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어 Jul 21. 2020

나는 오늘도 아내를 속인다

찌질한 남편의 생존기

- 누군가를 진심으로 안쓰러워하면, 그 마음의 무게가 느껴진다.




"왜 남의 지갑을 뒤져!"


일거리가 없어서 놀 때였다. 아내가 샤워하는 동안 지갑에서 몰래 만원을 빼려다가 딱 걸렸다.


아내가 나를 소매치기범 취급하면서 지갑을 빼앗아가는데, 순간 당황하니까 아무 말이 안 나왔다.


그러다 현행범이 되면 두고두고 시달릴 게 뻔해서 얼른 시치미를 뗐다.


"지갑이 너무 낡아서 하나 사주려고 본 거야"


"뻥치고 있어"


"진짜야! 생일 선물로 샤넬 지갑 사줄게!"


만원 짜리 한 장 없는 놈이 무슨 명품 지갑을 사준다는 건지... 아내도 기대를 안 한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아내 지갑에서 만원을 몰래 빼려고 한 건 길몽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낮잠을 잘 때, 대통령이 돈 봉투를 건네는 꿈을 꾸었는데 너무나 생생했다.


인터넷으로 해몽을 해보니까 복권을 사면 당첨될 수 있는 길몽이라고 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카드가 연체돼서 사용이 중지됐으니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도 없었다.


아내가 퇴근해서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굴러들어 온 횡재수를 놓치는 거 아냐?"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혹시라도 회식하고 늦게 들어올까 봐 아내한테 전화해서 귀가 예정 시간을 물어보려고 했다.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평소처럼 제시간에 집에 들어온 데다가 몸이 꿉꿉하다며 바로 샤워하려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대운은 그냥 들어오지 않고, 미리 어둠을 몰고 온다고 했다.


그 말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아내한테 들킨 것이었다. 하지만 운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순대 좀 사 와"


샤워를 끝낸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5만 원짜리를 건넸다.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 동네에 오는 순대 장사가 있었다.


용달차에서 파는 순대라 아내는 당연히 신용카드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해 5만 원짜리 지폐를 준 것이었다.


마침 만 원짜리가 하나도 없다면서..... 순간 '정말 복권에 당첨되려나 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한테 길몽을 꾼 걸 얘기해주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복권을 만 원어치 사고 싶었기 때문에... 5천 원 이상을 사면 아내가 "돈 낭비한다"고 잔소리하니까... 만약, 전부 꽝이 되면 아내가 "돈도 없으면서 왜 만원 어치나 샀냐"고 또, 또, 또 잔소리를 해댈 테니까...


정신없이 복권을 파는 곳으로 뛰어갔다. 처음에는 2만 원어치를 사려다가 '될 놈은 천 원짜리 한 장만 사도 1등에 당첨된다'는 말이 떠올라 그냥 만원 어치만 샀다.


즉석 복권을 손에 쥐고 설레는 마음으로 1등 당첨금을 받으면 뭘 할까를 고민했다.




'일확천금이 생길 수가 있다'라고 생각하니 순대가 입에 들어올 리 없었다. 순대를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집에서 나와 공터로 갔다.


그곳에서 심호흡을 세 번하고, 떨리는 손으로 즉석 복권을 긁었다. 그런데, 당첨이 되기는 됐다. 기대와 달리 천 원짜리 3개만 당첨됐지만...


"이게 아닌데"


천 원짜리에 당첨된 복권 3장을 새 복권으로 바꿔서 긁었는데, 이번에는 전부 꽝이었다. 순간 너무 허탈하고, 화가 났다. 


1등이 아니라, 2등에만 당첨돼도 가장 먼저 아내한테 명품 지갑을 사주려고 했는데, 그 기대마저 물거품이 돼버렸다.


"아~ 다음 달이 아내 생일인데, 명품 지갑 사줄 돈을 어떻게 마련하나"


눈앞이 깜깜해지고 한숨만 쉴 새 없이 나왔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 같은 놈을 만나서 매일 속고 살까'라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이제는 추억 속 해프닝이 됐지만, 그때는 무척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 돈을 벌면서도 명품 지갑을 못 사줬다. 큰돈을 버는 게 아니라, 쥐꼬리만 한 수입이라서...


'언젠가는 사줘야지. 명품백도 아니고, 명품 지갑 하나 못 사주겠어?' 늘 그렇게 다짐하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르고, 아내도 모른다.  


"내가 말이야, 샤넬 백이랑 루이뷔통, 구찌 지갑 다 사줄게. 나 믿지?"


내가 허풍을 칠 때마다 아내는 속을 걸 뻔히 알면서도 믿어주는 척한다.




- "나를 언제나,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은 내가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추진체와 발사체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속 아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