런 상처들이 내 글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모든 아픔이 사라져 버렸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쓴 뿌리들이 전부 가루가 되어 창밖으로 날아가버렸다. 마음 속이 완전히 텅 비어 버려서 앞으로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청승맞은 생각까지 들을 정도. 


아이 방에 이부자리를 깔아드리고 70이 다 되어가는 엄마 옆에 누워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30대 후반이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일때 이렇게 누워서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다시 물어봤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어디가 어떻게 좋았는지 자세히 좀 말해달라고. 퀭한 눈으로 핸드폰을 보던 엄마는 찰싹 붙은 내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흘려보내 버릴만한 상황을 붙잡아  세세하게 적은 게 좋았지."

엄마, 내 책 진짜 열심히 봤구나. 티는 못냈지만 눈물이 났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를 내고 많은 조언을 듣는다. 앞으로 어떤 테마를 써봐라, 아니 차라리 돈을 벌거면 웹소설을 써라 등등. 많은 분들의 조언을 새겨들으며 작가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낼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생각회로 속에서 한 가지 생각은 명확하다. 어떤 형식이든 엄마아빠가 보실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ps. 돌아오는 금요일부터 20화 분량의 소설연재를 하려고 한다. 과거 써놨던 글인데, 조금씩 발행하면서 글쓰기 근육을 더욱 키우려고 한다. 끈기 있는 거 증명도 할겸. 기대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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