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그 시간에 차라리 돈 벌 궁리를 해. 선풍기가 몇 푼이나 한다고.”
거실 바닥에 분해해 놓은 선풍기 모터와 날개, 나사들을 내려다보며 친구가 말했다.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오래 남았다.
창밖에는 햇빛을 번쩍이며 튕겨내는 친구의 세단이 뽐내듯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오래된 내 소형차가 기죽은 듯 웅크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대비가 그날따라 유독 선명했다.
딸 많은 집에는 아들 노릇을 자처하는 아이가 하나쯤 생긴다.
네 자매 중 둘째로 자라면 저절로 익히게 되는 생존 방식이 있다. 언니가 관심 두지 않는 분야에 공을 들여 존재를 증명하는 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 안에서 비어 있는 자리를 먼저 찾아 메우는 일.
내 시작은 미미했다.
술에 취한 아빠가 부러뜨린 쓰레받기 손잡이를 테이프로 감아 붙인 일이다. 어긋난 단면을 맞추어 쥐고 한참을 붙들고 있으니, 금이 간 자리가 잠시나마 이어졌다. 그 순간 알 것 같았다. 부러진 것들은 무조건 버리는 게 아니라, 한 번쯤은 맞춰볼 수 있다는 것을.
그 뒤로 집 안의 고장 난 것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내 쪽으로 모여들었다.
전기밥솥, 다리미, 선풍기, 방문 손잡이, 헐거워진 경첩. 대부분은 다시 움직였다. 가끔은 더 망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망가진 걸 들여다보는 일에는 위안이 있었다. 고장이란 갑자기 닥친 재난이 아니라, 원인을 찾아 천천히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 같았다.
어쩌면 나는 물건보다 다른 것을 먼저 고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손쓸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술 마신 아빠의 고함, 벽을 타고 번지는 불안, 밥상 위로 떨어지는 침묵.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날 아침밥을 지었고, 우리는 전날의 금 간 저녁을 모른 척한 채 수저를 들었다. 깨진 것은 많은데, 누구도 그것을 깨졌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나사는 조이면 되고, 선은 다시 연결하면 되고, 먼지는 닦아내면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물건은 손댄 만큼 반응했다. 사람이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일찍 배웠기에, 더더욱.
며칠 뒤,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녀의 차를 타고 거래처로 이동하던 길이었다. 고급스러운 실내에는 은은한 향수가 배어 있었고, 내 무릎 위에는 그녀가 급히 건네준 서류철이 놓여 있었다. 신호대기 중 전화가 걸려왔다. 거래처였다.
친구는 보이지도 않는 상대 앞에서 허리까지 굽히는 사람처럼 연신 사과했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이번엔 꼭 맞추겠습니다.”
“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도 그녀는 한동안 핸들을 잡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차창에 비친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반듯하게 그려 넣은 아이라인 아래로 피로가 번져 있었다. 그 얼굴 위로 며칠 전 내게 했던 말이 겹쳤다.
선풍기가 몇 푼이나 한다고.
어쩌면 그 말은 나를 향한 충고라기보다, 자신을 향해 휘두른 채찍의 파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늘 시간과 약속, 돈의 속도 안에서 달리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목소리를 낮추고, 잠을 줄여가며 버티는 사람. 그녀가 견디는 하중은 달리는 사람만이 견딜 수 있는 무게처럼 보였다.
문득 창밖에 세워진 내 소형차가 떠올랐다.
빗물에 얼룩진 차체, 문을 닫을 때마다 한 번 더 힘을 줘야 하는 손맛, 오래 달리면 어딘가에서 미세하게 떨려오는 잡소리. 남들 눈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였다.
그녀의 날카로운 문장 뒤에 숨어 있던 고단함을 그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부러워했고, 그녀는 나를 답답해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삶을 잠깐씩 부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빨리 달리는 사람은 느린 바람을 모르고, 느리게 걷는 사람은 속도의 대가를 알지 못한다.
집에 돌아오니, 고쳐둔 선풍기가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분해해 닦고, 삐뚤어진 축을 맞추고, 헐거운 나사를 조인 뒤 간신히 조립을 끝낸 것이었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제대로 돌아갈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전원을 꽂고 스위치를 눌렀다.
잠시 뜸 들이더니 날개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뭇거리는 듯, 그러다 제 리듬을 찾았다.
낡은 날개가 밀어낸 바람이 방 안을 크게 한 바퀴 휘돌았다. 서두르지 않는 속도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분명한 바람이었다. 식탁 위 영수증을 흔들고, 커튼 자락을 건드리고, 내 발등에 내려앉은 열기를 조금씩 밀어냈다.
한동안 그 바람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살다 보면, 세상은 자꾸만 우리에게 묻는다.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느냐고.
얼마나 많이 벌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얼마나 쓸모를 증명하고 있느냐고.
그 질문 앞에서 자주 작아졌다.
고장 난 물건을 붙들고 몇 시간을 보내는 일이 한심해 보일 때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계약서를 쓰고, 누군가는 더 좋은 차를 사고, 누군가는 한 계단 더 올라가는데, 나는 나사 하나를 찾아 바닥을 더듬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 삶을 버티게 한 것은 대단한 속도가 아니었다.
고장 난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마음이었다.
금 간 자리를 들여다보는 인내였다.
한 번 더 닦고, 다시 조이고, 끝내 움직일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고집이었다.
물건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관계도 그랬고, 마음도 그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랬다.
잘 돌아가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걸음 같고, 남들보다 한참 뒤처진 것 같은 날들.
그러나 느리게 돈다고 해서 멈춘 것은 아니다.
소리가 나고, 진동이 심하고, 남들 보기에 낡았을 뿐, 내 삶도 나름의 바람을 만들며 돌아가고 있었다.
선풍기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가끔 목을 돌리다 멈칫하고, 약풍 버튼을 눌러도 중풍처럼 세게 불어올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선풍기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몇 푼 안 하는 물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내가 오래 붙들고 살아온 태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여러 속도의 바람이 있다.
누군가는 태풍처럼 몰아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선풍기 한 대의 느린 회전으로 한여름을 건넌다.
나는 아직도 고장 난 물건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드라이버를 쥔 손끝으로 작은 나사를 돌리며, 한때의 나를 만난다.
아무도 고치지 않으려던 것들 곁으로 조용히 걸어가던 아이,
깨진 것을 버리기보다 먼저 들여다보던 사람.
그리고 안다.
내가 끝내 지키고 싶은 것은, 빠르게 달리는 삶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끝내 바람을 만들어내는 삶이라는 것을.
그날, 거실 한가운데서 천천히 돌아가던 선풍기 바람이
내게 오래 남은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 바람은 마치,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너는 너의 속도로 돌아가면 된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