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언니

레몬트리가 멈춘 날

by 재해석


평생 타인으로부터

언니 칭찬을 들으며 살았어요.


언니가 없는 자리에서도

주인공은 늘 언니였어요.


나조차도

언니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언니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 것 같아요.


부모님이 부자도, 전문직도 아니었던

우리 집 네 자매 중 가장 출중했던 언니는

나의 유일한 내세울 거리였으나

정작 언니 앞에서 칭찬 한마디 건네지 못했습니다.


겨우 한 살 차이인데도

어린 시절 언니의 일기를 베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언니는 늘 어려운 존재였어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언니에게 빗자루의 두툼한 나무 손잡이로

손바닥을 맞았습니다.


둔탁한 무게가 뼈마디를 울렸지만

끝내 울지 않는 것으로 사춘기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예쁘고 공부 잘하는 언니,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는 언니,

말씨마저 고운 그 완벽한 연년생 언니가

나도 좋았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불편해졌죠.

언니 역시 내가 자신의 자랑거리가 되길 바랐겠지만, 나는 언니 방식대로 살아주지 못했거든요.


한 살 차이 언니에게

엄마 역할을 기대하며

내 삶의 오물을 쏟아부은 내 잘못이었죠.


만나기만 하면 남편 흉, 동서 흉을 보며

언니의 깨끗한 세상을 오염시켰으니까요.


이혼을 결심하고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데리고

언니가 이사 간 중국 항저우로 따라 갔을 때,

언니의 일기를 베끼듯 언니 삶을 배우고 싶어서였어요.

언니가 읽는 책을 따라 읽고,

언니의 안목을 훔치며,

'버릴 것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그렇게라도 언니에게 인정받고 싶었어요.


사건은 비틀스의 '레몬트리'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수영장이 딸린 고급 아파트,

그 우아한 언니의 집을 청소하던 날이었어요.

캠프에 간 어린 딸이 울며 전화를 걸어오던 힘겨운 오후,

기운을 차려보려 노래 볼륨을 조금 키웠습니다.

그때 2층에서 내려온 언니는

넘치는 국숫물에 찬물을 끼얹듯

레몬트리 볼륨을 줄여버렸어요.


그 짧은 순간, 커다란 깨달음이 발등에 꽂혔습니다.

" 왜 줄여?"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고개 숙인 채 눈물 한 방울이 발등에 툭 떨어집니다.


살림 스타일이 다른 두 여자의 갈등인지,

아니면 서열의 재확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습니다.

다음 날, 바로 귀국했어요.


언니는 내가 의지할 신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겁니다.

꼴랑 한 살 많은 나약한 인간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려 했던

내 어리석음을 알고 비로소

'정신적 독립'이 시작됐어요.


그 후로 나는 누구에게도

언니 칭찬을 하지 않았습니다.

책 보기를 돌같이 하며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언니 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몇 년 전, 전화로 다투다

40년 만에 용기를 내어 '너'라고 불렀어요.


"너는 왜 남들한테는 상냥하면서 나한테만 못되게 구는 건데!"


전화기 너머로 팔짝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평생 추앙만 받던 언니에게는

날벼락같은 반역이었을 테죠.

달변가인 언니가 논리 없이 흥분만 하는 걸 보며,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사십 년 묵은 체증이 절반은 내려가는 기분이었죠.


며칠 뒤, 언니가 울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자매는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어요.

나는 서운함의 절반만 이야기했습니다.

다 말하면 또 싸울 게 뻔하니까요.


이제 언니가 모르는 이곳에 글을 쓰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너'라고 합니다.


"너도 나 좋아하잖아! 좋아하면 그러는 거 아냐!!! "






매거진의 이전글정은 정이고 값은 값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