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어요." 회사 일을 마치고 들어온 집. 현관을 열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진다. 아내는 시무룩해있고 아들은 뭔가 뾰루퉁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내와 아들이 또 한판 붙었다는 것을. 이유를 물었다. 29세 거구가 일본으로 돌아갈 일이 얼마 남지 않아 엄마가 예전처럼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말하던 참이었나 보다. 그 내용에는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도 포함돼 있었다. '절대 네가 책임져야 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이전 같으면 '그런 일 절대 없어'라며 웃으며 얘기했을 녀석이 갑자기 대들기 시작했단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대략 엄마에게 그딴 얘기를 왜 하냐는 것이었으리라. 아내가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배신을 때렸다" "키워 봐야 소용없다" 한탄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요즘 들어 자주 일어난다. 엄마가 여친의 '여'자만 꺼내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엄마가 자기를 못살게군다고. 심지어 왜 자기 말을 듣지 않냐고, 엄마와 얘기하면 자기의 자존감이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진다며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들기도 했단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조건 '엄마 최고'를 외치던 아들은 간 데 없고 '반항아' 하나가 그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놓고 나중에 자기가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인다. 물론 그게 진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가 조목조목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니 마지 못해 내미는 손이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아내가 무척 서러웠나 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아내의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저 놈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눈물이 냇물처럼 흘러내렸다. 위로를 해주기 해 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이틀을 지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된 모양이다. "이젠 떠나보내야겠어. 더 이상 미련을 두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래서일까. 아들을 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아들이 몸을 흔들며 가까이 와도 안고 빨고 하지 않는다. 엄마를 위로한답시고 예전처럼 아양을 떠는 시늉을 하지만 이미 한번 떠난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 6월 귀국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들은 아내의 껌딱지였다. 언제나 함께 있고자 했다. 특히 밤에 더 심했다. 기숙사에서 한밤중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쓰레기통이 저절로 열렸다 닫힌 현상을 목격한 후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무서웠을까. 새벽마다 엄마와 영상 통화를 연결한 채 잠을 잤다. "새벽에 휴대폰이 잠시 꺼졌나 봐. 아들이 또 전화를 했네. 밤마다 이러니 너무 피곤해." 아들이 일본 유학을 떠난 후 끊이지 않는 아내의 하소연이었다. 물론 전화로 한 것은 아니다. 그 비싼 해외전화 요금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대신 톡으로 영상통화를 켜 놓는다. 와이파이가 무료이니 가능한 일이다. 처음에는 좋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얼굴을 매일 같이 볼 수 있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싶었다. 나중에 좀 귀찮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했다.
그랬던 아들이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을 했다. 아내는 아들 얼굴을 직접 보는 게 얼마만이냐며 일주일 전부터 들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아들온 직전 우리를 찾았던 아들이 아니었다. 공항에서 만났을 때 다른 때 같으면 엄마 팔을 붙잡고 애교를 부리며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번에는 혼자 떨어져 걸어갔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집에서 엄마 옆에 꼭 붙어 있고 잠도 같이 잤지만 이번에는 들어오자마나 자기 방에서 문을 꼭 닫고 처박혀 나오질 않았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잠시 와보고 밥 먹을 때 보는 것이 전부다. 대신 방에서 전화통화 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아마도 얼마 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일본 여자친구일 것이다.
징후는 있었다. 이번 아들의 귀국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방학이 시작됐는데도 한국에 바로 올 생각은 하지 않고 일본항공에서 인턴을 한다며 한참 뒤에나 올 것이라고 했다. 결국 엄마와 말다툼이 있었고 논리에서 뒤진 아들이 일주일만 있겠다고 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왜 일본에서 안 오려할까. 무수한 추측을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여자친구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전과 달리진 것이라고는 여자 친구 밖에 없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여친일 수밖에 없고 그래야 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니 최악이었다. 우선 성적이 뚝 떨어졌다. 3년간 3.7~3.8을 그렸던 성적표가 어느새 3.0으로 곤두박질쳤다. 연애를 하느라 공부는 삼천포로 갔던 모양이다. 아들은 '천문학이 힘들었어'라고 변명을 늘어놓지만 한 과목의 성적이 안 좋다고 그렇게까지 학점이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미 대학을 다녀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어디서 되도 않는 변명을.'
생활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 일단 자기 방에서 자지 않고 엄마 옆이나 거실에서 자지 않는다. 자기 방에 꼭꼭 숨어있다. 아침에 일어나도 인사를 하러 오지 않는다. 아빠가 출근할 때가 되서야 빼꼼 얼굴을 보이는 게 전부다. 자기를 혼낸 날에는 그나마도 없다. 그저 방에서 누가 듣던말던 "잘 가" 한마디 하고 끝이다. 엄마와는 더더욱 서먹하다. 모자가 어디를 함께 간 적이 언제였나 싶다. 아내는 아들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안좋은 소리만 할 것 같아 혼자 나들이를 나간다. 이렇다보니 세 식구가 모이면 시끌벅적했던 집안이 요즘을 조용하다.
대신 여친에 대한 아내의 앙금은 더욱 깊어간다. 가뜩이나 일본에 대해 별로 감정도 좋지 않은데 이들이 아들까지 빼앗아갔다는 분노가 치밀었다. 이 모든 화살은 여친에게 향했다. 아들이 공부도 더 해야 하고 살 길도 찾아 나서야 하는데 '일본 여시'가 방해를 한다는 판단이다. "빨리 떨어뜨려야 해. 그래야 애가 자리를 잡을 수 있어." 아내의 결론은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냥 우리 부부의 희망사항에 그칠 게 뻔하다. 그래도 자식은 자식인가. 아내는 오늘도 아들 먹을 것을 차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