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여년전쯤 됐나. 가족과 함께 홍콩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사실 여행이 꽤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우선 서울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번잡스럽고 시끄럽고. 미식의 천국이라고는 하지만 전형적인 한국인 입맛을 가진 우리에겐 그저 그랬다. 그럼에도 홍콩은 우리 가족에게 꽤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예상치 못하게 겪게 된 한 가지 경험 때문이었다.
마카오로 이동하기 위해 선착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얼핏 봐도 홍콩 사람임이 확싨한 한 여성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저는 홍콩관광청에서 나왔는데 설문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네." 짧은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설문지를 아내와 아들에게만 주는 것 아닌가. 줬다고 착각했나 생각하고 나에게도 달라고 했다. 여성이 고개를 저으며 '이건 외국인에게만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아내가 말했다. "이 사람은 내 남편이고 한국인"이라고. 하지만 여성은 단호했다. "아니에요. 당신은 한국 사람 맞지만, 이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에요." 어안이 벙벙했다. 난 한국인인데, 아내도 한국인이라고 거듭 확인해 줬지만 그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근자감? "당신 같은 모습을 한 한국인을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나를 설문지 작성의 대가로 주는 기념품을 노리는 거짓말쟁이로 여기는 듯 했다. 그의 눈에 나는 현지인이었다. 시키멓고 전형적인 남방인처럼 생겼으니 한국인일리가 없었다. 그냥 처음 말을 걸었을 때 느꼈어야 했다. 이 여성이 아내 하고만 대화를 나눴다는 것을, 나에게는 한마다도 건네지 않았다는 것을. 웃픈 현실이다.
하긴 이런 일을 한두번 겪은 것이 아니다. 얼굴색이 워낙 거무튀튀 하다 보니 동남아계나 흑인으로 여기기 일쑤다. 부모님께 들은 얘기 중 한 토막. 아주 어릴 적 동네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과 한참 재미있게 뛰놀고 있는데 한 흑인이 나에게 다가오더란다. 그리고 나를 번쩍 안아주고 뭐라고 얘기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아마도 자기와 같은 흑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베트남에 출장갔을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현지 기업이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하는 자리였다. 현지 직원이 다른 기자들에게 일일이 자리를 안내했지만 나에게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러자 현장 진행요원이 베트남어로 뭐라고 떠들었다. 멍하니 듣고 있는데 가이드가 와서 그 요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가와서 하는 말 "현지 가인드인줄 알았대요." 인도네시아 발리에 갔을 때는 '베스트 발리안(the Best Balian)'이라는 말도 들었다. 다 내 탁월한(?) 외모 덕이다.
외국에서만 이런 일을 당했을까. 사람들은 내가 서울에서 타고 자랐다는 얘기를 들으면 눈을 들어 다시 확인한다. '진짜?' 하는 의심과 함께. 여기에 서울에서도 강남 8학군 출신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놀라는 눈치가 역력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표정이다. 부유한 동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촌구석 냄새 풀풀 풍기는 인간이 턱 하니 남들이 부러워하는 귀족 학군에 다니고 있다니, 대충 이런 분위기다. '사람을 어떻게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나.'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지만 애써 눌러 참는다. 공수부대를 나왔다는 것까지 덧붙이면 의심 정도가 아니라 완전 거짓말쟁이로 취급받을 판이다. 아, 물론 내가 가고 싶어 간 곳은 아니다. 논산훈련소에서 '학벌 좋은 놈 하나 줘'라는 목소리가 끌려간 곳이다. 그래도 척 봐도 군대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을 듯한 모습에 아내에게 '좌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사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동남아에서 온 촌내 풀풀 풍기는 8학군 출신 좌빨 공수부대원이 돼 버렸다.
이쯤 되면 한번쯤 의심해 볼 만도 하다. 내 조상은 혹시 남방계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한국인이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북방계 민족이라는 게 정설이지만 동남아 등지에서 일부가 한반도로 왔을 지 누가 알겠는가. 이미 몇 백년이나 지난 일이니 모두가 추정일 뿐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지구는 달라진 게 없고 유라시아는 하나의 대륙으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한들 바뀌는 것은 전혀 없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가장 먼저 눈에 담는 것은 단연 '외모'다. 얼굴은 예쁜가, 몸매는 보기 좋은지, 피부색은 하얀 지, 사지는 멀쩡한 지, 흰머리는 없는지로 우리는 사람들을 예단하고 짐작한다. 험상궂게 생겼으면 범죄자를 떠올리고, 몸이 불편하면 자신에게 병이라도 전염되고 더러운 것이 묻을 듯 몸을 피한다. 하얀 피부를 갖고 있으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거무튀튀한 얼굴이면 천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백설공주가 왜 백설공주겠는가. 하얗기 때문 아닌가. 디즈니에서 백설공주 주인공을 흑인으로 했을 때 사실 이름을 바꿔야 했다. '흑설공주'라고. 하얀 건 선이고 검은 것은 악이라는 건 편견이다. 흑인 백설공주는 그래서 실패했다.
첫 인상은 그렇게 한 사람을 예단하고 분류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것은 내면'이라고 자기 취면을 건다. 하지만 짧은 순간 스치듯 보는 것으로 사람 속을 어떻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시나브로 찾아올 뿐이다. 그나마도 만남의 인연이 계속되고 대화의 시간이 길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한 사람의 기억은 생김새로만 남는다.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착각은 그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