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의 고백
열두 살, 담벼락 아래서 남자를 처음 배웠다.
그 얼굴은 폭력과 비린내, 수치심의 형상이었다. 그날 이후 몸은 먼저 방어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누군가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면 몸이 굳었고, 손목을 잡히면 이유 없이 심장이 뛰었다. 지나간 일이라 여겨도 몸은 늘 현재형으로 반응했다.
엄마는 딸만 넷인 집에서 나를 아들처럼 입혔다.
짧은 머리, 헐렁한 바지, 몸의 선을 드러내지 않는 웃옷. 레이스와 분홍색이 지워진 무채색의 차림은 어느새 내 갑옷이 되었다. 여성성을 지우는 일이 표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처럼 여겨졌고, 기꺼이 중성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예뻐 보이는 것보다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사랑받는 것보다 무사한 것이 먼저였다.
보육원에서 보낸 중학교 시절에도 그 갑옷은 벗겨지지 않았다.
남자아이들을 멀리했고, 동성의 다정함에 더 오래 안도했다. 머리를 묶어주고, 팔짱을 끼고, 어깨에 기대어 웃는 사소한 체온들이 훨씬 편안했다. 그것이 타고난 기질이었는지, 아니면 그날의 비린내가 남긴 흔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내 안의 선 하나가 남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꺾여 있다는 감각만은 또렷했다. 친구들이 남자 연예인 이야기를 나눌 때도, 내 안은 좀처럼 그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에 더 익숙한 아이였다.
그 혼란의 틈으로, 새로 온 여선생님이 들어왔다.
예쁜 얼굴에 부드러운 말씨를 가진 그녀는 보육원의 거친 공기 속에서 유독 이질적이었다. 아이들을 다루는 손길도 달랐다. 혼낼 때조차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머리를 쓰다듬을 때는 손끝에 망설임이 없었다. 보육원에서는 그런 다정함조차 쉽게 특별해졌다. 선생님이 복도를 걸어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긴장이 풀렸다. 안부를 묻고, 눈을 맞추고,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어른은 드물었다.
어느 날 하교 길,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길 위에서 선생님은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너무 갑작스러워 놀랐지만, 밀어내지 못했다. 잘못된 일은 대개 시끄럽고 거칠 것이라 여겼는데, 그 순간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내가 알고 있던 위험의 얼굴과는 너무 달라, 그 장면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희미한 꽃 향기가 났다.
담벼락 아래서 맡았던 지독한 비린내와는 정반대였다.
모든 것이 부드러웠다. 선생님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을 때, 그 온기가 나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씻어준다고 믿었다. 설령 어른의 그릇된 경계였더라도, 길을 잃고 헤매던 사춘기의 아이에게는 처음 마주한 빛처럼 느껴졌다. 외롭고 기댈 곳 없는 시절, 오직 내게만 건네지는 비밀스러운 온기. 그것을 구원이라 오해하며 붙들었다.
그 후로도 선생님의 작은 친절들에 오래 매달렸다.
복도에서 마주치며 건네는 눈빛,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손길, 별것 아닌 간식 하나에도 마음이 출렁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의존인지, 보호받고 싶다는 욕망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관계 안에서 내가 선택받았다고 믿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남겨지는 감각에 익숙한 아이에게 ‘선택받음’은 쉽게 구원이 된다. 어른의 경계가 흐려진 자리에서도, 그것을 나만을 향한 애정으로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 남자와 그 여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조금 더 반듯한 선이 되었을까. 그들의 시작점 때문에 삶의 궤적이 꼬이고 얽히고, 끊겼다가 겨우 이어지는 점선이 된 것은 아닐까. 한동안은 그렇게 믿으며 원망했다. 내 삶은 늘 순서가 뒤집혀 있었다. 먼저 안전을 배워야 했는데 두려움이 먼저 들어왔고, 사랑을 배워야 할 자리에 늘 모호한 체온이 남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조차 내게는 명확한 실선이 아니라, 끊겼다가 이어지는 점선처럼 불안정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다.
삶에는 직선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어떤 상처는 한 사람의 방향을 바꾸고, 어떤 다정함은 구원과 침범의 얼굴을 동시에 가진다. 좋아함과 두려움이 한 몸처럼 붙어 있을 수도 있고, 기대고 싶은 마음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함께 생길 수도 있다. 한동안 그런 모순을 부끄러워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순이 곧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돌아본다.
중학생이던 나는 첫 입맞춤을 ‘사랑’과 ‘위험’ 사이 어디쯤에서 받아들였고, 그 감정을 설명할 언어도 갖지 못한 채 오래 품고 살았다. 나를 안았던 그녀에게도, 그녀만의 어둠이 있었을까. 그녀 또한 어디선가 지독한 밤을 건너온 사람이었을까. 이제는 그 질문 앞에서 함부로 단정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의 상처가 타인의 경계를 넘어설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이해하려는 마음은 원망과는 다른 결을 만든다.
더 이상 내 삶을 망가진 선으로만 보지 않으려 한다.
끊어질 듯 이어져 온 점선에도 분명한 방향은 있었다. 넘어지고, 숨고, 흔들리면서도 여기까지 왔다. 남들처럼 반듯한 직선이 아니었다고 해서 잘못된 삶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삐걱거림과 망설임과 굴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내 안의 점선들을 하나씩 오래 들여다본다.
부끄러워 지우는 대신, 아팠던 자리를 인정하며 천천히 어루만진다. 직선이 되지 못한 삶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기 위해, 먼저 그 굴절의 이유를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상처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완벽하게 반듯한 사람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누군가의 다정함 앞에서 잠시 멈칫할 것이고, 어떤 냄새와 어떤 손길 앞에서는 오래된 기억이 먼저 몸을 흔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반응들이 내 결함만은 아니라는 것을. 오래 살아남기 위해 몸이 익힌 방식이었고, 그 방식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직선이 되지 못한 삶이라도,
끝내 나를 향해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제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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