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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y 10. 2017

30. 여기다 싶은 곳

가방을 들들 끌며 코임브라 기차역으로 갑니다.








일단 여기서 아무 기차나 타고 코임브라 B 역으로 가야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니까 코임브라에는 기차역이 두 개 있어요. 하나는 그냥 코임브라(혹은 코임브라 A), 다른 하나는 코임브라 B 입니다. A는 근교를 왔다갔다 할 때, B는 장거리 열차 즉 도시간 이동을 할 때 주로 이용하는 역인데 저는 이제부터 포르투Porto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B로 가야 한다는 얘기여.









리스본에서 코임브라로 올때도 그렇게 일단 B에 내린 후 무료로 아무 열차나 잡아타고 A에 도착했던 것이라웅. 

이렇게 근교 열차 역과 장거리 열차 역을 분리하는 시스템은 코임브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목적지인 포르투 역시 역이 나뉘어져 있어, 일단 깜빠냐Campanhã 역에 내린 후 무료 환승을 통해 시내 깊숙한 곳의 상 벤투São Bento역으로 들어와야 해요.









그리하여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후에 포르투 상 벤투 역에 도착하니









뭐죠 이 기차역 왜 이렇게 멋진 거죠









밖으로 나오니 뭐죠 왜 사방에 술이 있죠









그렇습니다 여러분 제가 드디어 포트port 와인의 땅 아름다운 포르투Porto에 도착한 것입니다. 

예약해 둔 숙소에 가니 아직 청소가 덜 끝났다길래 일단 무거운 가방을 맡겨두고 샬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 주변엔 뭐 있을까 대략 어떤 분위기일까를 느껴보자며 토로로록 걸어가는데







갑자기 이런 풍경이 눈에 확 들어와 헉 하며 멈췄습니다. 

숙소 직원 왈 응응 우리 청소할 동안 쩌어기 쫌만 가면 강변ribeira이거든? 거기 산책하기 좋으니까 한번 가보렴 라고 했는데 어우 정말 아주 금방입니다. 골목 사이로 살풋 보이는 저 아래 아름다운 강변의 모습에 나의 마음 너의 마음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거려 당장이라도 강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어지는데









잠깐... 그 전에 밥좀 먹고...









아주 그냥 입이 찢어짐. 

도우루 강rio Douro 요쪽 편의 강변은 히베이라Ribeira 지구이고 건너 편은 빌라 노바 데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구라고 합니다. 빌라 노바 데 가이아는 행정구역상으론 별도의 자치 도시이지만 걍 포르투의 일부로 통하는 분위기여. 이쪽 히베이라엔 까페와 식당들이 모여 있어 이렇게 파라솔과 테이블을 쫙 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라고는 하지만 셀카라 주변이 잘 보이지 않구먼...







식당 오빠가 찍어준 사진으로 함 다시 보아용. 

그렇잖아도 배가 고팠던 1인은 참 잘생긴 호객오빠의 손짓에 매우 격하게 응했습니다. 마침 또 이 오빠가 포르투에 가면 꼭 먹어야지 했던 바로 그 음식명을 부르짖으며 저를 유혹하지 않았것습니까요. 이름하여 프랑세지냐francesinha라는 것으로 입 찢어지는 제 앞에 터억 하고 놓인 노리끼리한 음식이 고것인데









감자 튀김에 둘러싸인 그 무언가의 위에 겨란 후라이 하나를 턱 올리고 불그쟉쟉한 소스를 좍 끼얹은 음식입니다. 

프랑세지냐는 프랑스 소녀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요. 1960년대에 개발된 음식인데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이민 생활을 하다 고향인 포르투로 돌아온 남성이 프랑스에서 많이들 먹는 니끼원단 샌드위치 크로크 무슈croque monsieur를 포르투갈 사람들 입맛에 맞게 변형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면 허허 우리나라에서 부대찌개를 만들기 시작하던 딱 그 시기가 아니던가. 왠지 반갑습니다. 

