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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and 쑥 Nov 27. 2017

어서 와! 부자동네는 처음이지?

#반대방향 02번 버스 #여긴 어디 #뜻하지 않은 외곽 구경                    



‘딴 나라’ 7군을 돌아보고 다시 1군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은 고급 외제차 매장 앞에 위치했고, 우린 차도와 거리를 두기 위해 매장 가까이에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매장 경비원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매장에서 떨어지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그냥 떨어지란다. 


(얘네가 지금 우리가 자기네 매장 물 흐린다고 생각하나? 어이없네)“우리는 너네 매장에 들어갈 생각도 없다. 근데 왜 우릴 쫓아내려고 해. 이건 말도 안 된다”


라고 못하는 영어로 쏘아붙였더니, 그 경비원이 움찔해한다. 그러면서 


“너네 어디로 가니?”


라고 물어보며 저자세로 나온다. 방금 전 흥분상태로 나의 영어 지수를 극도로 끌어올렸더니 말이 안 나와 겨우 02번 버스를 탈거라고 말한다. 그는 


“잠시 후 버스가 오니 그 버스 타면 돼”


라고 친절 모드로 나와서 어리둥절했다. 


잠시 후 도착한 02번 버스. 우리는 정류장에서 같이 기다리던 여성 노동자들, 공사현장에서 신었던 장화와 안전모를 그대로 쓴 채 탄 인부들과 함께 낡은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에어컨도 시원찮고, 기사님은 정신없이 끼어드는 오토바이에게 지지 않으려 경적을 울려대는 바람에 우리도 정신이 없었다. 


한참을 달렸는데 7군 입성할 때 봤던 것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고, 상하수도 시설은 제대로 갖췄을지 의심스러운 무허가 주택들이 몰려있다. 호찌민시가 도시기반시설이 부족하고 비공식 주거가 많다고 해서 어디가 그런가 했더니 이 동네를 보고 그랬나 보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오토바이도 없이 푸미흥까지 일하러 가는 거다. 


우리를 괄시한 포르쉐 매장


퇴근길 버스 안 풍경


근데 왔던 길 맞나? 급하게 구글맵을 켜니 우리가 탄 버스는 벤탄 마켓이 아니라 반대방향행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신유가 침착하게 버스 안내원에게 물어봤고, 반대편에서 타라는 안내원의 말에 신속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혼자였다면 호찌민 근교에서 국제미아가 될 까 봐 겁날 텐데 옆에 누군가가 있으니 든든하다. 


맞은편에서 다시 만난 02번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간다.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급성장하는 베트남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푸미흥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저개발국가 수준의 마을이 산재하는 호찌민. 그리고 오토바이도 없어서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아직도 기본적인 기반시설도 갖추지 못한 곳에서 살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엄청난 빈부격차를 반나절 동안 체험해버렸다. 짧은 시간 동안 본 풍경의 간극이 너무 커서 베트남 정부는 이 차이를 어떻게 줄여나갈 건지, 국제사회의 효과적 원조 방향은 무엇인지 머리가 아팠다. 




신유     


오후 4:50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버스정류장에 서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차림이 공사장 작업복 차림 그대로다. 안전모를 썼고, 안전화에 체크무늬 긴 셔츠를 입었다. 대여섯 명이 길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있다. 우리는 포르셰 매장 앞 쪽으로 붙어서 16차선 광로의 매연을 피하고 있었다. 매장 안에는 차를 사러 온 젊은 커플이 꽃다발을 받고 차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베트남 부자 사람이구나’하며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매장 주차를 담당하는 남자가 손짓으로 우리에게 비키라고 한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쑥이 묻는다. 


“왜요? 우리 버스 기다리는데요?”

“몇 번 버스 타니? (우리 매장 앞에 서 있지 말고) 버스정류장은 바로 앞에서 기다려”


땡볕에 걸어 땀에 전 몰골로 서있는 우리에게 매장 앞에서 물 흐리지 말고 비키라는 거였다. 그제야 바로 앞 버스를 기다리며 널브러진 사람처럼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우리를 저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오토바이도 없이 버스 타는 노동자들로 생각했던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돈으로 사람 차별해도 되는 거야? 쑥이 'No way!'라고 화를 냈다. 그 직원은 머쓱했던지 02번 버스가 오자 ‘저기 버스 온다. 저거 타’라고 태도를 바꿨다. 참나! 서울에 외제차 매장 앞에 서 있었어도 이런 ‘취급’을 받았을까?      


씁쓸한 기분으로 낡은 버스에 올랐다. 에어컨이 안 나와 창문을 열었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린 날씨처럼 버스 안 공기가 무겁다. 아니 지쳐있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없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일하기 위해 도시까지 장거리 통근통행을 하는 버스 안 무표정한 사람들이 찍힌 사진도 함께.      


‘근데 우리가 아까 여기 지나왔었나?’ 급하게 구글맵을 켜니 우리가 탄 02번 버스는 벤탄시장이 아니라 반대방향으로 호찌민을 벗어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 담당자인 쑥은 당황했지만 나는 아직 날도 밝고, 돈도 있고, 구글맵도 되니 문제없다고 판단, 버스에서 내려 반대편 정류장으로 갔다. 


“벤탄 마켓?” 


이번엔 목적지를 물어보고 02번 버스를 탔다. 승객이 몇 사람 없다. 푸미흥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한두 명씩 버스에 오른다. 좀 전에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의 작업복 차림의 승객들과 버스 분위기가 다르다. 사회시간에 배운 ‘이촌향도’-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하는 현상이 이 모습 이리라. 주거비용이 없어 판잣집에 살며, 공사현장으로 일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1970년대 서울에도 있었을 것이다. 오토바이 살 돈이 없으니 버스를 타고 다니는 이들은 돈을 모으면 오토바이부터 살까? ‘이동권이 생명’이라고 외치는 장애인들의 외침도 오버랩되고, 도시개발로 지어진 신축건물들에 못 사는 사람들은 장거리 통근통행을 하고, 도시는 밤에 사람이 다니지 않아 오히려 황폐화된다는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할머니도 떠오른다. 살기 좋은 곳이란 어떤 곳일까? 


다시 제대로 탄 버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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