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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Jan 04. 2019

마음속 아레나

‘아레나’는 ‘스타디움’보다 규모가 작은 실내 스포츠 경기장이다. ‘아레나’는 라틴어로 ‘모래’라는 뜻인데, 고대 로마 시대에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대결을 펼쳤던 원형 경기장도 ‘아레나’로 불렸다. 실내 스포츠 경기장도 아닌데, 왜 ‘아레나’로 불렸을까? 그곳 경기장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레나’는 잔혹한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군중들은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결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열광했다. ‘19금’ 일 정도로 그 결투는 처참했다. 그런데, 왜 그 원형 경기장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었던 걸까? 바닥이 미끄럽다 보니 검투사들은 몸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을 테고, 결투를 벌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미끄러졌을 수도 있다. 그런 ‘변수’와 ‘반전’은 스릴을 느끼게 해 줘서 군중들을 더 열광시켰을지 모른다. 만약, 그 의도로 원형 경기장 바닥에 모래를 깐 게 맞는다면, 그야말로 너무 잔인한 기획이다.    


또 검투사들이 상대방 칼에 찔리고, 베여서 바닥에 선혈이 낭자했을 게 분명하다. 그 선혈을 치우기 편리하게 바닥에 모래를 깔았을 수도 있다. 그런 추측을 하다 보면 당시 로마 지배층과 시민들이 얼마나 잔인했을지 짐작이 된다. 그때 그 원형 경기장에서는 수시로 광란의 함성이 메아리쳤을 게 아닌가.  

   


지금 우리는 어떨까. 잔인할 정도로 과격한 격투 스포츠나 게임을 즐기면서 희열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비록, 검투사들의 대결처럼 격투 스포츠가 목숨을 건 경기는 아니지만, 주먹과 발로 상대 선수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걸 보면,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심리적으로 억압된 분노나 욕구, 열등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난폭하고, 잔인한 경험을 통해서 해소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억압된 분노나 욕구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 실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고대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 같은 ‘아레나’가 있는 게 아닐까? 그 마음속 ‘아레나’ 때문에 현대인들이 점점 과격해지고, 난폭해지는 게 아닐까? 과격함과 난폭함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마음속 ‘아레나’는 더 견고해지고, 규모도 확장된다. 그럼,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광란의 메아리도 더 크고, 또렷해진다.    


그 ‘아레나’를 마음속에서 미련 없이 철거해야 되지 않을까? 대신 그곳에 아름다운 ‘정원’을 지어보는 건 어떨까? 마음속에 ‘정원’을 짓고, 가꾸면 우리 마음이 편안해지고, 맑아진다. 그 ‘정원’이 우리 자신은 물론, 여러 사람에게 은은한 향기를 전할 수 있다. 우리 삶에 꽃길도 많이 생길 테고...    


‘정원’이 아니라면, 피겨스케이팅처럼 감동적인 경기가 열리는 ‘아레나’를 지어보는 건 어떨까? 그 ‘아레나’에서는 광란의 메아리가 아닌 가슴 벅찬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리고, 아름다운 선율이 넘쳐흐를 수 있다.    


강인함과 잔인함은 분명히 다르다. 이 치열하고,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된다. 그런데, 강인한 정신은 갖되 잔인한 마음은 버리는 게 낫다. 그 잔인한 마음은 우리 자신을 가장 먼저 파괴시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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