프랑세지냐를 주문할땐 딱 샌드위치에 소스만 뿌려줭 / 겨란도 올려줭 / 감튀도 같이줭 등으로 선택 주문이 가능한데 호호 전 매우 단호하게 에브리씽으로다 주세요를 외쳤습니다. 싹 다 달라는 걸 포르투갈어로는 또도스todos라고 하는데 걍 에브리씽 해도 대부분 통하더라구융. 









그리하여 슥삭슥삭 반으로 갈라보니 허허 소시지 이만큼에 돼지고기 로스구이랑 버거 패티랑 햄이랑 치즈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 라는 것은 살찌기 따악 좋은 어마어마한 조합인데 이 다음날 만나게 된 포르투갈 청년 왈, 너 프랑세지냐 먹었어? 그거 2500칼로리 넘을걸? 하루 종일 걸어야 할걸? 라고. 웃자고 한 소리겠지만 호호 제 생각에 이거 백만 칼로리는 될 것 같아요 호호호... 

우얏든동 프랑세지냐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요 위에다 뿌린 불그쟉쟉한 소스인데, 이게 토마토 베이스에 맥주를 들이부어 만드는 거랍니다. 새큼 짭짤하면서 매운 맛(고추 말고 후추에서 나는)이 톡톡 쏴요. 가게마다 소스를 만드는 각자의 비법이 있다고. 

이후 프랑세지냐로 유명하다는 작은 식당에서 다시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그 맛에 비하면 오늘의 프랑세지냐는 사실 좀 아쉽습니다. 하지만 하늘 예쁘고 바람 선선하고 눈 앞에 아름다운 도우루 강이 쫘아악 보이는 곳인데 밥까지 맛있으면 불공평하지 않것냐며 적당히 납득함. 

탄산수 1.5유로, 프랑세지냐 10유로 해서 11.5유로입니다. 관광객 대상 식당이라 비교적 비싸네요. 어쨌든 푸짐하고 든든하게 잘 먹었다!









슬슬 방 청소가 끝났겠지 싶어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갑니다. 캬아 하늘 좋고 강물 좋고









좋아좋아 배 타고 구경도 할 수 있구나 나도 해야지 나도나도









조용하고 한적한(feat. 3일 내내 비) 코임브라에서 우오오 딱 봐도 사방에 볼거리 할거리가 쫘아악 널려 있는 포르투로 넘어오니 뭔가 막 흥이 나고 신이 납니다. 코임브라도 좋았지만 조금은 좀이 쑤셨거든요. 









라고 말하며 숙소에 들어와 일단 밀린 빨래부터 하는 1인. 지난 일주일간의 양말과 속옷과 티셔츠와 쫄바지를 대충 슬슬 빨아서 물기 꽉 짜 널었어요. 사진 왼쪽은 거실과 부엌이고 오른편 문 안쪽은 침실입니다... 라는 것은 그러니까 여긴 그냥 호텔이 아니라 아파트인데









여행 준비를 하면서 쫘악 보니까 포르투 숙소 중에 무슨 무슨 아파트 라는 것이 좀 있더라구요. 웬 아파트지 하며 예약을 한 것인데 도착해서 직원에게 설명을 들으니 최근 투자 회사들이 포르투의 낡은 건물을 매입해 리노베이션을 짜잔 하는게 붐이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싹 손을 본 건물을 통채로 렌트하거나 구입해 여행자 숙소로 활용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나요. 취업난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많다며, 이 곳도 방 서너 개로 시작해 지금은 요 주변의 건물 여러 채를 관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파트다 보니 따로 프런트 데스크라던가 로비가 없고, 미리 메일로 시간 약속을 하거나 전화를 해 체크인을 하는 형식이에요. 

