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어 Jan 04. 2019

찐빵에게 고함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운 겨울에는 찜통 속의 찐빵들이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진다. 뚜껑을 열었을 때 눈앞에 자욱한 김 사이로 포동포동한 자태를 드러내는 찐빵들은 먹음직스럽게 보이기보다 정겹게 보인다.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사람들처럼...      


그 찐빵들을 떠올리며 두툼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몸뚱이가 따뜻하게 데워져 이불속은 더 아늑해진다. 창문 틈 사이에서 산짐승의 울음 같은 바람 소리라도 들리면 스르르 눈이 감기고, 단잠에 빠져든다. 에디슨이 ‘잠은 인생의 사치’라고 말했지만, 겨울잠은 달고, 포근하다.     


잠결에 뒤척이다 깨서 시계를 본다. 아침 6시가 다 된 줄 알았는데, 새벽 3시다. 그때의 행복이란!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갈 때 그곳은 어릴 적 엄마의 품처럼 아늑한 공간이 된다. 평일 새벽에 30분도 아니고, 3시간을 ‘덤’으로 얻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넉넉할까.     



그 3시간은 재래시장에서 인심 좋은 상인이 ‘덤’으로 챙겨준 나물과 멸치, 그리고 단골 술집 주인이 건넨 ‘서비스 안주’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겨울밤의 행복이 아득한 과거가 돼버렸다. 삶의 무게가 더해져서 그런지 몇 년 전부터 불면증이 생겼다. 그때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불을 덮고 자는데도 아늑하지가 않다. 새벽 3시가 넘도록 잠이 들지 않아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날도 많다. 그때 3시간을 ‘덤’으로 얻었는데, 이제 밤새 3시간도 못 잔다. 그렇게 겨울밤의 아늑함은 사라지고, 겨울 아침의 고단함이 생겼다.      


찐빵 같은 삶을 그려본다. 상해서 버려지는 것보다 찐빵은 뜨듯하게 데워져서 누군가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 그때까지 찐빵은 따뜻하고, 아늑한 찜통 속에서 지낸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떨까. 찐빵처럼 편안하게 지낸다고 할 수 있을까. 찐빵에게 고함! 이 겨울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차라리 너희가 부럽다.

작가의 이전글 회항하라, 기억 저 편을 날아다니는 종이비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