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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hea Aug 28. 2015

에피소드 1. 첫 만남은 코피로

"달혜씨, 입회 원서 작성하시면 됩니다. 이 외에 다른  운동해보신 적 있으세요?"    



"네, 헬스 조금 했었어요.. 그리고 그 외에도 조금씩 했었고요."    




남자 냄새 가득한 체육관, 내 몸무게 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묵직한 샌드백들과 서랍 한 켠에 놓여있는 각종 미트와 글러브들.    






밴딩 하는  법부터 글러브 착용하는 것까지 상세히 설명을 들은 후 대 여섯 명 정도 되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 두 명, 그리고 복싱 선수인 혜선 언니와 첫 번째 복싱 수업을 시작했다.    





선수인 혜선 언니가 관장님의 조교로 수업을 진행했고 스트레칭으로 시작하여 가벼운 기초 운동, 케틀벨을 하고 난 뒤 일대일 타격 수업을 진행했다. 거울로 비친 내 모습을 잠깐 봤는데 그래도 각종 운동이라면 비슷하게 흉내 낼 정도였는데 너무 우습기 그지 없었다.    



'아.. 뭐야, 모양새가 전혀 안 나와. 너무 웃긴다 내 모습.. 그래도 처음부터 배워 가는 거니 언젠간 어색하지 않겠지'    




내 미트 상대는 혜선 언니였다. 처음부터 눈 여겨 보고 있던 상대가 하필이면..    



초보 주제에 언니를 신경 쓴다며 최대한 힘이 들어가지 않게 타격을 시작했다.

그렇게 3 라운드를 치고 나니 온 몸에 힘이 다 빠져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약 10여 분 뒤, 스파링이 시작되었다.    



'왠 스파링.. 난 링 위에 올라가 본 적도 없고 사람을 때려본 적도 없는데 이게 뭐지..'    



복싱은커녕 사람을 쳐 본 적도 없던 내가 링 위에 올라가서 스파링을 하라니.. 그것도 싫어하는 남자랑..    

그래도 호기심이 내 혐오감을 눌렀고 나는  어설프게 링 위로 올라섰다.   

 

여자는 타격, 남자는 방어.    


어제 보았던 키 큰 남자와 하게 되었는데 나랑 키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타격은 둘째 치고 스치지도 못할 것 같았다.    



'에잇, 모르겠다. 재미로 하는 건데 뭐 어때, 일단 해보지 뭐'    



1 라운드를 알리는 시작종이 울리고 마치 결전에 선 선수처럼 마음이 간질간질 해오는 것을 느끼며 상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키 큰 남자는 팔 다리가 길어 리치 범위가 나의 두 배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젠장, 파고들 틈이 없어. 어디서 어떻게 쳐야 되는 거야, 그냥 막무가내로 치면 되는 건가.'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 몸과는 다르게 머리는 계속해서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설프게 스텝을 밟으며 조금 씩 상대 품으로 파고 들면서 오른손으로 잽을 시도했다.    



 

'오.. 잽이 먹혔어! 맞았다'    




그러나 꽤 오래 동안 운동을 해온 것처럼 보이는 그 남자는 가드를 풀지 않고 나의 어설픈 오른손 잽에 꼼짝도 하지 않자 나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그냥 날려보자!'    




그리고는 내 오른 손에 여태껏 쌓였던 남자 혐오감을 가득 담아 어깨를 쭉 뻗으며 날린 스트레이트    




"퍽!"      




'마.. 맞은 건가, 손에는 느낌이 왔는데..'      




키 큰 남자가 우두커니 서있다 가드를 풀더니 얼굴을 드러냈다.      





"어,,? 엄마야!!!!!!!!!!!"    



너무 제대로 들어간 거지.    




남자  코에서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등 뒤로 쏟아지는 웃음소리와 조금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남자.  


  

휴지를 한 움큼 뜯어다 가져다 주면서 괜찮 냐며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오히려 안심시켜 주는 게 아닌가    



이건 뭔 여유야..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펀치를 날리고 그 펀치에 맞아 누군가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웠고 나는 운동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겁게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체육관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고 항상 터널을 지나 신호등 두 개를 건너고 음악을 들으면서 다녔는데 그 날 만큼은 기분이 좋지 않았고 이어폰도 뺀 채로 멍하니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등을 건너 터널로 걸어가고 있는데 자꾸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간격을 조금 씩 두고 약 올리듯이 살살..      



'에이씨, 기분도 안 좋은데 어떤 새끼야..'    


  

인상을 힘껏 쓰며 뒤를 돌아보는 찰나,      




노란색 얇은 프레임의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탄 남자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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