야 너네 진짜 이거 괜찮다야 밖에서는 전통적인(좀 낡은) 포르투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놀다가 숙소 들어와선 새로 싹 고친 곳에서 쾌적하게 쉴 수 있잖아 라고 말하니 직원 왈, 그래 우리가 하는게 바로 그거야 사람들은 그래서 여길 좋아해 라고.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어 두 명이 묵더라도 어느 정도의 사적 공간을 누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좋을 땐 좋지만 때로는 잠시 혼자 있고 싶어질 때도 있으니까요. 원룸보다야 투룸이 쾌적하지 않갓디... 라고 말하며 지난 일주일간의 양말을 TV 앞에 좌라락 늘어 놓는 신예희씨. 









그나저나 현관 거울 아래에 있던 요 유리잔과 카라페, 장식품인줄 알았는데 어머나 이제 보니 나 먹으라고 포트 와인이랑 과자랑 놔둔 거였네? 이왕 준거니까 우아하게 마셔야겠네? 호호홍









는 개뿔ㅋ 양말을 배경으로 꿀꺽꿀꺽 마셔봅니다. 달어 달어 맛있어 맛있어.









티셔츠야 쫄바지야 빨리 말라줭을 외치며 거국적으로다가 한잔. 

여러분 포트 와인 이거 은근 셉니다. 한 20도 합니다. 물론 요맨큼 갖고는 별 일 없긴 하지만 어휴 그래도 지난 일주일간 나름 빡시게 여행했다고 순식간에 훅훅 올라오고 난리가 났습니다. 다음 일주일도 여행 쏠쏠하게 잘 해야지 그래야지 그렇고 말고...







이대로 자라면 아침까지 잘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안돼안돼 아쉽잖아! 하며 응차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느새 저녁 7시 가까이 되었어요. 엔간한 상점은 슬슬 문을 닫기 시작하는 시간. 물론 해는 8-9시 정도까진 환히 떠 있지만요.







스에끼 ㅎㅎ 좋댄다 ㅎㅎㅎㅎ









1층엔 옷가게가 아직 영업중이지만 그 윗층엔 아무도 살지 않는 모양입니다. 제 숙소가 아마도 이런 낡은 건물을 매입해 리노베이션한 것이겠죠. 실제로 포르투 곳곳에서 쿵덕쿵덕 건축 공사를 하고 있더라구요.









방향 표지판 앞에서 잠시 멈춤. 

어디 보자 직진하면 뭔 성당igreja이랑 뭔 궁전palácio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뭔 병원hospital이랑 또 뭔 연구소instituto랑 뭔 시장mercado이 나온다는데 이 시간에 가긴 어딜 가것시유 다들 문 닫았을 것인데.








그리하여 다시 히베이라Ribeira로. 

히베이라는 강변riverside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이자 포르투 요쪽 지역의 명칭이기도 합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성당이니 궁전이니 수도원이니 등등, 이곳 저곳을 꽤 빡빡하게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았는데 포르투에선 왠지 그냥 툭 소리나게 내려놓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산책하듯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도 일이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많은 것을 보고 꼼꼼히 정리해야 해 라는 주의지만, 때로는 '정보'라는 것이 진짜로 무언가를 쏠쏠히 알려주는 대신 오히려 생각의 폭과 활동의 폭을 좁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리스본 숙소 주인 아저씨의 '왜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여기서 나고 자란 내가 알려주는 알짜 정보 대신 한국에서 만든 가이드북에 나온 곳만 가는 거야?' 라는 말을 듣고 앗차 싶었거든요. 그 말이 계속 생각납니다. 








껄껄 그나저나 크루즈를 타려 하였는데 방금 코 앞에서 출발한 7시 배가 막배라니 내일이나 모레 타야겠구먼. 

호호 아쉽네요 라고 하니 크루즈 호객 오빠 왈, 강 건너편으로 산책 가는 것도 좋겠구나 한 번 가 보렴. 

