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값의 온도
때(垢)와 값(價).
생경한 두 글자가 붙은 말을, 얼마 전 처음 들었다.
‘때값.’
웃음이 먼저 났다.
생활감이 넘치면서도 이상하게 오래 남는 말이었다.
몸의 묵은 때를 미는 값이면서, 누군가의 수고를 공짜로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의 값 같았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말에는 사람 냄새가 배어 있다.
‘때값’도 그랬다.
말의 주인을 알게 되자, 그 단어가 또렷한 얼굴을 갖게 되었다.
그 말을 가르쳐준 사람은 나를 언니라 부른다.
홑이불 같은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남한강이 보이는 식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강물은 적막했고, 저녁은 천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는 강변의 불빛이 성긴 간격으로 켜지고, 실내에는 수저 부딪는 소리와 낮은 말소리가 잔잔하게 떠다녔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약속 시간에 시작되지 않는다.
날짜를 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날도 조금 일찍 나섰다.
기다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운 사람이 반드시 온다는 전제 아래 기다리는 시간은 충만하다.
상대가 늦는 것이 아니라, 오래 음미할 시간이 주어진다고 믿게 된다.
먼저 도착해 자리를 고른다.
문 쪽이 잘 보이는 자리, 강물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자리, 서로의 표정이 환하게 보이는 자리.
기다리는 동안 물컵에 손을 얹고 창밖을 보다가, 문이 열릴 때마다 무심한 척 고개를 든다.
그 짧은 순간들이 좋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오기 전부터 이미 그 사람을 마음속에 앉혀두는 일과 비슷하다.
그녀는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온다.
평범한 일도 그녀의 입을 통과하면 다음 장면이 궁금해진다.
말을 잘해서만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오래 들여다본 이의 눈이 있다.
누구나 지나칠 수 있는 장면에서 혼자만 건져 올리는 감정이 있다.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구는 사건만 기억하고, 누구는 스친 표정 하나를 오래 기억한다.
그녀는 후자에 가까웠다.
처음 듣는 사람은 그녀를 오해할 수도 있다.
자기 이야기를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충 들으면 자랑 같고, 잘난 척처럼도 들린다.
좋은 물건을 샀다는 말, 누구에게 뭘 해줬다는 말,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는 말이 연달아 나오면 마음이 먼저 경계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 듣고 있으면 안다.
허세보다 결핍이 많고, 과시보다 애정이 많다는 것을.
자기를 드러내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다정을 세상에 자꾸 시험해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의 회사에는 오래 함께한 직원들이 여럿 있다.
요즘처럼 사람의 마음이 쉽게 떠나는 때에는 드문 일이다.
월급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믿지 않게 된 지 오래지만, 사람은 끝내 사람 때문에 남기도 한다.
사람이 오래 머무는 자리에는 이유가 있다.
“추워 보이면 그냥 못 지나가. 두툼한 외투라도 사 주지.”
툭 던진 말이었지만, 그 말 안에 그 사람이 들어 있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추워 보인다’고 표현하는 사람.
사정을 길게 묻지 않고, 조용히 체온을 보태는 사람.
누군가의 형편을 캐묻지 않고도 그날의 안색과 어깨선만으로 알아차리는 사람.
말보다 먼저 손이 가는 사람.
사람 붙잡는 데 거창한 건 필요 없다고도 했다.
인정이든 보상이든,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처세처럼 들릴 수 있으나, 실은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일을 오래 시키고 싶으면 돈을 더 주거나, 마음을 다치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극세사 이불에서 시작되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그녀가 처음 극세사 이불을 덮었을 때, 그 부드럽고 포근한 감촉이 오래 남았다고 했다.
가볍고 따뜻한 것이 몸을 덮는 순간, 하루의 고단함이 한 겹 벗겨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좋은 것을 만나면 혼자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가 꼭 그랬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포장해다 주고 싶고, 몸에 잘 맞는 영양제를 알게 되면 한 통 더 사두는 사람.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밴 사람.
몇 년째 다니는 동네 목욕탕에 세신사가 한 분 있다.
가족도, 기대어 살 만한 식구도 없이 홀로 살아가는 분이라고 했다.
겨울이면 더 을씨년스러운 시골 목욕탕에서 하루 종일 물과 김 사이를 오가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나면, 돌아와서도 마음 한켠이 시렸다고 했다.
세신사의 손은 늘 불어 있다고 했다.
손가락 마디도 굵어져 있었다.
남의 몸을 밀어주는 손이 정작 자기 손은 돌보지 못한 채 거칠어지는 풍경이 오래 남았다고 했다.
계절이 바뀌면 몸에 좋다는 것을 챙겨주고, 지나가다 생각나는 먹을거리를 건네기도 했다.
시장에 갔다가 제철 과일을 보면 한 봉지 더 사고, 비타민을 사면 한 통 더 챙겼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거창한 사건보다 사소한 반복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극세사 이불만큼은 오래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내가 덮어보니까 너무 따뜻한 거야. 혼자 덮고 자려니까 자꾸 그 이모 생각이 나더라.”
결국 하나를 더 사서 건넸다고 했다.
세신사는 한사코 미안해하며 받았다.
사람은 귀한 것을 받으면 기뻐하기보다 먼저 미안해지는 때가 있다.
그 미안함은 대개 오래 혼자 버텨온 사람들의 표정과 닮아 있다.
그 대목에서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가끔 그분이 때값을 안 받으려고 해. 내가 그건 또 별개라고 하지.
정은 정이고, 값은 값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조용히 울렸다.
