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by 시드니


헤어지는 중입니다.





청담동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이 첫 번째 시도는 아니다. 내 책 <청담동 살아요, 돈은 없지만>의 한 챕터에도 쓰여있지만 이 동네는 워킹맘에게 친절한 곳이 아니다. 마트는 멀고 학원은 드물고 나와 비슷한 배경의 사람이 거의 없다. 몇 번이나 반드시 이 동네를 나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번번이 여러 사정에 발목이 잡혔다. 결국 도로 하나를 건너 삼성동으로 이사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삼성동으로 온 선택이 나쁜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일이 시드니나 홍콩 같은 고물가 도시에서 사는 기분이었다. 생활 반경은 여전히 청담동이고 마트도 학교도 학원도 그대로였다. 주소만 바뀌었을 뿐, 삶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뜻밖에도 언니와의 대화였다. 마포에 사는 친언니와 아이 학원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원 체인이 그 동네에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거기 좀 비싸지 않아?” 가볍게 물었더니 언니는 그만한 가성비 학원이 없다고 했다. 동네 엄마들은 돌봄교실처럼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삼성동 학원비를 말하자 언니는 깜짝 놀랐다. 가격 차이는 거의 1.5배. 같은 커리큘럼에 같은 초등학생을 가르치는데 이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나 싶었다. 공간은 오히려 마포 쪽이 훨씬 널찍했고 이쪽은 닭장 같았다. 차이는 딱 하나, 임대료.


그날 이후 이사로 마음이 확 기울었다. 남편과 장시간 상의 끝에 동네를 떠나기로 했다. 집주인에게 연락했고 우리 집은 전세 매물로 나왔다.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한 뒤 남편이 처음 한 일은 곰팡이 제거제를 사는 일이었다. 오랜 연식의 이 집이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며 청소솔을 들고 겨우내 까맣게 번진 곰팡이를 묵묵히 닦아냈다. 현실적인 남편과 달리 나는 이별을 준비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떠나기 전까지 청담동을 최대한 누리기로 했다. 이사 날짜를 어렴풋이 정해두고 매일 이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곧 못 보게 될 풍경이니 지금이라도 많이 봐두자는 마음으로.

요즘 청담동 골목을 구석구석 돌고 있다. 아침에도 한 바퀴, 저녁에도 한 바퀴. 눈에 띄는 건 ‘임대’가 붙은 상가가 부쩍 늘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이었고 카페였고 학원이었던 자리들이다. 지금은 인기척이 끊긴 채 텅 비어 있다. 적적한 골목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떠난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풍경이다. 어쩌면 다들 나와 비슷한 이유로 이 동네를 빠져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와중에 회사도 움직인다. 재직 중인 회사가 서울이 아닌 곳으로 이전을 결정했다. 회사의 주소 이전은 경영진의 판단이니 직원인 내가 할 말은 없지만 집 이사와 회사 이전을 동시에 맞게 생겼다. 회사 이전까지는 아직 1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어 당장은 집부터 옮겨야 한다. 아직 목적지는 정하지 못했다. 다만 아이 학원이 많고 맞벌이 부부가 살기 수월한 동네였으면 한다.


뭔가를 떠나보낼 때 나는 꼭 나만의 의식을 한다. 테헤란로를 떠나는 회사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 5월쯤 <테헤란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연재할 계획이다. 나만의 조용한 제사랄까. 지금의 나는 청담동도 테헤란로도 그렇게 하나씩 떠나보내는 중이다.


그럼에도 마음은 아직 청담동과 테헤란로에 남아 있다.

떠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직 헤어지는 중이다.






+ 근황토크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달리 글쓰기 수업 의뢰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수업 의뢰가 많아진 sns 채널 하나를 닫았다.) 아시다시피 나는 직장인이라 시간이 넉넉지 않다. 무엇보다 글쓰기로 큰 돈을 벌 생각이 없고 큰 돈은 다른 걸로 벌 생각이다. 그래서 ‘시드니 글쓰기’ 수업은 재능기부거나 거마비(차비) 정도 나오는 수업들이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분들, 글쓰기로 내면을 다지는 분들과 만나는 기회 자체가 소중하고 이건 내가 얼마를 받는 가치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실제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가 주말에 만나는 수강생 분들 덕에 눈 녹듯 날아가기도 한다. 아무튼, 개인 코칭은 하지 않고 있으니 간헐적으로 열리는 시공사·한겨레글터 수업을 참고해 주세요. 만나서 깊은 대화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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