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부부의 이중주
아버님은 집밥만 고집하셨다.
어머니의 음식 솜씨라면 누구라도 그럴 만했다.
출퇴근 없는 일을 하셨던 어머니는 평생 삼시 세끼를 지어 올리셨다.
한 사람은 밥을 지었고, 한 사람은 그 밥을 남김없이 받아먹었다.
아버님이 수저를 놓으실 때마다 “어허, 잘 먹었다”를 후식처럼 남기시면,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받으셨다.
“저 냥반은 뭐든 잘 잡쉈다 하니께 복 받고 사시는개벼. 물만 마셔도 잘 잡쉈다 허신다니께.”
두 분의 대화는 매번 들어도 물리지 않았다.
늘 같은 말인데도 처음 차린 밥상처럼 정이 갔다.
그 다정한 되풀이가 입 짧은 딸에게까지 이어져, 어느새 집안의 유산이 되었다.
아버님이 담낭 수술을 받으신 뒤, 섬망과 당뇨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숭늉처럼 챙기시던 믹스커피에도 금지령이 내려졌다.
몰래 커피를 마시는 내 손끝이 괜히 미안하던 어느 아침, 거실에서 노부부의 대화가 들려왔다.
“약 드셔유.”
“배불러서 못 먹어.”
“약 먹을 배는 따로 있잖어유.”
“배 터져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배 터지면 내가 업고 병원으로 냅다 뛸 게유. 걱정 마셔유.”
노부부의 웃음소리가 아침 햇살처럼 거실에 번졌다.
식사를 마친 어머니는 슬그머니 커피를 타서 아버님 앞에 놓으셨다.
“의사가 커피 마시지 말라더니?”
“주지 말랬는디 오늘만 줄 텡게, 식혀서 드셔유.”
“의사가 커피도 식혀 먹으래?”
아버님의 능청스러운 반문에 우리 셋의 웃음이 넘실거렸다.
금지된 커피 한 잔이 그날 아침만은 약보다 먼저 사람을 살렸다.
팔순 노모에겐 이야기가 많다.
나흘째 몸살이 허리에 들러붙어, 며느리인 나는 움직임조차 불편했다.
어머니는 텔레비전 아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테레비 아래 봉투에 케토톱 있으니 붙여라. 파스 냄새도 없길래 우습게 봤더니만, 아녀. 제법이여.”
굳은 허리를 숙여 파스 한 장을 꺼내 들자, 어머니는 금세 붙여 주실 듯 손을 내미셨다.
부끄러움이 병보다 깊은 며느리는 얼른 몸을 틀어 방으로 숨어들었다.
잠시 뒤, 어머니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따라 들어왔다.
“잘 붙였니? 어떤 이는 제 등에 붙이겠다며 거울 앞에 섰디야. 한참을 낑낑대다 돌아보니, 글쎄 파스가 거울에 착 달라붙어 있었댜.”
거울 대목에서 어머니는 소녀처럼 잔꽃웃음을 웃으셨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 웃음 한 번에, 오래 묵은 서운함 하나가 조용히 떨어져 나갔다.
이 집의 집밥은 밥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잘 잡쉈다”는 말 한마디와 “식혀서 드셔유” 하는 핀잔 사이에,
서로를 먹이고 돌보며 늙어온 세월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것을.
어쩌면 집밥이란 음식이 아니라 마음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다 먹은 뒤에도 남아 후식처럼 입가를 맴도는 말,
아픈 데를 먼저 알아차리는 눈길,
거울에 붙은 파스 같은 우스운 이야기로 민망함을 덜어 주는 손길.
그날 나는 밥 한 끼를 본 것이 아니었다.
한평생 서로를 먹여 살린 사랑의 버릇을 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