그럼 강 건너편은 어떻게 가야 하나요 라고 물으니 오빠 왈, 그야 저 다리를 건너 가야지 라고. 아니 그러니까 저걸 어떻게 건너 가냐고요-.-







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걸어서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호호 그래 뭐 아직 해도 떠 있고 호호 시간도 많고 호호 할일도 없고 호호









그런 관계로 다리를 향해 긴가민가하며 다가가는 중이옵니다. 

아하 이게 보니까 다리가 2중인데 쩌어기 위의 높은 다리와 아래쪽 비교적 낮은 다리 모두 걸어서 왔다갔다 할 수 있구만요. 아래 다리는 요 강변에서 곧장 올라탈 수 있고 위쪽 다리는 여기가 아니라 쩌어기 윗동네 어딘가로 연결되는데








그래서 그게 어디라는 것이여 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으나 잘 안보임. 다리 아래에 계단이 있는 걸 보니 저 위로 올라가면 어떻게든 만난다는 거겠지요? 

그나저나 계단 벽의 하얗고 파란 그래픽은 포르투 시 곳곳에 활용되는 공공 그래픽입니다. 수명이 긴 디자인이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웃고 즐기는 사이 어느새 다리 입구에 도착. 이름하여 폰테 루이즈 쁘리메이루Ponte Luíz I. 

폰테ponte는 다리를 뜻하고 루이즈 쁘리메이루Luíz I는 루이즈 1세를 뜻하니 루이즈 1세 다리 되것사와요.







1881년에 공사를 시작해 1886년 완공한 다리인데 당시엔 요 다리 하나뿐이었다고 합니다. 위쪽 높은 곳에 있는 다리는 2005년경에 공사한 것이라고. 거기로는 지하철이 왔다갔다 하고 있어유. 

그나저나 이 구조 이 느낌... 웬일인지 낯설지가 않아요 설레고 있죠...







라는 것은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프 에펠 오빠의 제자 작품임. 

리스본의 엘레바도르 드 산타 주스타Elevador de Santa Justa(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역시 에펠 오빠의 다른 제자가 설계한 거라는데 당시 그쪽 연줄이 빵빵했나봐요. 입찰했다 하면 다 됐나봥.  









그렇게 385.25m의 다리를 천천히 걸어갑니다. 

아름다운 히베이라Ribeira지구를 한 번 바라보고







건너편의, 만만치 않게 아름다운 빌라 노바 데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구도 슥 바라봅니다.









풍경이 도에 지나치게 아름다워 감탄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다리의 끝에 도착하게 돼요.









빌라 노바 데 가이아에 도착. 줄여서 간단히 가이아Gaia라고도 합니다. 

한낮에 포르투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 걷고, 체크인을 하고,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면서 느낀 것이 뭐냐면







멀리서 봤을때만 아름다운 곳은 많다, 그런데 이곳 포르투는 멀거나 가깝거나 모두 쾌적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행을 통해 꽤 많은 지역을 가 보았는데 첫눈에 딱 여기다 싶은 곳은 포르투가 처음입니다. 

그만큼 이 도시의 첫인상이 좋아요. 풍경에 대한 인상과 사람에 대한 인상이 골고루 좋습니다. 이건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에요.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에서 닳고 닳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났던가 생각하면...








터키 이스탄불보다 트라브존을 그리워 하듯, 타이완 타이페이보다 타이중을 그리워 하듯 여행을 마친 후엔 포르투를 무척 그리워 하게 되겠구나 라는 강력한 예감이 빡 들었세요. 

유럽에서 한동안 생활한 친구가 말하길 너 아마 포르투에 가면 남은 일정 싸그리 취소하고 포르투에 올인할지도 몰라 라고 했는데 호호 어째 진짜로 그럴 것 같은 기분이 스멀스멀... 그나저나 너네 뭐하니...









조정용 보트를 어깨에 짊어지고 와 강물에 둥둥 띄우는 아이들.









거기 잡아봐 여기 잡을께 거기 그쪽 돌려야 해 아니 왼쪽 말고 오른쪽








보트가 무거울 것 같은데 열심이네 라고 생각하며 가이아 지구를 계속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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