고마운 마음과 정당한 대가를 뒤섞지 않는 감각.
정을 베풀되, 상대의 노동을 값없이 소비하지 않는 태도.
살다 보면 호의라는 이름으로 쉽게 무임승차하는 장면을 많이 본다.
가깝다는 이유로, 친하다는 이유로, 나를 아낀다는 이유로 상대의 시간을 덜 귀하게 여기는 일.
그녀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때값’이라는 단어 하나로 관계의 예의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말이 유난히 좋았다.
돈 이야기를 하면 속물 같다고 여기고, 정을 말하면 모든 셈법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말은 이상할 만큼 단정했다.
정은 정이고, 값은 값이다.
좋아해서 더 챙길 수는 있어도, 좋아한다고 덜 치러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간단한 원칙이 관계를 오래 가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토록 사람을 잘 챙기는 이는, 정작 무엇을 받을 때 기쁜 사람일까.
“너는 뭐 할 때 제일 좋아?”
질문이 건너간 순간, 그녀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늘 먼저 챙기는 사람에게 돌아간 질문 하나가 공기 결을 바꾸는 걸 보았다.
울지는 않았지만, 울음을 참는 얼굴 같았다.
퍼주기에 익숙한 사람은 자기 욕망을 묻는 말 앞에서 잠시 멈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그것을 대답해도 되는 사람인지 먼저 확인하는 표정.
그 표정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가족들 밥상은 챙기면서 정작 자기는 찬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 남의 부탁은 거절 못하면서 자기 아픈 곳은 끝내 말하지 않는 사람, 늘 “나는 괜찮아”를 먼저 꺼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때 알았다.
‘네가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은 생각보다 다정한 질문이라는 것을.
채워주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네 마음도 이 자리에서 중요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한마디가 오래 닫혀 있던 문고리를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지금처럼 퇴근하고 언니랑 맛있는 거 먹는 거.”
조금 더 솔직해졌다.
“마사지 받는 것도 좋아. 누가 나를 정성 들여 만져주는 거잖아.”
그 말 앞에서 장난으로 흘려보낼 수 없었다.
취향의 고백이라기보다, 결핍의 번역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정성껏 돌봄을 받는 일.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편안히 몸을 맡기는 일.
그녀가 좋아한다고 말한 것은 음식이나 마사지가 아니라, 어쩌면 ‘나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인지도 몰랐다.
돌이켜보면, 늘 주는 사람에게는 받는 연습이 부족하다.
주는 일은 익숙해도 기대는 일은 서툴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일수록 그렇다.
그녀의 웃음 뒤에 비친 망설임이 오래 남았다.
그제야 그녀의 자랑들이 다르게 보였다.
좋은 것을 사주는 일.
추워 보이는 사람에게 외투를 챙기는 일.
홀로 일하는 이에게 따뜻한 이불을 건네는 일.
고마운 마음과 별개로 정당한 값을 치르는 일.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
생색도, 자랑도 아니었다.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세상을 조금 덜 차갑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덜 외로워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돕는 일은 상대를 위한 것 같지만, 자기 안의 허전함을 덜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어깨에 이불을 덮어주며 내 마음의 찬 기운도 함께 덮는 것.
그녀는 아마 그런 식으로 살아온 사람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자기가 받고 싶었던 방식으로 남을 대한다.
내가 서운했던 지점을 더듬어 타인의 서운함을 먼저 지우려 하고,
내가 목말랐던 온도를 기억해 누군가의 체온을 먼저 챙긴다.
누군가에게 밥 한 끼를 사는 일, 계절이 바뀔 때 옷 한 벌을 떠올리는 일, 별것 아닌 안부 한 통을 먼저 건네는 일.
삶은 결국 그런 사소한 반복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역지사지지 뭐. 내가 원하는 걸 주는 거야.”
툭 던진 말이었지만, 그날의 가장 정확한 문장이었다.
짧고 단순한 말이 오래 남는 건, 그 안에 이미 한 사람의 생활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려운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오래 살아내며 몸으로 익힌 문장을 가지고 있었다.
남한강은 여전히 어두웠고, 식당 유리창에 비친 우리 얼굴은 조금 환했다.
강물처럼 말없이 흘러가는 저녁 속에서, 오래도록 ‘때값’이라는 단어를 굴려보았다.
창밖은 캄캄했지만 물 위로 흩어진 불빛은 또렷했다.
사람의 마음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멀리서 보면 어둡고 막막해 보여도, 가까이 가면 끝내 반짝이는 것이 남아 있다.
때를 미는 값.
수고의 값.
관계의 값.
함부로 받지 않으려는 마음과, 기어이 치르려는 마음이 만나 만들어내는 예의의 값.
세상에는 말 몇 마디만으로도 한 사람을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
그녀의 ‘때값’이 그랬다.
정을 주되 값을 흐리지 않는 사람.
마음을 내밀되 선을 무디게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서는 관계가 오래 버틴다.
호의가 빚이 되지 않고, 고마움이 부담으로 변질되지 않는다.
다정함이 서로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남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세상이 정돈되는 느낌이 있다.
무너진 데 없이, 과장된 데 없이,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는 밤.
돌아오는 길, 마음이 덜 삭막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문장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무엇을 얼마나 해주었는가보다, 어떤 태도로 대했는가가 결국 사람을 남긴다는 걸 그날 다시 배웠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고 싶어 하는 사람.
정과 값을 헷갈리지 않는 사람.
자기 결핍을 타인의 안온함으로 바꾸어 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안다.
‘때값’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그녀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