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고아지?

by 재해석


보육원 생활을 떠올리면

빠지지 않는 첫 장면이 있다.

“너도, 고아지?”

“아닌데. 엄마 아빠 다 있는데?”

“그런데 왜 여기 왔어?”

“몰라.”

“모르긴 뭘 몰라. 여기 오면 다 고아지.”

아니야. 엄마가 잠시 맡긴 거야.

버린 거 아니야. 맡긴 건 고아가 아니야.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은 온댔어.

그 말들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나는 속 끓이는 아이였다.

내성적인 아이는 선 긋기를 잘한다.

울기 전에, 믿기 전에, 먼저 줄부터 긋는다.

저 아이와 나 사이에 확실한 선 하나를 그었다.


쟤랑은 친해지지 않겠다.

첫인상은 중요하다.

특히 초면에 남의 인생을 한 줄로 정리해 버리는 애라면 더 그렇다.

학교에 꼭 하나씩 있는 부류였다.

선생님 앞에선 얌전하고, 애들 사이에선 규칙처럼 구는 아이.

또래보다 덩치가 컸고 벌써부터 어른 흉내를 냈다.

신입 고아를 압도해 보겠다는 자신감이 눈빛에서 번들거렸다.

보육원에 들어온 첫날, 첫 사회생활이 쉽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밥 먹으라는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갔다. 나도 뒤를 따랐다.

기다란 식탁. 철제 식판.

한꺼번에 밀리는 의자 소리.


그날의 소리는 아직도 돋보기처럼 선명하다.


그 애가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너 이름 뭐야?”

“왜에?”

조용한 아이라고

꿈틀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왜가 니 이름이야?”

아이들이 웃었다.

내 편인지, 그 애 편인 지,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곳이 제일 먼저 가르쳐 준 건 웃음에도 진영이 있다는 거다.

그 애가 숟가락을 들고 나를 빤히 훑으며 말했다.

“너 앞으로 내 말 잘 들어야 돼. 내가 상록관 관장이야. 난 동갑이라고 절대 봐주지 않아.”


상록관은 초등부 여자아이들 숙소였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몰아넣은 작은 국가.


송죽관, 본관, 신관, 별관, 이름은 근사했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은 제 몫의 서열을 익히며 자랐고 각각의 질서가 있었다.

상록관은 초등부 여자애들의 전쟁터였다.

낯선 풍경은 아이에게 거대했고, 그 애는 그 안에서 ‘관장’이었다.

진짜 관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록관에선 원장님 다음쯤 되는 표정이었다.

6학년 언니도 있는데 5학년이 관장이라니.

6학년에 마땅한 인재가 없었거나, 그 애의 기세에 다들 밀렸거나, 아니면 둘 다였을 것이다.

어쨌든 첫날부터 알았다.

상록관에서 그 애의 지위를 가볍게 보면 안 되겠구나.

보육원에서 제일 먼저 말을 건 아이,

제일 먼저 나를 긁은 아이는

이상하게도 내 안에 결심 하나를 세웠다.

외로운 아이들을 구박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나보다 작고, 나보다 더 조용한 아이를 함부로 울리게 두지 않겠다고.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입소 첫날, 자기 밥자리도 낯설어 어깨를 잔뜩 움츠린 애가 벌써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마음먹었으니.

나는 원래 그랬다. 무서워도 무서운 티를 안 냈다.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겁먹을 틈 없이 자란 쪽에 가까웠다.

내겐 수년간 아빠에게 훈련된 맷집이 있었다.

웬만한 일로 겁먹지 않았고, 웬만한 일로 울지도 않았다.

집안의 기압골을 피해 다니며, 버티고, 숨고, 막아선 경력이 있었다.

어른 눈치를 먼저 읽으며 큰 아이는 또래의 위협 따위로 겁먹지 않는다.

아이들 세계에선 먼저 울면 진다는 것도 일찌감치 배웠다.

울음이 목까지 차오를 때 꿀꺽 삼키는 법.

눈이 뜨거워질 때 고개를 딴 데로 돌리는 법.

그리고 구구단 외우기.

7단을 외우면 울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고비였던 7단을 외운 날을 떠올린다.

자작곡인 듯 리듬 맞춰 외운다.

울음은 감정인데 구구단은 순서였다.

순서를 붙잡고 있으면 마음도 붙잡을 수 있었다.

칠칠은 사십구.

칠팔은 오십육.


상대가 아무리 커 보여도 아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약점은 누구에게나 있다.

네가 상록관 관장이든, 상록관 대통령이든,

내가 먼저 무너지지만 않으면 된다.

복잡한 생각들 속에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끝났다.

그날부터 보육원의 시간이 몸에 새겨졌다.

기상 시간,아침 체조시간, 밥 먹는 시간, 씻는 시간,

자는 시간.


모든 건 정해져 있었다.

줄도 정해져 있고, 순서도 정해져 있고, 누가 먼저 세면장을 쓰는지도 대충 정해져 있었다.


단 하나, 끝내 정해지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곳은 너무 일찍 알아버리면 안 되는 것들을 속성으로 가르쳤다.


기다림의 길이, 말의 독기, 자존심의 모양, 기다리면 덜 아프다는 거짓말보다, 기다려도 안 올 수 있다는 진실을 먼저 배우게 했다.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말이

얼마나 흔하고도 쓸쓸한 주문인지

알게 되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래도 다들 기다렸다.

다음 달엔 오겠지.

다음 주엔 오겠지.

다음번엔 진짜겠지.

그 말을 버리지 못했다.

기다림이 희망이라서가 아니라,

그것까지 놓아버리면

진짜 고아가 될 것 같아서였다.

처음부터 상냥한 사람보다

처음부터 정확한 사람이

오래 기억나는 법이다.

상록관 관장은 내 열두 살에 생각보다 오래 남는 인물이 되었고, 그토록 기다리던 엄마는 서른일곱 해가 지나서야 내게로 왔다.

“내가 너희들 책임 안 져서 몹쓸 병에 걸렸나 봐.”


그 말은, 사과 같기도 했고, 변명 같기도 했고, 자기 연민 같기도 했다.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하는 사람으로 왔다.

엄마가 날 맡긴 적은 있어도, 내가 엄마를 맡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