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
스크린 속 톰 크루즈를 마주한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매끄러운 이마부터 짙은 눈썹 산, 정교하게 뻗은 관자놀이와 인중, 입술 산에서 입꼬리로 이어지는 특유의 곡선까지 소름 끼칠 만큼 준호와 닮아 있었다.
육 학년 중 가장 키가 컸고, 영특한 머리에 달리기 실력까지 갖춰, 전교생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아이다. 수많은 눈길 속에서도 준호는 낯가림 섞인 침묵이 배어 있어 누구와도 곁을 나누지 않았다.
준호에겐 대조적인 형 민호가 있었다. 이목구비는 동생만 못해도 평균 이상은 되었으나, 공부엔 담을 쌓았고 거친 욕을 달고 살았다.
까무잡잡한 준호와 달리 형은 피부가 희멀건 데다 뺨에 짙은 점이 박혀 있었는데, 위치가 가물가물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보통의 형제라면 맏이가 기둥 노릇을 하고 둘째가 사고뭉치이기 마련인데, 나와 정반대인 형제의 구도는 어린 마음에도 이질감을 주었다.
그런 준호가 좋았다.
백팔십 명이 북적이는 보육원 안에서 녀석을 찾는 건 쉬웠다. 토요일 오후면 수돗가에 웅크린 실루엣이 보였다. 준호는 제 것과 형의 운동화를 박박 비벼 빨고, 면양말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빨아 널었다.
앳된 팔뚝 위로 푸릇한 사내티가 돋아나던 손, 마디 굵은 끝에서 하얀 양말을 비틀어 짜던 섬세함이 맘에 들었다.
무뚝뚝한 녀석을 장난기로 흔드는 건 작은 즐거움이었다.
공동 건조대에 나란히 걸린 두 켤레 사이로 내 양말을 끼워 넣으면, 준호의 결백한 세탁물 사이에서 덜 빨린 내 양말이 민망하게 흔들리곤 했다.
깜빡 잊고 두고 온 날이면, 저녁 무렵 준호가 톰 크루즈 같은 미소를 머금고 반듯하게 갠 양말을 건네주었다.
중학생이 되어 밥 당번을 맡은 날에는 김치찌개 속 알찬 고기 덩어리를 녀석의 식판 위로 가득 올려 주며 진심도 얹었다. 그러면 준호는 다음 날 다시 정성스레 개어낸 양말로 화답했다. 녀석은 온기를 알았을까.
스물한 살, 외가가 있는 안양에서 재회한 건 운명보다 우연이었다. 전교 일등을 도맡던 준호의 총기는 세월 속에 빛이 바랬고, 멈춰버린 키만큼이나 대학의 문턱도 멀어져 있었다.
애초에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나와 달리, 모든 걸 잘 해냈던 준호의 정체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녀석의 결핍을 영양 상태나 환경 탓으로 돌리며, 졸업 후에도 돌아갈 곳이 없던 형제였기에 애가 탔다.
민호 형은 안산의 공장 기숙사를 전전하다 프레스기에 손가락을 잃었고, 준호는 좁고 어두운 엘리베이터 통로를 오르내리는 기사로 하루를 버텼다.
팔 년을 한 울타리에서 자란 덕에 우정보다는 가족 같은 유대감이 짙었다.
이사 때마다 준호는 제 일처럼 팔을 걷어붙였고, 옥탑방 도배지를 함께 바르고 네 자매와 한방에서 눈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준호의 자취방을 찾았다. 남녀 사이의 긴장감은 없었다. 여성미 없는 내 문제인 지, 녀석의 겉과 다른 여성성 때문인 지 고민해 본 적 있지만, 남매 같은 편안함으로 결론지었다.
부엌은 예상대로 정갈했고 연탄아궁이 위엔 새하얀 운동화가 뽀얗게 말라가고 있었다. 닳아 해진 양말들도 익숙한 순서대로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 방에서 그것을 발견한 이후, 준호를 밀어냈다.
건장한 청년의 방 한구석 종이 상자 위에 ‘나에게 쓰는 편지’라고 또박또박 적어 만든 우체통이었다.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말들을 스스로에게 쏟아붓는 고독의 잔해처럼 보였다.
우체통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복잡하게 엉켰다. 녀석의 결핍을 채워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알던 당당한 준호가 위태롭게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싫었던 뒷걸음질이었을까.
편지함 속에 담긴 쓸쓸함이 나에게 옮겨 붙을까 두려웠던 걸까.
어떤 내용을 쓰느냐고 묻지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우체통은 두고두고 마음의 가시가 되었다.
이유를 모른 채 발길을 끊었고, 각자 가정을 꾸리고 서른 줄에 접어들어서야 다시 마주했다.
준호의 아내는 나를 고모라 불렀고, 우리는 여전한 말투로 옛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끝이었다.
준호의 소식은 절벽처럼 끊겼다.
누구도 녀석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내게 준호는 가족애 이상이었을까, 아니면 같은 결핍을 공유한 동지였던 걸까.
자신에게 편지를 띄우던 행위가 왜 그토록 두렵게 다가왔을까.
어쩌면 우체통은 준호가 세상에 보내는 구조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준호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있을까.
녀석이 정성껏 빨아 널던 눈부시게 하얀 운동화와 면양말을 다시 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